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prospective : Decade of live Aggression   갤러리인데코 기획 이화백 회고展   2005_0921 ▶ 2005_093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인데코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21_수요일_05:00pm

갤러리인데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15-4번지 Tel. 02_511_0032 www.galleryindeco.com

"희망에 기대어- 이화백의 작품" ● 독창성에 관한 미학적 판단은 지난 200년간 미술가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아방가르드 범주에 올려놓기 위한 주장과 반대에 의해 공론화와 거부를 통해 되풀이 해왔다, 독창성에 관한 판단기준에 대한 요구와 반대는 양쪽 모두 미학사적 토론을 통해 긍정적 결론이 나오기보다는 미술작품이 갖는 먼 창조적 가능성에 대한 제한적이고 편협한 판단을 내린다. 특히 포스트모던시대 속 작품이 갖는 특화된 계략적 차용에 대한 주장과 거부 또한 개별적 미술가에 의해 고급과 저급 ,독창성에 대한 고집과 세상에 대한 주관적 응답이라는 다양한 사실 밑 방법론으로써의 논의로 다루어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던 시대 내지는 포스트모던의 개념은 모더니즘이 지나온 똑같은 길을 지나왔으며 더 이상의 독창적 작품생산에 대한 논의 가능성도 상실하였다, 그렇다고 독창성의 판단기준을 개인적 표현과 반응으로만 취부 시키기엔 그 방향에 대한 의문점이 떠오른다. " 어떻게 미술가는 기존에 존재하는 표현양식에 따라 저평가되고 권태롭다는 평가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표현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이화백_고도리_캔버스에 유채_120×100cm
이화백_폐인_캔버스에 유채_110×100cm

이러한 상반된 논리의 간극을 하나로 재봉질 하는 과정에 대한 매력적 해답과 새로운 미술양식에 대한 암시 그리고 포스트모던과 모더니즘 양식의 함정 속에서 새로운 대안과 모범을 이화백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화백의 작업에서 가장 주목하여 봐야하는 첫째 요소는 그가 창작활동에 영향 받은 흔적에 있다, 그의 술집 연작의 인물 요소들은 로트렉을 비롯한 19세기말 프랑스 파리의 향락을 상시시키며 폐인, 고도리, 마지막 게임 등의 작업은 다비드, 보론지노, 다 빈치의 각각의 작품들에 대한 직접적인 현대미술의 옷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과거 대가들의 걸작을 모사하는 행위는 젊은 미술가들이 선배미술가들이 거닐며 획득한 위대한 작품의 창조발자국을 따라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들과 해결해낸 기법을 배워나가는 오래된 전통인데 이화백은 그 공부의 지점에서 더 나아가 그저 단순한 복습이나 노골적인 전용이 아닌 재치 넘치게 재해석된 이미지를 보임으로써 과거 러시아 소비에트 모더니즘의 정수를 보인 Natalia Goncharova 와 Mikhil Larionov 그리고 모더니즘의 두 거물인 피카소와 마티스까지 망라된 다양한 양식을 갖추었다. 또한 몇몇의 작업에서 보이는 평면적 색채와 날카롭게 마주하는 경계선들 그리고 색채도표와도 같이 나란히 놓인 윤곽선 등의 형태에서 문자와도 같은 상징성을 나타내며 20세기 초 미술의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인 스텐실기법과의 강한 유사성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과 함께 형태들의 해체를 통해 큐비즘의 향수까지 느낄 수 있는 다양성이 보이는데 이로써 그의 다양한 과거기법의 전통적 도용(?)은 과거 거장들에 대한 능숙한 이해력이 표현이 포스트모던시대 미술의 최상의 대안과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인다. 피카소의 Rose 시기의 인물들과 마티스의 작업에 드러난 아프리카 미술의 직접적 인용 등 틀에 박힌 실험은 미술가들에게 저급의 , 즉 단순 복재의 모방미술가로써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는데 이화백의 작업은 이러한 위험에 정면 대치하는 큰 부담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여 독창성이라는 명제에 대한 진퇴양난적인 해결책에 확실한 희망의 방향을 보인다.

이화백_Artist's studio #1_캔버스에 유채_100×100cm
이화백_Bar #3_캔버스에 유채_100×80cm

모더니즘은 혁명적인 미술적 창조만이 미술가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개인적, 주관적 판단을 미술에서 해체시키는 과정 등, 즉 지극히 상반된 논리에 이화백은 놀랄만한 작품들을 통해 2가지 상극의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준다.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변질된 모방양식을 초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과거의 양식을 단순히 추종하는 정도를 넘어 명백히 드러나는 사실은 그의 작업이 갖는 외형적 조심성, 내지는 사려 깊은 천부적 구성에 있다. 이화백의 작품들은 특정 유파에 머물지 않고 속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과거 거장들의 양식이나 현대미술유행까지도 배반하지 않는다.

이화백_피로연_캔버스에 유채_150×125cm
이화백_피크닉_캔버스에 유채_130×120cm

그가 보이는 능숙한 기법 밑 특성은 편협한 미술지식에 의한 비평과 평가를 거부하는 명백한 혼합양식을 보인다. 이러한 작품들은 재능 있는 미술가의 성공적 성취로써 작업에 대한 확신과 정직한 노력의 근거이며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훌룡히 자신의 새로운 창조와 과거대가들의 걸작에서 얻은 경험, 이 2가지 상극의 협곡사이에서 튼튼한 외줄타기의 걸음이라 말할 수 있다. 패러디에서 나타날 수 있는 초라한 모작과 전혀 새롭지 못할 수도 있을 표현의 위험한 곡예 길을 이화백은 그 양쪽의 경계에서 찾아내었다. 그 길을 통해 그의 작업은 흥미로움과 다음 의문에 대한 간단한 해답을 들려주고 있다. "어떻게 지금! 우리 현대인들에게 지금까지 창조된 독창성 및 지식적 한계 및 자만이 미술가의 과거와의 교섭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가? 그것은 "주의 깊게- 신중히" 라 말할 수 있다. 이화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과 확신, 각오 그리고 남들의 포기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선도해 나갈 미술의 새로운 길에 대한 암시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화백의 작품이 보여줄 미래는 기대하고 싶은 예술이다. ■ 스코트 컨트레라스

Vol.20050921c | 이화백 회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