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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26_토요일_05:00pm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미술스튜디오 전시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656번지 Tel. 031_962_0070 www.artstudio.or.kr
프랑스 CEAAC 교환작가 참관기-1.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 교환작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3개월간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에 거주하며 작업하기 위해 프랑스행 대한항공 902편에 몸을 실었다. 4월 27일 파리에 도착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동역으로 출발했다. 4시간을 가야한다는 것을 프랑스에 도착한날 알았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프랑스에 TGV가 그렇게 많이 없었다. 우리가 테제베와 규장각 문서를 바꾸고자 했던 그 고속열차가 프랑스 전역에 없고 그것을 타려고 마음 먹었던 첫 번째 계획이 빗나갔다. 프랑스 북쪽을 가로지르는 일반기차를 타고 넓고도 풍요로운 땅, 유럽의 요지 프랑스를 감상했다. 여유롭고 물이 많은 평야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공기를 보여준다. 여기 2등석에는 담배피우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렇게 더운데도 담배를 그 자리에서 피운다. 정말 남 생각 별로 않는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낭시(Nancy)에 도착했다. 여기서 1시간 30분이면 스트라스부르그에 도착한다. 역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 작가 한명과 Ann Arend 매니져가 마중 나왔다. 곧바로 짐을 역에 맡기고 스튜디오를 안내 받았다. 여기서 3개월간 작업을 해야한다. 그리고 거기엔 캐나다 작가 Cristian Brault와 폴란드작가 Raura와Bartek, 독일 작가 Helena가 있었다. 그리고 두개의 동이 바로 옆에 있고 역 뒤편에 바스티움(Bastium)이 있다. 그 작가들은 주로 프랑스 작가들이다. 그날 오후 다시 숙소인 몰스하임(Molsheim)에 도착했다. 15분 후에 역에 도착하자. 세실(Cecile Yerro- Straumann)의 남편 피에(Pierre Yerro)와. 그의 두딸이 마중 나왔다. 그 집은 몰스하임 중심에 있으며 여기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말해줬다. 이렇게 스트라스부르그의 생활이 시작됐다. 그 집은 3층집인데 1층을 나에게 주었다. 그 날 저녁 피에는 한식과 비슷한 밥과 프랑스식 비프와 와인으로 저녁을 준비해줬다. 가져간 김을 꺼내자 그 집에도 김이 있다며 다른 종류의 김을 주었다. 그리고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차례로 내놨다. LA에 사는 세실의 언니가 10일전에 머물다 갔다고 했다. 두 딸 Fleur과 Line은 내가 먹는 것을 신기해하며 저녁을 먹었다. 피에는 스페인 출신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프랑스 엄마와 한국태생의 스위스 국적으로된 세실과 결혼했다. 그리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터키(Turkey)출신의 젊은 이민자 부부, 그리고 3명의 자녀와 이웃하고 있다. 터키 아줌마는 가끔 나에게 터키식 밥을 만들어 줬다. 다음날 아침 몰스하임 마을을 산책했다. 마을 입구엔 노란색 튜울립이 한창이었다. 작은 냇가엔 물이 가득하고 정말 신선하게 연일 흘러내린다. 그곳에선 카누와 낚시를 가장 많이 즐긴다. 스트라스부르그 시내를 관통하는 운하에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여기서 무었을 낚을까 생각했다. 4월은 약간 선선하며 약간 춥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옅은 비가 자주 내린다. 알자스(Alsace)는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다. 이곳의 지명은 독일식 지명이 많다. 독일에 속해 있을 때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알자스(Alsace)는 프랑스에서 잘 사는 곳으로 통하며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속철도를 알자스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것 중 하나다. 스트라스부르그는 도시가 2000년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92년 유럽의회가 만들어짐으로서 유럽의 수도가 된다. 유럽의 여행객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며 시내 중심에 1176년에 건축하기 시작한 대성당(La cathedrale)이 있으며, 그 앞쪽 광장에 쿠텐베르그(Gutenberg) 동상이 서있다. 서쪽으로 일강을 따라가다보면 프띳 프랑스(petite france)라고 알려진 작은 프랑스는 너무나 유명한 마을이름이다. 작은 운하로 연결된 수로와 양옆에 들어선 돌로된 집들, 베란다에 장식된 꽃들은 관광객들이 눌러대는 셔터소리와 함께 늘 북적거린다. 그 수로에 지나가는 유람선과 이동하는 운하다리는 재밋는 볼거리다. 이곳의 기차표는 미리 예약하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당일 살려고 하다보면 늘어선 줄 때문에 여행을 망칠 수 있다. 10장단위로 한꺼번에 사면 25%싸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싸게 예약하여 구입할 수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국경일은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표를 늘 갖고 다녀야 한다.
