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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05_수요일_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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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혹은 태도가 예술이 되는 지점- 최익진의 '무거리 속의 거리'에 대하여 ● 1. 오래된 옛날이야기 중에 사람의 습관이 일가(一家)를 이룬 이야기가 있다. 밖에 나갔다가 귀가하는 길이면, 꼭 무엇인가 들고 들어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는 길에 떨어진 온갖 잡동사니, 하다못해 돌멩이 하나라도 주워들고 오는 것이 습관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습관이 '넝마주이'의 그것이라고 놀렸지만, 결국 그가 주워온 돌은 쌓여 집 담장이 되었고, 온갖 넝마들은 나중에 새 집을 짓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한다. 일상의 습관이 그야말로 집(家) 한 채(一)를 세운 것이다. 작가 최익진의 작품 분석 글을 기대한 미술독자에게는 위와 같은 서두가 뜬금없게 들릴 것 같다. 그런데 옛 민담 속 '습관'이 이제 바야흐로 내가 최익진이라는 작가의 '작업생활'로 들어가, 본 것을 말할 계기이다. 나아가 동시대 젊은 작가들에게서 점점 희박해져가는 어떤 태도에 대해 논할 계기이다. 그러한 습관 혹은 태도가 있어서 좋다거나 없다면 있도록 해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가치판단, 또 그래서 최익진의 습관이 그의 작품에 성공적으로 기여하는지 여부는 글의 흐름에 따르기로 하고, 우선 최익진의 습관과 태도가 무엇이고 어떠한지 보자. 건축현장 같은 곳에 가면 건물 골조를 세우는데 썼던 나무들을 발견하기 쉬운데, 대개 그 각목들은 시멘트 등으로 더럽혀져 있기 일쑤이고 노천에 뒹구느라 나무로서의 용도성을 잃은 지 오래인 것들이다. 최익진의 습관은 도심 도처에서 이러한 지저분하고 쓸모없는 나무들을 주워오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저 나무를 보면 주워오게 되고, 그렇게 수집한 것이 한때 작업실 옆 공터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고 한다. 많이 치워버렸지만, 지금도 그곳에는 다량의 폐목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쌓여있다. 한편 최익진은 꾸준히 다작(多作)을 하고, 그 작품들이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로 수공업적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작업에 대한 태도가 우선 성실한 것이다. 최익진의 이러한 습관과 태도는 그의 작품에 어떻게 관계하는가? 예를 들면 이번 개인전『무거리 속의 거리 : 벽의 눈』에서 최익진은 전시를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꾸릴 예정이다. 그런데 그가 선보일 설치작업은 엄밀히 말해서 사물이나 어떤 장치를 공간과의 연계 속에서 맥락화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폐목과 회화작품을 하나의 구성단위로 재배치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설치작품은 최익진이 주워온 폐목들의 사용처이자 자신의 전공인 회화를 계속하는 방책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의 나무 줍는 습관은 작품의 재료가 되고, 그의 성실한 그리기 태도는 설치작품의 내용을 채우는 방법이 된다. 이것이 성공적일 경우 최익진의 미술은 작가의 성실한 현실생활에 기반한 구체성을 담지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의 미술은 단순한(naive) 것이 될 것이다. 독특한 생활습관이나 열심인 태도가 곧바로 좋은 작품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2.「여기에 있다」,「껍질의 노래」,「心中無事 身外無物」,「EX-Interior」,「세상엔 없다 Utopia」, 「無거리의 거리」. 이상은 최익진이 그동안 했던 개인전 타이틀을 나열해 본 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이 작가가 상당히 사변적인 작가임을 짐작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작가의 설명에서도 이러한 사변성은 강하게 읽힌다. 예컨대 1994년「껍질의 노래」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구조적 갈등"에 대해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했으며, 2004년「무거리의 거리」에서는 "공간과 시간 모두에게서 구속받지 않는 조건 아래 미적 감성의 발로를 통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한다. 그리고 이번 개인전『무거리 속의 거리 : 벽의 눈』전시는 "우리 삶의 조건인 공간의 역동적인 재구성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우리들의 미적 영역의 가능성"이 주된 테마라 말한다. 과히 이해 못할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가의 테마 혹은 문제의식은 다소 상투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린다. 예컨대 어떤 공간과 시간이란 말인가? 또 그에 구속받지 않는 미적 감성이란 진정 가능한가? 그러한 미적 감성을 통한 소통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작가의 진술은 의사소통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인지 작가가 설정한 전시 개념이나 작업 의도보다는 회화작품 자체에서 우리는 구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크게 보자면 언어와 이미지의 소통 방식이 달라서이고, 좁혀 보자면 최익진이 화면의 많은 부분을 실재했던 공간의 쇠락해진 풍경으로 채우기 때문이다.(그러나 이후 보겠지만, 이러한 구체적 풍경은 작품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다르게 변화한다.) 이때 풍경은 대부분 성두경이나 구와바라 시세이가 찍은 195-60년대 서울 사진을 최익진이 확대복사해서 화면에 전사해 다시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작가가 문제시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이란 추상적인 공간과 시간이 아니라 전쟁과 가난으로 폐허화된 지나간 과거 서울이었던 것이다. 현재하지 않은 과거의 공간에 대한 정서는 대개 멜랑콜리하고 아련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전사한 풍경을 석회나 목탄으로 흐릿하게 만들고 갈색으로 물들인 무늬목을 하단에 덧붙여 그림 전체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도록 한다. 이러한 회화를 최익진은「낙원도」라 이름붙이고 일련의 시리즈로 제작하여 개별 작품으로 전시하기도 하고, 앞서 썼듯이 설치작업의 구성요소로 쓰기도 한다. 