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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21_수요일_05: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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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사이버공간의 인간상 ● 윤보숙은 금번 박사학위 청구전에서 대중문화와 사이버공간에서의 인간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근자의 몇 년간을 이 문제에 집중해서 국내외에 작품발표를 해온 연구자는 그간의 업적과 생각들을 모으고 종합함으로써 학위청구전에 임하게 되었다. 이번 청구전에서, 그가 추구하는 의도·주제·방법에 대해서 '보유(補遺)'의 형식을 빌려 기술함으로써 그의 학위전의 의의를 새김하고, 작으나 증빙의 뜻에 갚음되기를 바라고자 한다.
1 그의 청구전의 의도를 잘 보여 주는 것으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계문명 안에서의 인간의 삶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둘째 대중문화에 있어서 인간의 가치(예술)는 어떻게 보전되어야 하는가, 셋째 사이버 문화와 예술은 조화될 수 있는가가 바로 그것들이다. 첫번 째 문제에 대해서, 발표자는 휴대폰과 인터넷문화에 영합하지 못하는 소외자들이 급증하므로써, 토풀러가 예견했던 '제3의 물결'이 몰고 온 충격이 그 규모에 있어 상상을 능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제3의 물결이 보여주는 바, 동영상이미지들과 정보의 홍수는 현대인상(像)의 새로운 컨셉을 요구할뿐만 아니라, 이에 응전하지 못하므로써 소통의 불안과 소외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새로운 그늘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시대의 인간은 필연적으로 정보화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계·인간' 내지는 '정보·인간'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사회과학의 일반적 논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계·인간은 단순히 기계를 도구로 사용하는 피상적인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닌한, 이러한 인간 또한 자신의 '정체성'의 이해에 있어서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위기의 인간일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이 점이 바로 그의 작품들이 다루게 될 오늘의 인간상의 한 단면이 되고 있다.
두번 째 문제에 대해서 발표자는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간의 층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논자들의 진단을 받아들이고 이를 '퓨전(fusion)'이라는 용어로 함축하고자 한다. 그가 주목하는 화두는, 따라서, 조명이 가해진 아크릴, 네온, 매직광고, 전광판, 테이블같은 광고 매체로부터 TV스타와 각종디지털 아이콘에 등장하는 익명의 인간상이다. 연구자는 종래의 이분법에 의한 고급문화만을 지향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기만이라고 진단하고, 적어도 예술은 이들의 코드를 작품 속에 끌어 들일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오늘의 인간상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문화가 대중적 코드를 통해서 이미 그 영토를 무한히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대중문화의 아이콘 내지는 코드를 작품의 기표로 도입할 이유를 제기한다. 세번 째 문제와 관련해서 연구자는 사이버 펑크 문화가 다중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통해 일부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있음에 유의하고, 컴퓨터를 위시한 멀티미디어의 등장으로 이의 기능과 본질이 순수미술에서 마저 일반화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들의 문화형태가 비록 비엘리트적이긴하나 하나의 당당한 문화라는 데 주목하고, 당연히, 순수 예술작품의 표현 대상 또한 이러한 방향으로 재정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주제의 측면에서 발표자가 다루는 '인간상'은, 이상의 컨셉에서 보았을 때, 크게 보아, 소위 복제기술시대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다루는 인간은, 따라서, 당당한 근대인의 주체를 갖는 엘리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대중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은 확고한 주체성을 갖기보다는 사이버 공간에서 하이퍼텍스트 내에 존재하는 가능적이고 가상적인 인간상을 닮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사유하는 주체를 지닌 근대적 인간이 아니라 몸으로 부유하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이전의, 기계와의 연장선상의 인간이자, 요컨대, 사이보그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연구자가 다루는 인간상은 탈개성화된, 다시말해서, 개체로서의 성격을 구비하기이전의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은 이를테면, 광고의 텍스트에서 유동성을 띠고 나오거나 아니면 물방울같은 자연물을 닮은, 개성적 특징을 갖추기 이전의 익명적이고 불특정한 인간이다. '부유(浮遊)하는 인간', '익명으로서의 인간'이자, 아직은 완전한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그래서 단지 이름만의 인간인 명목상의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을 다룬다는 것은 근대적 의미의 소외된 인간을 다룬다는 것과 궤를 달리한다. 