일주일 후 파리국립도서관(Biblioth que National de France,BNF)을 찾아갔다. 파리국립 도서관은 메트로 14번선 남쪽 끝(Bibliotheque Francois Mitterrand)에 있으나 동양서적은 7호선 Pyramide역에 있다. 이곳은 고풍스런 돔(Dome)식으로 건축된 오래된 건물이다. 이때까지 너무 급하게 온 터라 외규장각 문서를 볼 수 있다는 너무 단순한 마음만으로 그 책을 보려는 것이 무모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이었다. 예약하지 않은 사람은 그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고, 더군다나. 외규장각을 영문으로 표기하거나 설명해도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여러 번의 사정 끝에 본관을 들어갈 수 있는 메모를 한 장 얻었다. 동양필사본부 전문사서에게 안내 되었다. 한참동안 나의 신분조회가 있었고 그 책을 설명하고 최고 사서에게 편지를 써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그 내용을 주절주절 몇자 적었다. 잠시 사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그 편지를 읽어 주었다. 잠시 후 그 사서는 동양필사본부 건물로 나를 안내해 줬고 그 보고 싶었던 직지심경과 규장각 문서를 보려는 찰라였다. 잠시 후 그런 책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고 더 이상의 구구절절한 사정도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메일로 예약하고 나서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파리에서의 일정을 변경했다. 모네의 집을 보기로 했다. 100년전 대가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는 누구길레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그를 기억하여 찾아오는가. 그는 어떤 풍류가였을까?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구미열강이 우리에게 통상을 요구했던 시기 등등, 다음날 지베르니를 가는 동안 도서관에서의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묻고 물어 가는 과정이 붉은색으로 머릿속에 채워졌다. 거리의 붉은 신호등과 태극기의 빨강색, 프랑스 국기의 빨강색등이 기차처럼 지나갔다. 어떻게 하면 그 책들을 보고 기록할 수 있을 까 생각했다. 그들은 왜 이책들을 가져갔을까? 몇 년전 박병선 박사의 다큐멘타리는 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는 파리 근교에 쓸쓸하게 살고 있다지. 그 때 우리 정부는 직지심경문제로 그녀를 싫어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그 책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모네 마을은 파리 생라자르(Saint Lazare)역에서 베르농(Vernon)까지기차로 1시간 반, 그리고 버스로 20분정도 걸린다. 그 마을 입구엔 "파라솔을 든 소녀들"에 나오는 벌판에 양귀비꽃이 재현돼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너무나 즐거워했다. 실제 꽃을 보는 순간 인상파 그림속의 꽃들과 병치해서 보고 느끼는 듯 했다. 이것은 그 꽃을 보는 순간 국적을 불문하고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것처럼 비쳐졌다.
