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사랑의 힘을 빼앗지 말아요

얼굴-그후의 풍경展   2005_0914 ▶ 2005_0930

김경윤_제 작품의 일부가 되어주시겠어요?_혼합재료_공간설치_2005

전시오픈_2005_0914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경윤_김미현_김용현_김현경_노명수_도기종 박효민_윤원진_이영실_이진주_이진향

롯데갤러리 안양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88-1번지 롯데백화점 7층 Tel. 031_463_2716

얼굴-그후의 풍경전, 내게서 사랑의 힘을 빼앗지 말아요하나의 담론이 모든 군생집단 밖으로 추방당하며 스스로의 힘에 의해 비실제적인 것 안으로 표류하게 되면, 그때 그것은 '긍정'의 장소가 되는 수 밖에 없다_롤랑바르트 ○ 유기체문화와 미리 설정된 원리 속에서 목적을 가지고 우리는 전진하고자 한다. 원리를 파악한다. 그것은 일찍 세상과의 이별을 전제하였고 도덕을 무기로 간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돈에 익숙하지 않거나 가면의 질서 속에 죽음을 향한 향락의 문화로 점철된다. 무엇보다도 그 무질서를 공간화시키는 오류에 풍덩 빠지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조화, 그 우주적 힘을 놓치고 있다. 그곳의 가면적 질서, 강력한 메커니즘의 집행자는 우리를 너무나 슬픈 빛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고 그 깊은 구멍의 니힐리즘은 끊임없는 부조화를 생산한다. 목적과 원리의 협주는 자발적 의지로 포장한, 주체의 기호를 종속의 굴레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은 가면을 전제한 슬픈 이야기의 풍경이다.

김미현_나오기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05
김용현_우는남자_혼합재료_50×50cm_2005

그 안타까운 풍경 속의 얼굴, 얼굴 속의 풍경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들어낸다. 유리 구슬 속에 갇힌 그대의 얼굴... 얼굴은 세상의 표면이다. 그러므로 그곳의 여명은 감각작용의 아방가르드가 된다. 자아의 의지가 극대로 솟구침과 동시에 의미의 세계는 나무가 된다. 동시에 모든 것이 일순간 사라지는 역동적인 대지이기도 하다. 얼굴은 그 외부의 풍경과 직접적으로 교류한다. 시간과 세월을 머금은 채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얼굴에 여명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에서 엷은 미소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왜냐하면 얼굴이 마주하고 있는 강력한 풍경이 그 강도를 잃어버리고 목적과 원리에 종속된 채 얼굴의 의지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얼굴의 폭력적 의지는 풍경을 선과 악, 비난과 칭찬, 죄와 구원 같은 극단적인 이분법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러면 우리는 애써 사라지는 세계의 뒷모습만 바라다 보아야 하는가- 얼굴도 머리도 해소되는 저 절정의 정오에서... 실재적 시간이 멈추어버린 그 한 낮의 음흉한 미소를 우리는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처연한 낙조 속에서 풍경과 좀 더 근접할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새로운 여명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일까?