소위 사이버시대의 공간에 존재하는「하이퍼휴먼, hyper·human」, 즉 '과도(過渡)적 인간'이자 포스트휴먼이다. 이러한 인간은 외부의 정보를 자신의 몸에 입력하고 체화하는 사이보그의 몸을 닮은 인간이다. 고정된 몸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유동하는, 탈고정적인 몸을 갖고 물처럼 유동하는 인간이다. 발표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언급한다. 광고나 간판이 주는 간략하고 즉각적인 효과는 현대인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너무나 친근하다. 그 속에 담긴 메시지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우리가 지향할 바인지의 화두를 던진다. 그것들은 잠깐이나마 관람자에게 생각할 화두를 던진다. 오늘의 인간은 기술의 발달에 적극적으로 맞추어 나가되 본성과 정체성을 이루기 위한 또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3 방법론과 기법의 측면에서 발표자는 현대산업의 부산물인 인조가죽이나 스테인레스 스틸, 플라스틱, 유리, 아크릴, 네온, 벨벳과 실크등 여러 재료를 사용해서 오늘의 인간상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는 이러한 재료들에 의한 아나로그적 접근이 오히려 디지털한 인간상을 그려내는 데 아이러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디지털이미지를 앞세운 지극히 드로잉적 편린들이 아나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중적 방법을 시도한다. 이목구비가 일정하지 않고 고정적인 위치를 갖지 않을뿐만 아니라, 가상의 경계 안에서의 어셈블리지를 통해 포개어지고 이그러지는가 하면, 드러나고 사라지는 인간 존재의 편린들을 보여 준다. 종국에 이르러 인간상은 물방울같은 자연사물과 진배없는 탈개성화를 드러내는 데 이른다. 형태만 있고 개성을 상실한 파편들이 하나의 격자를 이루면서 텅빈 격자와 채워진 격자가 차별화되는 과정을 시사한다. 일반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인간상이 종국에는 물화(物化)된 자연의 물(水)같은 형상을 띤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허공에서 부유하면서「하머니」를 이루는가 하면, 연속의 맥락을 이루면서 하나의「체계」를 구성할뿐만 아니라, 하머니와 체계를 이어가는 둥근'띠'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표자의 접근방식에는 조화라든가 체계, 발전 같은 입법적 카논이 엿보인다. 연구자는 오늘의 '기계·인간'이 어디로 지향할지는 동양의 자연관 내지는 총체로서의 자연으로의 귀의를 주장한다. 그의 근작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근원적 자연의 도(tao)를 다시불러들인다. 이 점에서, 연구자는 동양적 자연관으로의 귀소적 의지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4 이 글의 마지막 관심은 연구자의 시도가 어떠한 함의를 가질 수 있고, 특히 오늘의 인간상을 다루는 방식이 타자의 그것들과 어떠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기법들과 화면 전체는 디지털한 이미지들과 문자를 아나로그의 방식으로 번안했다는 데 뜻이 있다. 사랑·하머니·발전과 같은 텍스트를 삽입하는가 하면, 흔히 대중작가들이, 그것도 정통회화의 기법을 무시하고 키치를 빌려그린 심플한 드로잉을 구사한다. 드로잉으로 다루어진 인간들은 얼굴들이 형태만 있고, 그것도 대개는 이목구비가 애니메이션에서 보듯이 희화되고 생략되고 간소화되었다. 형형색색의 인물들이 윤무형태로 돌면서 커다란 타원형의 엇셈불리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사이버시대에도 불구하고 아나로그한 자연으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하려는 데 뜻이 있다. 말하자면, 아나로그는 항상 디지털에 앞선다는 경고를 잃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구자가 디지털한 인간상을 자연으로 되돌리고 자연에 귀속시키려는 의욕을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연구자의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대중문화와 첨단 문화를 가치 지향적으로 이해하고 예술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려는 데 뜻이 있다. 문제제기에 대한 결론과 관련해서, 발표자는「연구노트」의 말미에다 이렇게 적고 있다.
…인생이 조금은 풍요롭고 여유있게 되려면 기술의 발달에 적극적으로 발맞추어 나가되 선한 본성과 더 나은 정체성 내지는 집단의식으로의 진보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다양성과 지역성이 존중받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사이버공간을 긍정적인 여론형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그 곳에서 교환되는 더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인류의 밝은 미래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테크노피아와 대중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화속에서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김복영
Vol.20050921b | 윤보숙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