우리의 직지와 외규장각 문서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서 그것 자체가 훌륭한 예술품임을 느끼게 했으면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외규장각 문서를 뺏겼다는 흥분만을 가지고 도서관에 온 것이다. 나는 하나의 영상물을 만들기로 했다. 파리 국립 도서관 가는 길목에 몰리에르(Moliere)의 동상이 앉아 있다. 이항대립의 틀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많이 썼던 고대의 희극 작가의 동상을 지나. 많은 신호등을 거쳐야 한다. 그 중에서 빨간, 멈춤 표시는 많은 어려움을 예고 했다. 언젠가 모네 마을의 양귀비처럼 활짝 피어날 것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만든 것이 RED이다. 스트라스부르그에 도착해서 예약 메일을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그리고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서의 코드번호를 확인해서 예약했다. 외규장각을 찾는 프로젝트에 어려움을 느꼈다. 스트라스부르는 파리와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다. 그리고 답장 메일이 없는 한 도서관을 간다는 것은 헛수고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알자스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에 외규장각을 찾는 프로젝트는 생뚱맞기까지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빼앗긴 유물 얘기는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프랑스 루브르는 각국의 유물집합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120주년 한불 수교 기념은 더더욱 이상했다. 난 단지 뺏긴 유물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컷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난 두 차례 더 도서관을 방문했다. 불가능 하다는 답변만을 받고 돌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메일에 한참동안 답이 없었고 돌아올 즈음에 지금은 불가능 하다는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난 전시 프로젝트를 변경하기로 했다. 알자스와 우리나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강화도를 알자스와 연계했다. 처음 갈 때부터 강화도는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는 측면에서 위로를 했다. 120년전 로즈(Roze)제독이 이끈 보복 군대는 첮번째 전투에서 300여권의 규장각 문서와 은괴 19상자를 가져갔다. 난 우리의 강화도가 일본과도 강화도 조약을 맺은 아픈 역사를 기억한다. 올해는 을사보호조약 100주년과 몇일전 세상을 떠난 마지막 황세손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알자스는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빼앗긴 언어와 전쟁의 아픔이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정족산성 전투에서 우리도 다행히 그들을 물리쳤었다. 지금 나는 프랑스의 변방에 서 있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 흘러가는 시간의 개념속에 우리는 공존하고 있다. 이런 공통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난 알자스의 오래된 성벽을 종이에 쓰기로 했다. 프랑스로 가기전 한지를 가지고 갔다. 부드러운 한지로 무엇을 할 것인가 막연하게 가져갔다. 난 그 부드러운 한지로 그곳의 돌과 성벽을 싸기로 했다. 그 오래전 마을을 지켰던 마을의 성벽, 오랜 시간 역사를 간직하는 시간속의 오브제를 작품에 담기로 했다. 몰스하임의 성벽, 지금은 아름다운 돌담으로 동네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수백년전 마을을 지키고, 언어를 지키려다. 무너졌던 성벽, 지금 그 위엔 빨간 야생화가 피어있다. 시민혁명과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켜봤고 마르크스와 이데올로기의 역사들, 그리고 실존주의의 역사를 간직한 몰스하임의 벽은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벽을 한지에 부조형식으로 찍어내 설치한 것이 "비어있는 그림자" 이다. 나는 매일 그 성벽을 채집했다.
2. 개인전 그림자를 잡다(Catching the shadow)와 스위스 여행 ● 6월 19일 전시를 준비하던중 매니져 Ann Arrend으로부터 바젤아트페어 소개를 받았다. 6월 19일 날 스위스 발(Balle)에 갔다. 여기서는 주로 바젤을 이렇게 부른다. 발에 도착하자 간단한 입국을 마치고 길을 묻는 중에 친절한 스위스 작가를 만났다. 그의 안내로 아트페어 장소까지 쉽게 갔다. 입구가 여러개 있었지만 개막장은 설치와 비디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관객들의 호응을 위해 키네틱(kinetic)과 인터렉티브 아트를 구성한 그런 것이었다. 주로 실험영화관을 연상할 만큼 비디오가 주종을 이루었고 바로 옆건물에 많은 갤러리가 참가한 대형 갤러리마켓이 있었다. 하루종일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참가했고 거장들의 오래된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특히 우리 나라 화랑도 참가하여 활약하고 있었다. 전시를 돌아보던 중 올 때 만났던 스위스 작가를 다시 만났다. Luis Coray다. 우리는 반가워했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우선 개인전 을 열어놓고 스위스 Chur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루종일 좋은 작품을 많이 봤다. 다음날도 전시 때문에 편집하느라 뛰어 다녔다. 여기서 난 총 4점의 영상물을 만들었다. 1, Catching the shadow-Red 2, Child wall's shadow 3, Red 2, 4, Fishing the fish shadow 그리고 9개의 종이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Catching the shadow전으로 붙여졌다. 