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909_금요일_06:00pm
space MOM 청주 흥덕구 가경동 1411번지 Tel. 043_236_6622
하드보일드 하드원더랜드 ● 화면은 블랙 코메디, 사이코 드라마,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돌연변이적 캐릭터 등에서 볼 수 있는 뭔가 음흉하거나 썩 기분 좋지 않은 섬뜩하거나 기묘한 얼굴들로 가득하다. 만화적인 이 유사인간-동물들은 최면에 걸린 듯 뭔가를 주시하거나 파괴할 듯이 보이며 환상적인 공간에서의 현실을 조롱하며 바라보듯 지금-여기의 욕망의 눈빛으로 보이기도 한다. 임성수는 만화적인 이미지를 잘 다룬다. 그에게 있어서 그러한 시각대상들은 자신의 감수성과도 잘 맞으면서도 자신의 몸 자체가 그 코드들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임성수는 만화적이고 인형이미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다. 그 속에서 재현을 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내러티브를 만든다. 이렇게 임성수는 만화적인 혹은 인형적인 기표를 재료삼아 자신 내부의 잠재된 욕망을 표출해 놓는다. 그래서 떠도는 기표들로 채운 가벼운 화면은 이상하게도 모호하고 불안한 계략이 숨어 있는 시선을 주고 있다. 일단 화면에 재현하고 있는 도상들은 만화적이긴 하지만 그가 만드는 상상적인 인형그림이라고 해야겠다. 그 인형그림들의 마스크와 행위들은 이성적인 인간의 이면에 감추어진 잔혹성이나 공포, 강박관념들 혹은 고통과 쾌락을 임성수식으로 교배하고 교란하여 충돌시키고 있다. 그 이미지들은 어쩌면 익숙했던 이미지들을 자르고 합성하여 마구 섞어 놓은 마치 패러디만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하며 혹은 낯설어 보이는 신형 캐릭터 같기도 하다. 이렇듯 만들어진 화면들의 이미지를 보면 덜 진화된 원숭이인간이 다른 상황들과 접속하고, 코쿤족을 이미지화하며, 우울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통한 유아기의 퇴행적 상황들, 잘려나간 신체조각 이미지들을 시각적 경험과 상상사이의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그 이미지의 존재들을 어떤 변신이든 가능한 유토피아적 공간에 가둠으로써 자신을 해방이라는 지점에 위치시킨다.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온 이미지로부터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포기하려는 것인데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에 자신을 불어넣는 이입의 대상이라고도 보인다. 다양하게 포착되는 화면들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접속의 상태와 유사한데 디지털 공간에서의 다양한 정보는 그것과의 접속 상태에서만 바라보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며 하나의 단서로 무한히 나누어지는 개별적 상황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인형-되기라는 기계로 형태변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임성수의 인형-되기는 그것 되기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언표들을 두서없이 나열한다. 인형이미지들을 기용하는 것은 재현하고자하는 불경스러운 계략들을 실천하고자하는 것인데 그 불경스러운 계략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일종의 원더랜드의 이미지로부터 멀어지는, 그것의 보편적 이미지에 불순한 조악한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해석에 대한 상황을 모호하게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환상의 유형 사이에서 변신시키고 번식한다고 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자신의 본래의 의미도 형상적 의미도 없으며, 다만 이미지의 다발적인 괴도 안에서의 분포가 있을 뿐이다. 임성수의 인형그림들의 분위기는 그러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전략적으로 회화적인 외양으로 감추고 있어 역설적이다. 임성수의 인형그림들은 인형의 의태적 신체를 기계적 장치로 삼아 불완전한 몸을 증폭시키고 변형시킨다. 그렇게 변형된 이미지는 무의적인 충동이나 욕망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함과 동시에 주어진 임무를 수행케 만든다. 여기서 주어진 임무란 자신의 거울을 자신이 만들어놓은 인형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여 주려하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 김원방은 인형의 인간적 유사성에 의해서 우리의 시선으로 하여금 강한 '의태적 행위' 즉 인형을 통한 자기 신체의 대체와 접목, 확장을 통해서 타자적 신체에 대한 의태적 시선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타자적 신체에 대한 욕망은 기본적으로 구축된 은유로서 '이상적 인간형상'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자기의 탈구축을 통해 나르시즘적인 환상의 영역을 증폭해 나감을 의미하며 수많은 타자적 시선에 의한 주체의 교환, 함몰, 타자적 유사인간적 실체를 향한 자기확장 및 자기대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인형이 됨으로서 '이중적 시선' 또는 '변질적 시선'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현대시각예술은 거대담론이나 이데올로기 선상의 단일 주체에서 벗어난 다多 주체에 대한 인식이 지배적인 현상이며, 논리적인 틀에서 벗어난 미세한 감각들이 지층의 표면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 표면들 중에 키치적 스타일이 있는데, 여기서 임성수의 인형그림들도 그러한 키치적 의사성에 반하고 있다. 키치적 속성은 물론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상기시키지만 꿈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와 공상이 지배하는 우주공간,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무차별적 방향성을 띠기도 하며, 전통적 의미의 아우라를 조야한다. 이렇게 키치적 스타일로 행하는 임성수의 그림들은 정체성, 경계, 질서, 가치체계를 교란시키고 모호하게 함으로써 금기시되었던 것에 긍정을 더하는 것이다. 만화적인 이미지를 적극 차용하는 그의 그림들은 어쩌면 이데올로기적 환상 혹은 판타지 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지만, 발생지점과 그것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며 또는 어떤 동일한 목적론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항상 어떤 '상황'에 비추어 변용되어 진술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에게 '대상 너머' 또는 '다른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야하는 수행이며 탈주이다. ■ 김복수
Vol.20050909a | 임성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