김현경_쉼_장지에 채색_114×88cm_2005
노명수_세월익히기_한지에 수묵_34×70cm_2005

우리는 세계를 정면으로 맞이하고자 한다. 최대한 근접해서, 대상의 소리를 포획하는 기다림의 적막 속에서…얼굴은 세상의 풍경이요 풍경은 얼굴의 거울이다. 얼굴과 풍경은 세상 위에서 병행적으로 상호침투 한다. 우리는 그곳의 삶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다시 9월이 오고 다음날 아침이 오는 그곳의 다른 생명을 기다리며… 그리하여 세계의 진정성을 드러내어 우리가 덮어쓰고 있는 가면을 벗고자 한다. 끊임없이 아니오를 외치는 부정의 가면이 아닌 세계를 긍정하는 수줍고 냉혈적인 생명의 미소를 펼친다. ● 우리는 세계를 삼원적 과정으로 표현한다. 먼저, 나, 자아로부터 출발한다. 세계를 재현하는 나, 모든 변화를 공간화시키는 나, 곧 '내게서' 발산되는 욕구, 습관, 기억의 서사시와 그대들과의 공명의 장을 나타낸다. 이 공간에서 그대와 나의 삶은 시작되고 완성된다. 그 다음 우리는 내게서의 재현적 의지가 무화 되는, 욕구가 사라지는 저 억만 겁의 사랑의 시간, '사랑의 힘을' 표현한다. 이 시간의 지평이 있기에 그대와의 사랑은 영원 속으로, 끊임없는 생성의 사랑으로 확장된다. 일견 이곳은 욕망이 생산되는 혼돈의 연속인 것 같지만 최고 강도의 힘이 미세하게 동시에 질서를 간직하여 운위되는 삶의 대지이다. 이 대지에서 한송이 꽃은 그 생명을 발아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욕구, 욕망을 슬기롭게 제어하여 자아 외부의 적들을 보다 친근하게 맞이하는 마지막 방점을 목격한다. 자아의 욕망을 '빼앗지 말아요'라고 속삭이는 어는 화가의 낙관과 어는 소설가의 수동적 마침표가 이곳에서 전개된다. 그런데 이 수동적 종합이 강화될수록, 그것이 실천적 공간속으로 질주할수록 다시 자아의 공간은 확대되고 타자와 공명하고자 한다. 곧 내게서의 재현적 의지로 회귀하는 것이다.

도기종_잘봐! 내가 어떻게 이기나...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52×240cm_2005
박효민_臥遊 (와유)_장지에 채색_200×100cm_2005_부분

세계의 시,공간 곧 내게서 사랑의 힘을 빼앗지 말아요를 우리는 드러내고자 한다. ● Round One, 내게서 : 자아와 성찰 그리고 공명의 얼굴-풍경 ○ '인간으로서'가 그 농도를 가장 밀집시키는 장소이다. 삶의 얼룩을 맑게 정화하여 저 세상 넘어 구원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곳에서 그것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하나의 좌표를 형성한다. 가장 본래적인 인간다움의 얼굴과 서사적 풍경이 전개된다. 이영실은 우리의 내면화된 욕구를, 인간의 가장 인간다움을 거리의 사유로 재현한다. 얼굴에 내재한 정치적 지형도를 객관화하여 세상과 멀어지는 자아 그리고 거리의 실체를 제시한다. 김미현의 얼굴에는 풍경이 들어간다. 이야기가 발현되고 사라지는 매 순간의 감각작용을 절단하여 그 풍경을 되새김한다. 풍경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반성적, 반복적 사유는 대상을 포획하고 그것과의 동행을 감행하는 어느 집행자의 얼굴이다. 파문을 절제하는 우리의 표정이다. 박효민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서성이는, 인내하는 절정의 시간을 재현한다. 사물은 부재하고 자아는 표류하는 데 그 한가운데서 드러나는 점이지대의 파문 과 빈 나룻배… 작가는 그곳을 치유하고자 한다. 얼굴-머리-세계가 함께한다. 김경윤은 어느 오후의 일기예보와 같다. 안의 따스한 온기를 바깥으로 전이하여 잃어버린 우산이 주인을 되찾게 한다. 나-사물-세계가 공명하는 재현의 장을 솟구치게 함으로서 얼굴-풍경의 최상의 조화를 모색한다. 작가의 지향점은 부유하는 대상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따스한 시선이다.

