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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05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즐거운 저항일까? 즐거운 놀이일까? ● 저항은 대개 무겁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하기 위해서는 '결심'이라는 결단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놀이는 저항처럼 결단의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놀이는 순간적으로 결정되며, 놀이는 순간 속에서 빛이 난다. 놀이에는 체계도 강령도 없다. 놀이에 규칙이 끼어들면 그 순간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합리화된 게임이 되어버린다. ● 박유진의 작품은 여성적이다. 남성인 나는 한번도 위에서 내려다본 내 다리의 모습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치마를 입지 않는 남성들은 의자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의 다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을 하기 힘들다. 작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위에서 카메라로 자신의 다리를 촬영한다. 이런 행위를 근엄하게 표현하면 신체의 재발견이라 명명할 수 있다. 하지만 박유진의 작품은 신체를 재발견하면서도 근엄하거나 강박적이지 않고 유쾌하다.
여성의 몸을 통해 신체를 재발견하려는 작품들은 보통 이분법 위에서 춤을 춘다. 하나는 여성성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작품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마초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마초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에 저항하려는 작품들은 그 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그 작품들은 엽기적인 포즈로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이걸 보고서도 관음증을 느낄테냐?" ● 박유진은 관음증의 시선과 해부학적 시선의 양자택일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박유진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리는 다리이되, 다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박유진은 관음적 시선을 과잉으로 두려워하여 자신의 다리를 지나치게 감싸지 않으며, 관음적 시선에 저항하기 위해 엄숙하게 과잉 노출하지도 않는다. 박유진은 자신의 신체를 회피하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분법의 무거움에서 가벼운 몸짓으로 벗어난다.
박유진의 작품들은 유쾌한 정서를 자아낸다. 그 작품들은 저항하기 위한 결심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탄생하지 않았고, 작업실에서 그리고 버스에서 작가가 순간순간 발견하는 자신의 신체를 즐겁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유진 작품 속의 다리들은 작가의 성격처럼 밝고 유쾌하다. 그렇기에 작품과 작가의 신체는 유쾌함의 정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것이 부드러운 힘이다. ■ 노명우
나는 내 다리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더, 지독하리 만치 즐기는 것은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사진이 만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 순간 사진 속의 빛, 선, 면 하나하나가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섬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내 신체의 일부로 만들어진 그것들이 더이상 다리도 그 무엇도 아닌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 박유진
Vol.20051007b | 박유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