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비상을 꿈꾸다

정진윤 회화, 조각展   2005_1008 ▶ 2005_1102

정진윤_a palace_구리, 스텐레스_192×274×49cm_2004

초대일시_2005_1008_토요일_05:00pm

아트인오리 부산 기장군 장안읍 오리 223 번지 Tel. 051_727_3114

무거운 날개는 비상을 꿈꾸다 - 정진윤의 작업세계 ● 이번 개인전에서 정진윤은 이전과는 보다 폭넓은 감수성으로 자신의 양식을 재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매체에 대한 깊은 탐구와 함께 이전 역사적 의식의 엄격함은 누그러지고. 보다 신화적 의미의 파편들이 그러한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자전적 경험이나 사고를 표출화. 미학화하는 작가와는 다른 깊이의 층위를 보인다. 그렇다면 작가가 그려내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작업에 보이는 재현적이고 서술적 구조들은 역사적 신화와 현대사회의 거대구조. 불안한 욕망과 회복 사이의 갈등을 내포한다. 역사와, 신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의식으로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전의 작업성향은 한층 내재되어 존재한다. 새로운 매체의 도입과 오랜 시간의 숙고 끝의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작업성향과는 다른 깊이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다시 말해 그의 신화적 현실탐구는 곧 21세기 예술의 신화에 대한 작가의 열망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정진윤_ancient-a suit of armor_종이에 아크릴 채색, 쇠, 금박_106.5×78.5cm_2005
정진윤_at plaza_종이에 목탄_77×57cm_2005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구조는 점점 파편화되어가고 있고 인간이해의 범주는 점차 과학기술과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기능적으로 변화하면서 인간존재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다. 정진윤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사회속의 거대한 구조 속에서 그와 대비되는 역사적. 신화적 소재들이 등장한다. 빛바랜 기억을 잊고 살아가는 거대한 사회구조에 갇힌 현대인의 건망증을 일깨워준다. ● 이번 전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그 중 가장 극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바로 날개이다. 날개는 여러 상황적 이미지들과 대면하는 이중구조의 한 부분으로 위치한다. 욕망과 불안감을 함께 품고 있는 날개는 실존하는 인간과 현실의 시대의식을 반영하며 영웅적 비상을 꿈꾸는 동시에 혼란과 불안. 파괴와 고통의 감정을 일으킨다. 결국 작품에 드러나는 것은 재현이 아니라 암시인 것이다. 가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시켜줄 날개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슬프고도 자유로운 유목적 삶을 꿈꾸게 한다. 이 땅에서만 머물지 않고, 이 현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머나먼 고원의 끝 너머 너머로 흘러가려 한다. 광활한 의식의 세계를 지향하는 날개의 의미는 작가의 역사적 의식과 함께 더욱이 부각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협소한 공간들 사이에서 광활한 하늘을 비상하는 듯한 생각의 전환을 느끼게 한다. 그의 날개는 현대사회의 구조와 변화 가운데서 우뚝 솟아 오랜 세월을 인내한 서쪽의 신전들을 지나 다른 한편으로 동쪽의 역사와 신화들 사이를 지나 전쟁의 고통과 인간의 외로운 고독 사이를 힘겹게 날아다니다 육중한 철의 고원의 가장자리에 않아 잠시의 안도를 내쉬고 있다.

정진윤_wing-a warship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구리_254.4×279cm_2004
정진윤_wing-a legend_철, 구리_21×65×6cm

