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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02_금요일_06:00pm
남양주 아트센터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420-5번지 Tel. 031_591_4519
어떤 상태의 흔적 ● 인상주의자들이 붓질과 색채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현대미술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붓질과 사건. 혹은 붓질과 행위. 무엇보다도 하나의 흔적. 우리는 인상주의자들의 색채와 그들의 붓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결국 색채와 붓질의 근원적인 출발점으로서의 어떤 상태로 인해서다. 붓질과 색채가 구분돼 있지 않는 그 상태. 어떤 측면에서는 '인상'이란 단어가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 '인상'으로 인해 드러나는 주체의 태도와 개별화 되지 않은 토대는 이원론적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그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붓질을 통해 무엇을 추적해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 했던 '순수시각경험'이라는 어떤 상태를 주목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작가는 색채와 붓질을 통해 하나의 인상을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그 상태, 혹은 그 인상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리듬, 감각, 근원. 각자가 서있는 위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와 하이데거 역시 일종의 어떤 상태를 말하고 있다. 흔적. 의지적 흔적과 비의지적 혹은 우발적 흔적. 우리는 여기서 붓질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붓질은 오히려 색채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곧 주체의인상이며 태도, 그리고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흔적으로 남는다. 인상의 흔적, 붓질의 흔적, 색채의 흔적, 표현의 흔적. 어떤 상태의 흔적. '순수시각경험'이라는 상태. 인상주의자들의 상태를 시각기관에 반응한 빛의 흔적 그것으로만 볼 것인가? 오히려 그들의 색채는 빛에 저항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단순히 색채의 무절제한 남용으로서만 이해할 것인가?
하나의 가정을 해보자. 양날을 가진 날카로운 칼을 가정해보는데, 그것을 우리는 목적에 따라 사용할 것이다. 무엇을 자를 때, 우리는 양날 중 하나의 날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찌를 경우가 또 있다. 양날이 만나는 칼끝의 그 부분을 생각해보자. 어떤 상태는 바로 그 칼의 끝부분과 같은 것 일지도 모른다. 인상주의자들의 상태는 예리한 한쪽의 날이 아닌 양쪽 날이 만나는 칼의 끝부분에 놓여있다. 그들의 붓질은 서서히 미끄러져 또 다른 날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색채와 끝부분에서 만나고 있다. 그 칼을 분석적으로 해부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양 날이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종합적일 때 우리는 칼끝을 통해 찔러야만 한다.
하나의 고리는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그 방향으로 추동하는 지극한 힘과 저항력의 평형상태. 조금씩 움직이는 평형점. 그러나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고리. 그 출발점은 처음의 그것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불합리다.
이런 불합리의 상태에서 남겨진 흔적들을 우리는 대면한다. 두 작가는 분명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어떤 상태로서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이 흔적은 그들의 주관의 태도라는 면에서 서로 대척점을 이루는 것 같다. 그것은 차가움과 뜨거움의 차이라고 말해두자. 그러나 이 둘의 흔적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의 상태를 통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남겨진 흔적들에서 그 흔적들의 "있음"을 목격하는 것은 결국우리의 몫이다. 결국 작가와 관람객의 관계 역시 고리라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불합리를 잊지 말자. ■ 이재헌
Vol.20050902c | 배석빈_이자영 회화 드로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