PUNCTUM TEMPORIS-기억의 잔재와 이미지들   김정선 회화展   2005_1026 ▶ 2005_1101

김정선_핑크 케이크-1973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관훈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1026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김정선의 작품「무제」(2005)의 주인공은 파티 모자를 쓰고 색종이 화환을 목에 건 어린 소녀이다. 두 팔을 몸에 붙인 채 똑바로 서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면 누군가가 "움직이면 안돼, 그리고 여기를 봐"라고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소녀의 원피스와 하얀 양말에서는 고색창연한 옛 시절이 엿보이지만 화면에 포착된 장면은 부모 또는 다른 어른이 들고 있는 사진기 앞에서 숨을 멈추고 있는 그녀의 '현재'순간인 것이다. 또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과거'의 소녀는 당시의 맥락들로부터 오려져 나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구절들이 흐릿하게 적혀있는 연분홍색 배경 앞에 다시 놓여진 채 '현재'의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마법의 순간, 예전에 이미 지나가서 기억 속에서조차 남아있지 않는 잊혀진 장면들을 오래된 사진 속에서 발견할 때 우리가 느끼는 신비로움, 그리움, 낯설음, 괴리감 등이 바로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의 출발점이다. 1999년 이후 6년 만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온 시간성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 보다 정제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부모님의 결혼식, 창경원 나들이, 집안 어른의 장례식, 친구 생일 파티 등 스스로 경험했던 과거 뿐 아니라 아버지의 어린 시절 소풍과 같이 사진을 통해서만 마주치게 되는 생소한 과거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오래된 사진으로부터 추출하여 확대하고 강조함으로써 현재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김정선_포근한 기억의 물방울 무늬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5
김정선_무제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5
김정선_봉제토끼_캔버스에 유채_65.1×53cm_2005

과거 작품들에서는 관찰자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로 굳어있는 옛 사진 속의 인물들이 흐릿하나마 온전하게 묘사되었던 반면에, 최근작들에서는 대상들이 편린으로만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화면 바깥으로부터 뻗어 들어온 손가락이 누구의 것이고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보는 이로서는 알 도리가 없으며, 클로즈업 된 미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확대된 배냇저고리의 가슴팍은 오래 전 유행했던 무늬와 세월의 흐름에 의해서 생겨난 사진 표면의 얼룩까지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저고리를 입고 있는 당사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부분으로서만 화면에 재현된 대상들은 지나간 시간과 장소에 얽혀져 있었던 정체성을 상실하고 모호한 존재로 남게 되는데, 불확실하게 약호화됨으로써 오히려 보편성과 영원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된 사진의 하찮은 세부가 주는 충격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서 관객에게 다가오는 작용에 대해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푼크툼(puncturm)이라고 부른 바 있지만, 이처럼 사진으로부터 추출된 단편적인 이미지들은 대상의 실체-혹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존성과 동시대성-을 포착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유화라고 하는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매체를 사용해서 사진의 물성을 변환시키는 김정선의 제작 방식은 대상이 지닌 본래적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또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김정선_새 구두 신은 자매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05
김정선_첫 어버이날-1975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5
김정선_무지개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5

최근 작품들에서 작가는 사실적으로 재현된 사진 이미지들 위로 스마일리(Smiley)사인이나 Happy Birthday!와 같은 낙서들을 가볍게 겹쳐 쓰거나 흑백 화면 안에서 장식끈, 케이크, 핸드백 등의 소품들 만을 유독 생생한 천연색으로 그려냄으로써 시간의 차원을 중첩시키고 있다. 전자의 방식에서는 이미지의 층위를 통해서, 그리고 후자의 방식에서는 색조의 분리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게 된다. 하지만 관객들 앞에 펼쳐지는 것은 결국 작가, 작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등 가족 관계를 따라 이어 지는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서 함께 존재하게 되는 시간들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철학적인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참회록' 제10권에서 자신의 생애에 대한 회상을 마무리하고 영원한 진리에 대한 모색으로 넘어가면서 기억이란 우리가 인식하는 바나 감각을 통해서 지각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보관해 놓은 창고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창고 안에 들어가면 어떤 것들은 즉시 맞닥뜨려지지만 또 다른 것들은 애써서 뒤져보아야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너무도 깊숙이 숨겨져 있어서 거의 찾아내기가 힘들다. 이처럼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는 일은 기억의 보물찾기와도 같다. 더구나 작가의 가족과 어린 시절 친구들이 등장하는 오래된 사진 속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펼쳐진 화면은 타인 에게 있어서 생소한 창고와 다름없다. 이 낯선 공간 속에서 관객들이 친숙한 대상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경험이 보편화되기 때문이다. ■ 조은정

Vol.20051022d | 김정선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