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이종희(들로화)展 / LEECHONGHOE / 李鍾熙 / sculpture   2005_0907 ▶ 2005_0913

이종희_상경묵시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금가루_42×80×5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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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07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신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이종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동차에 담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자동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동시대의 가치와 정향을 대변하기 위한 웅변조의 거대서사가 아니라 매우 단촐하고 소박한 자기 체험의 고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그의 고백에는 정착하고 안주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이 담겨있다. 그는 그 까닭모를 비정주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깊은 회한과 동시에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찾고 있다. 물론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삶 뿐 만이 아니라 현대사회 전체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나아간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작가의 실존과 더불어 익명화한 현대인의 삶의 정황을 담고자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종희가 만들어 내는 자동차 정체성은 자신의 체험을 담은 자전적 고백이자 현대인과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집결체이다.

이종희_면도한 Miss. kim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_35×1000×34cm_2005

선인장을 든 누이 ● 짐을 싸서 어디론가 떠나가는 장면은 격변기 한국사회의 유동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농촌 공동체를 바탕으로 정착민의 삶을 살았던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비정주(非定住)의 삶으로 전환했던 시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종희가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는 방식은 매우 소박하고 간명한 내러티브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의 체험 자체는 매우 역동적이다. 이종희 만큼 이사를 많이 다닌 사람도 드물다. 그의 이사경력은 한 작가의 유년과 성장기를 가늠해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1968년에 경남 진양군 진성면 상촌리에서 태어났다. 월남참전용사인 아버지를 태어난지 2년이 지나서 만난 그는 경남 문산의 정촌리, 진주시를 거쳐 경기도 양평의 양수리로 이사했고, 이후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포천군 내촌리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용인으로 이사 했다가 일년 정도 후에 원래 살던 내촌리 집으로 다시 이사했다. 4학년 때 남양주 천마산 자락의 팔현리로 이사했다가 같은 골짜기 동네의 형제바위로 이사했다가 거추리로 다시 옮기 살기를 반복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서울로 유학해서 자리 잡은 삼선교에서도 서너 차례 옮겨 다녔으며, 이후 군대에서도 다섯 군데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결혼 후 7년 동안 살고 있는 신촌의 집은 이종희의 인생에 있어 최장기간의 거처이다. 이렇듯 시시콜콜하게 그의 이사 경력을 나열해 보는 까닭은 그것이 떠나는 데 익숙한 작가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결정적인 단서이자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자상한 해설서와도 같기 때문이다.

이종희_단란 모스크바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_160×300×14cm_2005

통속적인 삶의 단편을 담은「상경묵시(上京?示)」는 이사의 연속으로 점철된 이종희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다. 아기자기하게 이삿짐 트럭과 가족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야기 구조의 입체작업 위에 옅은 채색을 가하고 금분을 살짝 입힌 이 작품은 대단히 역설적인 재치를 담고 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거듭했던 그의 아련한 유년과 성장기, 그리고 성년의 삶에 이르는 고달픈 기억을 반짝이는 유머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가는 이삿짐 트럭 앞 칸에 화분을 안고 있는 소녀가 있다.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과 다소간의 불안함 속에서도 잔잔한 삶의 희망을 안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아이이다. 장독, 보따리, 텔레비전, 옷장, 냉장고, 밥상, 엘피지가스통을 등 트럭 위로 가파르게 올라있는 짐꾸러미들은 그 자체로 가파른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찌그러진 바퀴는 터덜터덜 어디론가 떠나가는 지친 걸음을 담고 있다. 운전석의 커버를 없애고 트럭에 탄 일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삿짐을 꽁꽁 묶은 밧줄도 없다.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자동차의 외관을 생략한 것이다. 이종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입체를 올려놓는 물건인 좌대를 그냥 좌대로 쓰지 않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로 표현한다. 길다란 좌대 끝에 그는 벽면 드로잉으로 계단을 그려 넣는다. 자동차가 도달한 그곳 막다른 길 앞에 계단이 놓여있다. 짐을 풀어 놓는 곳에서 만나는 계단. 이것이 이종희가 만나온 삶이었다. ● 톱밥 재료의 거친 맛을 살려서 만든 대형 트럭「누이는 바그다드로 간다」는 이사를 가는 일가족의 표정들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흙 작업, 석고 캐스팅, 톱밥붙이기, 채색의 과정을 거친 이 트럭은 선인장과 도마뱀 마크, 해드라이트 이외의 모든 덩어리가 검은 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주인공은 녹색 선인장이다. 특히 선인장을 든 아이가 있는 이삿짐 트럭의 검은 색채는 녹색 선인장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그 큰 덩어리 전체를 만든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이삿짐과 화분의 사무치는 애절한 추억을 담고 있다. 그는 지난한 노동을 거친 커다란 작업 전체를 작은 선인장 하나에 소급하여 몰아줄 줄 아는 작가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사에 대한 통속적인 체험은 이종희에게는 그냥 체험이 아니라 뼈저린 애환으로 남는 삶의 체험이다. 그는 이렇듯 수많은 이사의 연속 가운데서 그가 잃은 것들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을 일기장과 비망록으로 꼽는다. 잦은 이사를 거치면서 그에게는 단촐하게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는 오래된 것들을 남길 수 없었던 삶. 그것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성장해온 이종희의 삶의 모습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나긴 이사의 연속을 통해 이종희는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쾌활한 성격을 가진 성인이 되었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마음을 담아 감동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추억할 수 없는 팍팍한 삶을 살아온 이종희가 들려주는 이삿짐 트럭 이야기는 고단한 삶 속에서 캐낸 낙관의 서정을 담고 있다.