윤원진_익명의 초상_한지에 수묵_140×89cm_2005
이영실_shopping_한지에 수간채색_130.3×193.9cm_2005

Round Two, 사랑의 힘: 세계의 세계다움과 너그러운 아버지의 사랑을 간직한 얼굴-풍경 ● 모든 가면이 사라지며 강도적 에너지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무균질의 세계. 그대와 내가 서로 근접하여 목소리만 들리는 무형식의 풍경. 그 미소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 물을 수 조차 없는 곳이다. 김현경은 사물과 세계를 가르는 슬픈 재현의 긴장을 해소한다. 주체가 탄생하면서 돌연 나타나는 폭력적 사유에 어떤 여자의 립스틱을 덧칠하는 것, 세상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을 제시하는 얼굴-풍경이다. 이진주는 세상의 표면, 그것의 잠재적 풍경을 표현한다. 현실화 된 것은 단지 하나의 가면임을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너그러운 아버지가 실존함을 작가는 그해 여름 사막을 횡단할 때 발견했던 것이다. 김용현은 어떠한 이념도 해소하는 초월적 시간성의 그 대지 위를 항상 서성인다. 그곳을 탐하는 자 만이 비로소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안다. 그 무한의 주유가 끝날 때를 기다리는 얼굴-풍경과 현실적 재현을 바라보는 그의 슬픔 그리고 잠재적 미소… 이진향은 본질적 생명을 어느 누구보다 잘 포착한다. 나와 대상을 가로지르는 그 사이공간에서 친구의 나지막한 음성을 정말 아름답게 전개한다. 그 천상의 소리는 재현을 넘어 대상과 나를 합일한다. 또한 그것이 색의 세계임을, 색만이 세계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세잔이 말했다. "나는 세상의 순수,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부딪치는 혼재한 감각을 그려보고 싶다. 그림은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고 색만을 재현해야 한다"

이진주_기대의 이미지_장지에 채색, 비단_가변설치_2005
이진향_네식구_순지에 채색_45.5×38cm_2005

Round Three, 빼앗지 말아요: 그대의 스승이기 보다는 친구가 되고자 한다. 세상과 근접하면서 자아가 최대한 확장되는 얼굴-풍경 ●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전사는 '폭력적'이었다. 때로는 계몽의 이름으로 때로는 자본의 이름으로. 그러한 인간의 정신-신체에서 벗어났을 때, 경건한 엄숙주의에서 탈피했을 때 새로운 생명은 탄생한다. 얼굴과 풍경의 공통의 경계가 요동쳐 새로운 사유를 펼치는 비유기체적 생명의 탄생. 새로운 윤리가 탄생하는 선별의 얼굴-풍경 사유하기. 윤원진은 문명이전의 세상과 너무나 밀접한 그곳의 얼굴-풍경을 제시한다. 얼굴 표면의 형식은 많이 해소되고 주체가 탄생하는 검은 구멍 또한 한 곳에 정주되어 있지 않은 흐름의 연속적 변이를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니힐리즘은 보이지 않는다. 바깥의 풍경이 검은 구멍속에 들어가 있다. 노명수는 얼굴-풍경의 내밀적 강도를 드러낸다. 형태와 배경의 감각작용 속에서 그의 얼굴-머리-세계는 서로 연결접속 되어 있다.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조용히 방점을 찍고 있다. 새로운 주체가 탄생되고 있다. 도기종은 매일 아침 우리가 맞이하는 얼굴-풍경이다. 재현의 칼날을 무력화하는 '살아있음의 세계' 그리고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리를 거리로 사유하면서 생명을 묘사하기, 전복을 꿈꾸는 것 그것이 작가의 생존법칙이요 얼굴-풍경이다. ● 우리는 세계와 대면하는 얼굴-풍경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것은 반쯤 열려있는 자태로 우주와 서로 침투한다. 매일 아침의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주적 힘을 사유한다. 그러한 사유의 형식 속에서 작동하면서 항상 탈형식화를 포착할 때 우리는 세상을 '긍정'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행복'의 담론을 이야기하고 그대의 얼굴-풍경에는 미소가 돌아올 것이다. ● 그리고 당신들이 세계 세계라고 부르는 것, 당신들은 그것을 창조하면서 시작해야만 한다. 당신들의 이성, 당신들의 상상력, 당신들의 의지, 당신들의 사랑은 그 세계가 되어야 한다_니이체롯데갤러리

Vol.20050909b | 얼굴-그후의 풍경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