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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_2005_0907_수요일~0914_수요일_09:00pm
기획 및 연출_김은영_홍성민 안무_김현진_서현석 / 음악_바람곶(박우재_신현식_이아람_주보라) / 의상_홍서연 출연_곽재원_구본주_김나리_김지은_김현정_신강수_오창익_유지나_윤보애_이동윤_정동환 외 다수
후원_계원조형예술대학_한국문화예술진흥원_MINI(BMW) 협찬_대안공간 LOOP_쌈지길_LADY 트랜스젠더 클럽
영상작품의 차용을 허락해준 김범님에게 감사합니다
쌈지길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Tel. 02_736_0088 www.ssamziegil.co.kr
토탈 씨어터 앨리스 : 또 다른 발견 ● 영화와 연극을 나누는 차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본질적인 것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영화는 상상의 재현을 '지연된' 공간 속에서 다루는 반면 연극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현실화한다. 영화는 수많은 작은 분리된 기호들의 통조림 속에 꿈을 주입한 뒤에 그것을 이음매 없는 장치로 조합해지만 연극은 기호들을 한데 모아 완벽하게 새로운 현실을 생산하는데 소진한다. 그러므로 항상 동일한 가공의 시간을 무한히 반복해서 보여주는 영화 대신 우리가 연극에서 만나는 것은 매번 현실의 시간이 마법처럼 새롭게 변형되는 '이 곳'의 예외성, 즉 무대의 초월적 '지금'이다.
이러한 연극적 공간의 독자성은 때로는 현실을 재현하는 리얼리즘 서사 속에서 관습적 상징처럼 다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연극이 서사의 전달에만 충실할 경우 제도적 흔적으로만 간주될 수도 있지만, 역시 그것의 본령을 가장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것은 연극이 현실로부터 가장 낯선 곳으로 이주해 갈 때, 기호들의 완전히 새로운 잠재성을 드러낼 때이다. 이러한 연극의 역사를 우리는 서커스와 잔혹극, 초현실주의 혹은 구성주의의 다양한 시도들,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에서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에 이르는 현대연극의 탈-언어적 노력들 속에서 발견한다. 이들이 상상하는 세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참조는 세계의 무한성, 즉 모든 가능한 세계들의 존재를 주장한 16세기의 철학자 지오르다노 브루노에게서나 혹은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라고 주장한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잠재성은 어느 때고 그것의 머리를 든다. 그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동일성의 동굴 안으로 항상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바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부터 들어오며 우리가 그것의 공고함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의 근저를 변형시킨다.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예술형식을 거론하자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세계의 양태를 다루기 시작했던 초현실주의이다. '초현실'은 예술적 양식(style)이 아니라 세계의 양태(mode of the World)다. 레이몽 루셀은 이것을 관찰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20세기 연극에, 푸코의 표현을 빌면, '의미관계'(signification)가 아닌 '유사성'(resemblance)에 근거하는 재현의 공간을 복원시켰다. 그것은 언어가 세계로부터 분리된 상호-참조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사물들과 직접 교호하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의미는 불안정하지만 빛을 일으키며, 모호하지만 강렬한 사유를 생산하고, 세계의 장소들로부터 떠올라 먼 거리를 가까운 관계들로 대체해 나간다.
'컬트 로보틱스'에 이어 김은영과 함께 '앨리스'를 선보이는 홍성민은 이러한 유사관계의 현존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매우 놀라운 존재감을 불러일으킨다. 마그리트의 회화와 대중매체의 약품광고 캐릭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트랜스젠더(앨리스)가 갑자기 굳건한 근친성의 장(場) 안에 모여드는 것은 사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게다가 무대는 '쌈지길' 내부의 나선형 램프(ramp)로, 관객들은 전통적 연극에서라면 자신들이 바라보아야 할 곳으로부터 '객석'이 위치하는 곳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컬트 로보틱스'에서도 적용된 이러한 원칙 -무대와 객석의 전도(顚倒)-은 이 연극이 갖는 의식적 구조의 얼개에 해당하는데, 홍성민이 주장하는 '공감각적 디졸브' 즉 언어의 의미→이미지→사운드→냄새 등의 전이를 통해 시각중심에서 '감각의 민주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 관객들은 이 연극이 재현하는 현실을 이해하기보다는 '발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예술이 보여주는 것은 '가까운' 것도, '이해하기 쉬운' 것도, '친숙한' 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세계의 '양태'다. 관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 '자질'이다. ■ 유진상
Vol.20050908a |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