이종희_유통의 질서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브론즈, 대리석_32×74×34cm_2005

몸으로 만나는 자동차 정체성 ● 자동차는 필연적으로 몸과 만난다. 몸과 자동차의 만남이 야기하는 이종희의 내러티브는 다양한 자동차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작은 스쿠터에 올라 서로 몸을 기댔을 때의 느낌이나 단 둘이 어디론가 떠나며 나누는 내밀한 소통은 자동차가 매개하는 몸과 몸의 만남이다. 몸과 자동차의 만남은 여성의 신체를 빗댄 자동차에 이르기도 하며, 현대인의 욕망과 현대사회의 병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엉뚱한 상상을 발산하기도 한다. 얼굴 이외의 부분은 생략하거나 덜 다듬어서 형상을 날려버린 스쿠터를 타고 있는 인물상「북회귀선을 달리다」가 표현해 내고자 한 것은 스쿠터에 세 사람이 탓을 때의 꽉 찬 느낌 같은 것이다. 함께 좁은 공간에서 몸을 싣고 어디론가 갈 때의 살가운 느낌을 그는 작업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 느낌을 살리려는 작가의 의도 때문인지 스쿠터와 사람들은 한 몸이 되어있고, 얼굴을 제외한 사람들의 몸도 서로 붙어 있는데, 그들의 신체는 밀착을 넘어 거의 한 몸으로 붙어있다. 자동차 토루소 작업「면도한 미스김」은 '꼬마자동차 붕붕'을 연상하게 하는 아담 사이즈의 일러스트 조각이다. 그는 팔다리를 바퀴에 빗대고, 해드라이트를 앳된 처녀 가슴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살짝 들려있는 자동차 바디 아랫부분을 엉덩이로 만들어 놓고, 움푹 들어간 운전석은 그 나머지 중요 부분으로 만들었다. 여성의 신체에 빗댄 자동차의 상상은 이종희 특유의 은밀한 상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픈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한쪽 손은 사타구니에 다른 한손은 가슴에 닿아있는 두 남자가 있다. 남자들의 우정, 남자들의 관계를 담아낸 이 작품「전략적 제휴」의 그로테스크함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동료작가의 얼굴을 닮은 이들 두 남자의 얼굴에 담긴 알 수 없는 행복과 안락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남성들 간의 관계를 엉뚱한 맥락으로 풀어낸 이종희의 발칙한 상상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종희_질주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스테인레스, 알루미늄_85×200×40cm_2005