이번『무거리 속의 거리 : 벽의 눈』에도 이「낙원도」회화가 중점적으로 배치된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전시장 앞쪽에 사람들이 올라서서 저 멀리 아래까지 내다보고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하고, 그 앞쪽으로「낙원도」시리즈 회화들을 두 개의 ㄷ자 형태로 세운다고 한다. 그리고 전시장 맨 끝, 그러니까 전망대와 가장 먼 벽에는「낙원도」중 가장 큰 그림인「1951년 회현동으로부터」를 기념비적으로 세워 서로 마주보게 한다.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설정한 이 거대한 작품에서 감상자의 위치는 전망대 위이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위치에서 이 설치작품을 재구성해보자면, 그(녀)는 우선 전망대 위에 올라서고, 「1967년 청계천...」,「1984년 보수동...」등으로 시간과 장소가 명시된 그림들을 전시장 공간의 거리(距離)에 따라 '거리'를 두고 감상하게 된다. 그림제목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각각의 그림이 표방하는 시간과 공간은 감상자가 서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최익진이 그 시공간을 그림으로 현재화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감상자가 현재 대면하고 있는 시공간이기도 하다. 즉 과거가 지금 여기로 불려 나옴으로써 거리가 소멸한다는 의미이다. '無거리'인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과거는 그림으로 현재화되어 인식적으로 무거리가 되고, 그것들을 감상자가 높이 떨어져서 바라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거리가 생긴다. 즉 "무거리 속의 거리"가 된다.
여기까지 최익진의 설치작품 구상을 설명하느라 나도 애를 먹었지만, 이를 읽는 독자 또한 개념적으로 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이러한 개념과는 상관없이 미술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작품과 감각적으로 대면하고, 거기서 심미적이든 개념적이든 어떤 감상에 도달한다. 그래서 과거의 시공간과 조우한 현재 우리의 '무거리의 거리'라는 최익진의 개념은 감상자와 소통함으로써 이해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낙원도」각각의 회화가 얼마나 구체적 시간과 공간을 현상해 내느냐, 그렇게 거리를 없애며 현재로 소환된 과거의 풍경(그림)이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에 대한 각성을 얼마나 가능케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각성을 위한 준비 단계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최익진의『무거리 속의 거리 : 벽의 눈』에 대해 나는 아직 판단을 유보한다. 실제로 이 설치작품이 전시장에서 얼마만큼 감각적이자 인식적 거리를 만들어낼지 미리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 설치작품이 전시장에서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감상자로서 경험을 할 수 없었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보다 더 실제적인 이유는 각 「낙원도」에 현상된 시간과 공간이 모호하게 처리됐기 때문이다. 앞서 썼던 맥락에서 최익진의 회화들은 그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작업개념에 비하면 사실적 풍경과 소재를 씀으로써 구체성을 띤다. 그러나 이 구체성의 풍경은 전체적인 화면분위기를 위해 흐릿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관념적인 풍경에 가까워져 버린다. 나아가 개별 회화작품들이『무거리 속의 거리 : 벽의 눈』이라는 전체 설치작품의 개념을 위한 단위로 봉사하게 됨으로써 다시 한번 사변적이 된다. 이는 반대로 보면, 최익진의「낙원도」가 과거의 시공간 혹은 기억이라는, 현재 우리에게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잘 조율된 '분위기'로 현상해준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한 전시장 벽면에 설치될 폐목으로 만든「벽의 눈」의 직선은 자꾸만 앞으로만 내달리는 지금 우리를 반성할 계기를 마련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작가가 얼마만큼 자신과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봄으로써 자신의 사변성을 작품에서 벗겨내느냐에 달려있는데, 현재 최익진은 좀 더 사변적 의사소통에 익숙해 있는 듯 하다.
3. 사회 · 경제적으로든 개인의 예술적 성공에 있어서든 큰 보상이 없는데도 지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들을 볼 때마다 무엇이 이들을 추동하는가 묻게 된다. 미술이 사회로부터 별 주목을 받지도, 역할을 부여받지도 못하는 이 때, 트렌드를 좇으며 실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못하)는 작가를 보면 드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 본 최익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제3자가 보기에는 거의 무모하리만치 미술에 매달리고 있다. 1992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올해 7번째 개인전까지 그의 작업은 다양한 변모, 아니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부침(浮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부침의 중심에 '그리기'라는 고된 노동의 방법론이 자리하고 있다. 최익진의 작업이 부침을 겪어왔던 것은 분명 그가 세상에 대해 매 시기 다른 문제의식을 지녔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작업에서는 그 문제의식이 작품을 사변적으로 만들고, 어떤 작품에서는 구체성을 확보하게 한다. 이러한 양상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작가가 지나치게 성실하다는 것 그래서 그리기가 습관처럼 굳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실함이 작업을 하는데 있어 결코 부정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예술로부터 '거리'를 소멸시킬 수 있다. 작가의 일상생활 속 습관과 삶에 대한 태도가 예술이 될 수 있는 지점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로부터 엄청난 강도의 인식적 거리를 확보할 때이다. 그 출발점은 큰 보상이 약속되지 않는데도 끊임없이 작업하는 이유와 작품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재차 묻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작가의 습관과 태도는 자신의 미술세계라는 일가의 초석이 된다. ■ 강수미
Vol.20051017a | 최익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