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방에숨다!

차민영 설치展   2005_0921 ▶ 2005_0930

차민영_그녀가방에숨다!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빔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21_수요일_06:00pm

갤러리 빔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02_723_8574

렌즈를 통한 일탈의 욕망과 은밀한 조우 - 차민영의 "자전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에 관한 짧은 글 ● 차민영의 좁은 방에서 나는 묵직해 보이는 검은색의 낡은 여행가방을 처음 대했다. 그 행선지가 범상치 않(았)을 것 같은 가방을 바라보면서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었는지 쉽게 가늠 할 수 없는 이 여행가방이 누군가의 특별한 목적에 이끌려 오랜 시간을 함께 떠돌았을 것을 상상했다.

차민영_자전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_혼합재료_25×27×23cm_2005

차민영 작품의 외형은 플라스틱 상자, 여행용 가방, 커다란 문 등의 일상적 오브제이다. 이 글에서 특히 나는 작가의 "자전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외형이 오브제라고 말함은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작가가 차용한 여행 가방 속에 만들어진 실재(fabricated reality)가 존재함을 염두하기 때문이다. 차민영의 여행가방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가방은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뚜껑이 비스듬히 열려있고 그 열린 틈 사이에는 작가가 판화로 찍어낸 흑백의 자전거 체인부분의 이미지가 부착되어 있는데 그것은 가방의 내용물과 모종의 연계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발견되는 것은 커다란 동전 만한 조그만 어안 렌즈인데 그 렌즈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연극이나 영화의 한 부분 같은 장면(tableau)이 미니어쳐 모델의 형식을 빌어 보여진다.

차민영_목적없는 탈주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5
차민영_목적없는 탈주_혼합재료_19×23×25cm_2005

가방 안 실내의 창 밖으로는 물고기들이 지나가는 해저풍경이 보이고 막 자전거를 수리하다가 떠난 듯한 주인공이 부재한 공간 안에는 차민영이 실제 작업을 할 때 다뤘음직한 판화 도구들, 작업대, 선반, 잉크통들이 다분히 일상적이며 동시에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공간 안에 천연덕스럽게 놓여져 있다. 실내의 중앙에 세워진 고장난 자전거는 현재로써는 그것을 타고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넓은 창 앞에 놓인 나무 의자는 누군가가 거기 앉아서 밖으로 보이는 가방 안 내부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해저의 풍경을 한참이나 응시했음직하다. 이런 여행가방 속의 다소 몽환적인 장면을 어안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며 떠올린 것은 "Miniature causes men to dream"이라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말과 함께 영국 현대 연극 연출가 피터 부룩(Peter Brook)의 연극의 공간에 대한 그의 언급이다. 부룩(Brook)은 그의 저서 열린문(The open door)에서 "상상이 감동을 받으려면, 모든 요소에 대해 최고의 미를 추구해야 한다. 일본의 가부끼나 인도의 카타칼리의 경우에 분장에 들인 정성과 아주 작은 소품의 완벽성은 당연히 순수 미학적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마치 디테일의 순수성과 같아서 성스러운 것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세트 안에 있는 모든 것, 음악과 의상은 존재의 또 다른 단계를 암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주 작은 몸짓은 그로부터 진부하고 천박한 것을 삭제하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다." 라고 했다. 앞서 묘사한 차민영이 만들어놓은 가방 안의 내부세계도 작가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모델 메이킹 작업과정을 통해 단편적인 한 장면을 연출하기보다는 하나의 완성된 나래이티브를 암시하기 위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부룩이 언급한 '또 다른 단계를 위한 암시'의 하나로 해석된다.

차민영_Wonderhole Project N A N O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5
차민영_Wonderhole Project N A N O_혼합재료_25×20×23cm2005

관객은 작품 속의 나래이티브와 대면하기 위해서 작가가 설치해놓은 하나의 장치와 같은 특별한 단계를 거쳐야한다. 그 특별한 단계라는 것은 차민영이 설치해 놓은 하나의 장치와 같으며 그것은 또한 관객이 양파의 껍질을 벗겨 가는 듯한 과정으로 작품의 외부에서 내부 세계로의 진입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장치는 관객이 처음 차민영의 작업을 대했을 때 보게 되는 하나의 오브제, - "자전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에서는 여행가방-, 그 오브제에 부착된 어안렌즈라는 하나의 관객의 시선을 모으고 약간의 왜곡을 만들어내는 장치, 그리고 그 렌즈를 통해 바라 볼 수 있는 미니어쳐 모델로 보여지는 사실적 신빙성(realistic authenticity)을 기초로한 은유적 환상적 세계를 관객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여정(journey)을 제공한다.

차민영_Wonderhole Project 헤이리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4

차민영의 가방 안의 내부세계는 작품의 제목, "자전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이 제시하듯이 구체적인 이야기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가방 밖의 세상이 해저라는 작가의 설정과 언제든지 용이하게 들고 이동 가능한 가방이라는 가동(movable)의 오브제와 교통수단으로써의 기능이 상실된 고장난 자전거가 있는 가방 속 내부세계의 아이러니의 결합, 그리고 그 고장 난 자전거를 고치려는 부재 하는 내부 세계의 주인공... 그 부재하는 주인공은 물 속에 존재하는 실내에서 땅 위에서 바퀴를 굴려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수리하며 탈출을 꿈꾼다. 이러한 다층적인 알레고리의 혼합은 결국 일상에 내재된 혹은 일상 편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일탈에 대한 욕구의 상상적 표현이 된다. 그래서 관객은 렌즈를 통해 작가가 만들어 놓은 내부세계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관조하면서 다소 무모한 탈출을 꿈꾸는 부재하는 주인공을 공감하면서 동시에 연민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차민영은 "자전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에서 관객에게 특정한 상황을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관객의 자유 독해의 여지를 둔 다의적 은유, 부룩이 말하는 '또 다른 단계를 위한 암시'를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관객 각각이 지닌 일상 탈출의 잠재적 욕망을 가만히 건드려보게 한다. ■ 양옥금

Vol.20050921a | 차민영 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