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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07_수요일_05:00pm
갤러리 가이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번지 Tel. 02_733_3373 www.galerie-gaia.net
유리꽃 정원 ● 코끝을 감아 도는 향기와 오색찬란한 천연의 빛깔. 푸른 들판 위에 활짝 피어 우리를 매혹시키는 꽃은 단연코 아름다움의 대표적인 상징체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미의 가치, 그것이 꽃의 전부였다면 그토록 많은 이들이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권기범의 작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분명 꽃이다. 화폭 안에서 그의 꽃은 때로는 활짝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도 하고, 때로는 은은한 꽃내음을 풍기며 흩날리기도 한다. 강렬한 색채와 구성.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작가 권기범이 전달하고 있는 꽃의 본질은 이것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꽃의 이미지 위에 대조적으로 겹쳐진 날카롭게 재단된 면들. 그가 굳이 꽃과 함께 깨어진 유리의 이미지를 결합하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한없이 투명한 유리는 모든 빛을 왜곡 없이 그대로 투과시키지만, 자칫 깨지기라도 하면 이를 통해 보이는 것은 전부 뒤틀리게 된다. 깨어진 유리조각들을 통해 바라보는 꽃의 이미지.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권기범의 꽃은 원래의 모습이 아닌 왜곡된 이미지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그려낸 꽃은 정확히 무슨 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철저한 관념적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바로 이러한 조형적 언어로 꽃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부정하고 있다. "월만즉결 물성즉쇠(月滿則缺 物盛則衰)", 달이 차면 기울 듯이 모든 만물은 번성했다가 곧 쇠하기 마련이라는 사기(史記)의 구절처럼, 꽃의 아름다움 또한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이 무상한 허구의 것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다.
아름다운 꽃과 유리. 작가 권기범은 이 둘의 관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꽃의 형상을 그려냄에 있어 자신의 손가락에 먹물을 찍어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지두화법(指頭畵法)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각각의 선은 그의 자유로운 몸놀림으로 인해 매우 유연하며 자연스럽다. 반면 자를 사용하여 날카롭게 그어낸 유리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경직되고 작위적인데, 이에 더해 강렬한 색채로 말끔하게 색칠된 모습은 전통적 동양화 기법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자연스러움과 작위, 이렇게 대립하는 꽃과 유리의 표현은 자연과 인위, 더 나아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대립을 의미하며, 이와 동시에 그가 만들어내는 유리꽃은 이들을 잇는 접점이요 매개체라 하겠다. ● 한때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의 덧없음. 이는 불변하는 삼라만상의 이치이기에 인간도 예외일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꽃은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한 오늘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의 환경 속에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꽃의 모습은 바로 새로운 문명과 사고방식에 급속하게 젖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는데, 이렇게 볼 때 결국 권기범이 그려내고 있는 유리꽃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자신, 그리고 우리의 분신인 것이다.
권기범이 그려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유리꽃」 연작은 그 표현 양식에 있어 초기작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유리꽃」 초기작에서 작가는 '면'적인 조형 요소를 통하여 꽃의 이미지를 구현하였고, 그 이후에는 '선'적 요소를 강화하여 꽃을 그려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 동안의 작품과는 달리 화면 전면에 색점을 퍼뜨리며 꽃의 형상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있으며, 또한 전시 공간 자체를 작품의 부분으로 끌어들이는 파격적인 전시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면'에서 '선', 그리고 '점'으로 이르는 그의 해체적 작업과정은 꽃의 외형보다는 그 내면의 본질적 의미를 담아내어 깊은 사의적 회화를 완성하겠다는 작가의 단호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 나는 한밤내 운다 //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 탑을 흔들다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너무나도 잘 알려진 김춘수의 시 "꽃을 위한 서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꽃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함을 자각하고 이를 깨닫기 위해 그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쏟아 정진하리라는 김춘수의 다짐은 애틋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여기 그림이라는 매체로 꽃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젊은 작가 권기범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치열하게 근본을 추구하고 고뇌할 그의 외롭고 숭고한 여정이 눈앞에 선하기 때문이 아닐까. ■ 고홍규
Vol.20050904c | 권기범 회화,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