사람들을 실고 다니는 자동차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종희는 자동차를 매개로 동시대의 삶의 정황들을 날카롭게 읽어낸다. 빨간 넥타이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2미터 대작의 경주용 자동차의 모습을 담은「질주」는 달리는 물체를 카메라에 담았을 때 나타나는 흐릿한 초점을 노린 거친 터치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그는 작품 여기저기서 흙을 만진 사람의 손맛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물건을 뽑아내려는 조소작가들의 일반적인 강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감성을 표출하는 것이 그의 제일의 목표이다. 그가 만든 자동차에는 도롱뇽이 붙어있다. 청정지대에서만 사는 도롱뇽을 통해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간접적으로 담아내려는 의도이다. 질주본능의 현대사회에 경도된 익명의 한 사람이 운전하는 경주용 자동차 앞에는 도롱뇽 한 마리가 붙어있는 것이다. 조폭과 삐끼와 백인직업여성들이 줄지어 타고 있는 봉고차「단란한 모스크바」는 작품의 양쪽 면에 모스크바 궁과 모스크바 단란주점 드로잉을 각각 그려 넣음으로써 입체작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로잉이 뒷받침하는 방식의 설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직업여성들을 상징하는 모스크바 단란주점과 러시아의 상징인 모스크바 궁전 드로잉은 비좁은 봉고차에 타고 있는 하얀 피부의 여성들 속에 각인된 역설의 현대사를 드러내고 있다. 입체와 드로잉의 연쇄 속에 올망졸망하게 집결한 천민자본주의의 동시대를 집약한 이 작품은 이종희의 자동차가 사람이나 물건을 이동시키는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종희_전략적 제휴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_62×116×30cm_2005

이종희의 자동차들은 각각의 용도에 따라 고정된 차량의 이미지를 바꿔놓기도 한다. 검은색 자동차에 검은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싣고 있는「픽업」은 소모품으로 존재하는 집단화된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정장 남성들과 정장 여성들이 무표정한 부동자세로 서있는 장면 속에 익명화된 개체들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현대 사회의 집단주의 경향을 드러낸 것이다. 익명성 속에 은닉한 현대의 실상은 이종희의 어눌하면서도 날카로운 언어 앞에서 명료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개발 경제시대 한국을 상징하는 자동차인 '포니 픽업'은 이외에도 실패한 로또들, 스케치북, 동전 등의 오브제들을 싣고 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듯이 트럭은 희망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간다.「꽃배달」은 평화를 지키지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이 탄 지프차 뒤에 꽃을 싣고 있다. 오밀조밀한 작은 군용차로 꽃배달에 나선 아기자기한 이 작품에 비해 중량감이 훨씬 큰 작업도 있다. 신사복을 입고, 선글래스를 낀 사람들이 타고 있는 군용 트럭「검은꽃」은 이번 출품작들 가운데 유일하게 브론즈로 떠낸 작품이다. 군용 차량의 크기에 비해 왜소하고 옹색해 보이는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커다른 화강석으로 만든 좌대의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

이종희_꽃배달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_16×31×14cm_2005

작업실에서 전시장으로 작품을 싣고 떠나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삼륜차「유통의 질서」에 이르면 이종희의 유머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역설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작품을 싣느라 땀 흘린 뒤에 트럭 운전석 옆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돌린 후에야 작업실 밖의 세상 구경에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작가. 작업실 바깥에서도 존재하는 작가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이다.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는 명상적인 작업인 셈이다. 이종희는 이 작업을 마치 액자 소설처럼 구성하고 있다. '조각 속의 조각'이라고 명명해야할 이 작품은 폴리코트로 만들어서 아크릴로 채색한 삼발이 자동차 짐칸에 자신의 브론즈 작품을 얹어 놓음으로써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브론즈나 석재, 스테인리스 등으로 정형화된 팔리는 작품에 대해 역설을 담아내고 있다. 자기 자신도 브론즈로 떠낸 소품 조각을 미술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작품 유통 구조를 비꼬는 마음을 조각 속의 조각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다. 이종희는 움직임을 전제로 하는 자동차라는 물체를 통해서 고정되지 않는 삶의 원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그것은 차량이 북적거리는 복잡한 도시의 한 복판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자가용 승용차의 여유나 혹은 그 반대의 깊은 고독을 담은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떠나면서 나누는 마음의 대화이기도 하며, 어디론가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일가족이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로는 자동차 작업을 통해서 외형과 기능성에 따라 정해진 고정된 관념을 슬쩍 바꾸어 놓기도 한다. 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차량의 용도와 분위기가 뒤바뀌는 엉뚱한 상상의 담지체이기도 하다. 그가 만들어낸 자동차 정체성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머무르지 않는 삶의 역정을 그리는 파노라마이다. 하여 이종희의 자동차 이야기는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을 이야기한 박혜정의 노랫말을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게 한다. "언제나 떠날 때가 아름다웠지. 오늘도 비는 내리고 거리의 우산들처럼 말없이 돌아가지만, 아! 사람들이여,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 김준기

Vol.20050910b | 이종희(들로화)展 / LEECHONGHOE / 李鍾熙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