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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02_금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 한전아트센터 전력홍보관 1층 Tel. 02_2055_1192 www.kepco.co.kr/plaza/
선(線)이 구성한 인간의 풍경 ● 인간군상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작가 장성아가 꾸준히 탐구하고 있는 주제이다. 인간의 형상을 인물화나 그와 유사한 장르를 빌리지 않고 풍경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작가들이 몰두하는 현대성에 접목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단견은 작품을 매개해 전달하려는 의미와 그것에 조응하려는 형상어법에 대한 이해에 이르면 간단히 극복된다. 풍경의 단위로서 인간의 형상이 원근법적인 공간성과 무관하게 단계적으로 화면을 채우거나, 하나 둘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바쁜 행보가 동영상 속에서 명멸하는 모습들은 작가가 인간의 풍경 속에서 추출한 기초적인 현상적인 언어들이다. 이러한 현상언어에 대한 작가의 연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작가는 풍경의 어근(語根)를 캐내려고 한다. 풍경(Landscape)이란 개념은 - 독일의 진보주의 미술사학자인 마틴 반케(Martin Warnke)의 견해에 따르자면 - 인간의 이해와 권력이 영향력을 가지는 특정한 지리적 영역 그리고 그것에 대한 표현이다. 현실에서는 아니겠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적 지표(Landmark)로서 분할 표시된 영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연 위에 각인된 인간의 흔적이 곧 풍경화라는 사실을 작가는 통찰한 것이다. 그리고 그 통찰력은 소묘의 중심원리인 선(線)을 화제(畵題)로 끌어내었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이 전개된다. 인간은 시공에 찍혀진 좌표의 고정적인 존재가 아닌, 상시적인 유동성 속에 조우하고 관계 맺으며 사회를 형성하고, 그 사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만든다. 인간의 역사는 흔적으로 남는다. 이 흔적은 과거가 시간상 멀어질수록 골을 패이면서 단순한 형상이 되어간다. 사회사 혹은 문명사적 흔적을 작가는 선으로 치환하고, 구상성이 남아있는 역사적 대상물을 선이 중심이 되는 형상작업을 통하여 재해석한다. 작가에게 선은 이제 단순한 조형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인 역사와 문명을 지시할 수 있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의 "철암풍경"은 멀지 않은 과거에 온 땅을 들썩였던 한국경제의 열병이 가라앉고 남은 상흔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도 작가는 유달리 뼈대만으로 남은 철골, 콘크리트 벽, 전깃줄 등으로 윤곽 잡힌 강원도의 풍경을 몇 개의 굵직한 선으로 파악하였다. 작가의 선묘(Drawing)는 유려한 예술상의 기교로서가 아니라, 그에 눈에 비친 사회상을 옮기려는 소통로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결론짓자면, 선으로 표현된 관계와 구조는 미시적으로 개별적인 삶의 모습도 되지만 모든 사회상에 대한 역사적 해석도 된다.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궁극적으로 상징하고 더 나아가 제유(提喩)할 가능성이 선에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전시에 기조를 이루는 것은 선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고이며, 이것은 인간의 문명과 사회사적 관점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가 파악한 선은 단지 미술의 조형요소라는 단순한 교과서적 정의의 한계를 넘는다. 무엇보다 그가 화면에 담아낸 주제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선사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나타난 문양들에서, 선사주거지의 움막을 덮었던 짚단에서, 옛 한성지도 위에 그어진 길들과 내천 그리고 산세의 줄기에서, 더 나아가 예리한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투영되는 도시의 풍경에서 작가는 선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언급한 풍경의 의미를 형상적으로 연역해 놓는다. 그의 작업은 문명의 발전(오늘날에 한국에서는 개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과 인간사회가 자연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던 행위를 예술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며, 현실과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인간의 행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진지한 연구로 읽혀진다. ■ 김정락
Vol.20050902a | 장성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