정진윤의 날개는 무겁고 게다가 한 쭉지로만 존재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역사의 비극이 비상하고자 하는 한쪽만 가진 날개를 힘겹게 하고 있다.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이러한 날개의 형상들은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소설가 이상의 작품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겨드랑이 밑의 깃털의 돗아남의 전조처럼 자유를 향한 억압과 욕망 안에서의 비극적 초월의 구현을 생각나게 한다. ● 작가의 작품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날개는 이전 작업의 간간이 부분적으로 존재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당당히 제 위치를 잡고 있다. 게다가 섬세한 철용접으로 이루어져 육중한 무게감과 함께 구조적으로 탄탄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날개는 비상을 위한 가벼운 존재감과는 상반되는 무게감을 보인다. 비상할 수 없는 날개.... ● 또한 거대해진 스케일의 작업들과 어우러져 그 존재감이 더욱 드러난다. 보라빛이 감도는 푸른 하늘아래 거대한 회색구름 화면 아래로 불안한 전조로 보이는 하단부에 바짝 내려앉은 군함이 보이는 작업에서는 대자연과 인간의 전쟁의 욕망으로 보이는 이중구조를 보인다. 압도하는 스케일과 이미지의 가장자리에 섬세하게 만들어진 동판 날개는 긴장을 완화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희망만을 품고 있지는 않다.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거대하고도 밀도감 있는 화면에 압도당하게 하는 예술적 경험을 줄 것이다. 날개와 날개로 이어지는 작업들의 가운데 대비되는 이미지로 보는 이를 유혹하는 양귀비꽃이 있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그 자체로, 그 스스로 존재하면서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양귀비꽃은 인간의 삶에서 미와 에로스에 대한 탐닉의 확고한 존재의미를 차지한다. 화려하지만 결코 부유하지 않는 색채와 과감한 구도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지존의 가상공간으로 느껴진다. 또한 불안의 전조를 내포하는 작품들 사이에 존재하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더욱 확연히 하고 있다. 암울한 전쟁과 부유한 양귀비, 추락하는 듯한 한쪽 날개와 활짝 피어오르기 직전의 양귀비, 현실적 상황도, 역사적 의식도 없이 그 존재로서 고고히 존재하는 양귀비는 이 아픈 현실을 아무 의식 없이 외면하는 현대인의 잔인함마저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 매력적인 꽃이 예술의 정열로, 아름다움의 희열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정진윤_flower-blue nude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구리_53.5×71cm_2005
정진윤_poppy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24×152.5cm_2004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작가의 주가 되었던 평면작업의 성향에서 확연히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을 이용한 작업이 많아지고 다양한 범주의 장르를 혼합하려는 실험적 경향도 함께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실험적 탐구의 매체는 철작업이다. 동판을 하나하나 잘라내어 철의 파편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다시 용접하여 하나의 새로운 덩어리와 함께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켰다. 시간과 함께 부식되어 가는 동판의 성질은 스스로가 공들인 많은 땀과 시간들과 어우러진다. 구체적 형상이나, 재료 그 본연의 모습 등으로 구조화되면서 다양한 어법으로 다가온다. 폭넓어지는 작가의 새로운 작업세계를 보인다. ● 현대 미술에서 창작의 의미가 점점 개념화되며, 확장되어 가는 매체가 즐비한 작업현실에서 오랜 숙고와 시간을 요하는 예술작업에서 느껴지는 그 총체적 밀도감을 경험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재료와 소재, 오랜 시간과 탐구를 요하는 숙련된 표현작업이 가지는 노련함. 중진작가의 손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정진윤의 신체성과 수공성을 지닌 이러한 작업은 시각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위상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의 작업세계에 새로운 매체를 도입한 그의 오랜 수고들은 예술창작의 틀에서 끝없이 벗어나려는 탈주의 날개가 아닐까. ● 정진윤의 예술세계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더불어 예술의 존재탐구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현대미술에서 다루어지는 일상적 주제가 아닌 거대담론을 다루며 .전통과 모던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비추어진다. 그의 작업을 보면서 현대미술의 일상성, 삶과의 소통 속을 헤메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러나 분명히 확고히 존재해왔던 신화들(의식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리한..너무나 확연한. 생생한 삶의 가운데서 신화의, 영웅의 날개 한쪽의 불안의 날개짓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새로운 매체의 실험적 도입과 거대해진 스케일의 작품들이 화이트큐브(white cube)의 숙연한 공간이 아닌 회색콘크리트의 거친 공간인 아트인오리에서 열리는 그의 중진작가의 역량 있는 작업들이 모든 일련의 제약을 벗어나 그 실험적 의지가 어떻게 발현될지 기대하게 된다. ■ 박진희

Vol.20051013b | 정진윤 회화,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