각각의 영상물은 한지에 커다란 구멍을 내서 여러개를 겹쳐서 거는 형식이었다. 메인테마인 그림자 잡기는 빔 프로젝트로 레이져를 종이한가운데로 여러개를 통과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보여준 Red 2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일상에서의 빨강 기호로 만들어진 오브제를 클로즈업과 롱샷으로 편집한 것이다. 빨강의 기호들은 시시각각 새롭게 해석되고 현재에 이른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미지는 틀어진 벽의 각도에 따라 새롭게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돌맹이로 만든 흙 장난에서 비롯 되었다.(Child wall's shadow) 작은 돌 알갱이로 장난치며 담을 쌓는 장면은 아름다운 아이들의 현재의 일상으로 해석 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갖고 있는 강화도와 이곳의 돌담역시 아이들의 구획처럼 느껴졌다. 거시적으로 보면 지구라는 마당에서 우린 서로가 작은 알갱이로 담을 쌓고 노는 것과 같이 보이기도 했다. 이 전시는 원시적 종이의 매체성을 결합함으로서 공간의 시간성과 기억을 통한 치유와 국가간의 역사적 유사성의 관계를 소통시킴으로서 현재를 공존시키는 전시로 구성 되었다. 전시 여는(Vernissage)날 많은 사람들이 와 주었다. CEAAC의 관계자분과 많은 손님들이 함께 했다. Ann Arend가 많이 연락을 취했나 보다. 그날 밤늦게 까지 뒤풀이는 계속됐다. 전시는 7월 1일부터였다. 전시를 열고 몇 일 뒤 스위스를 갔다. 루이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쿠르(Chur)에 산다. 역으로 마중을 나왔고 그때부터 스위스의 계곡을 여행했다. 스위스의 알프스의 향기와 멎진 호수, 그들의 일상을 느끼는 좋은 여행이었다. 특히 파라다이스 호수는 그야말로 낙원 같았다. 다음날은 내가 가져간 김치 한봉지와 깻잎통조림으로 한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너무 재밋게 밥을 먹었고 한국과 스위스의 풍습을 얘기하며 그 밤을 즐겼다. 그리고 깻잎 씨를 보내주기로 했다. 다음날은 생모리츠(St Molistz)를 다녀왔다. 한국말로 어서오십시오라고 적혀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있나 보다. 이곳은 여름이지만 높은 산이기 때문에 춥다. 기차만으로 떠나는 여행 그리고 이방인과의 서툰 대화는 요즘같은 각박한 세상에 여유로운 여행을 만들어 주었다. 그의 아내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엘리자베스 마리아 슈나이더(Elisabeth Maria Shunider) 결혼전엔 혼자 아프리카와 파키스탄을 여행할만큼 여행을 좋아 한다. 푸른 초원과 바우하우스의 세례를 받은 모던한 건축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다. 치즈와 소떼들, 에메랄드빛 호수, 푸른초원과 높은 산들은 즐거운 삶을 만들어 준다. 다음날은 취리히의 도시를 여행했다. ■ 권순왕
권순왕의 Catching the Shadow(그림자 잡기)-역사적인 사실과 재구성된 역사 ● 수년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은 신진작가들의 창작 환경을 도울 목적으로 서울의 창동과 경기도의 고양, 두 곳에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해왔다. 그리고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한 일환으로서, 국외의 창작스튜디오와 작가를 교환하는 '국제교환입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행사로 국립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현대미술센터(CEAAC)와 작가교환입주 프로그램을 체결했고, 그 국내 작가로서 권순왕이 선정되었다. 이 전시는 약 3개월간 스트라스부르그 현지 스튜디오에서 창작활동을 한 작가의 귀국 보고전 형식이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그 동안 고양창작스튜디오에서 창작활동을 해온 교환작가 세실 여로 스트라우만의 스트라스부르그 현지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이 전시는 단순히 완성된 오브제를 보여주는 식의 전시 관행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니까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이를 실현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권순왕은 이를 위해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의 행적을 찾아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프로젝트 '잃어버린 도서를 찾아서'를 계획했었다. 이는 프랑스가 국내의 도시고속철 권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도서 반환 문제가 거론된 이후의 국민적 관심과 더불어, 한불 수교 120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시기가 갖는 의미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맞닥트린 작가는 계획을 일부 변경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스트라스부르그의 알자스 주와, 외규장각이 있던 강화도가 갖는 역사적 동질성에 주목하고, 이를 작업의 소재로 삼기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독일과 접해있는 알자스 주는 그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독일로부터 침공을 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강화도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열강과 조선이 대치했던 관문이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제를 'Catching the Shadow' 즉 '그림자 잡기'로 명명했다. 원래 그 실체가 없는 것들, 그 실체가 어렴풋한 것들을 그림자로 이해한다면, 모든 역사와 과거는 일정하게는 그림자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거로의 시간여행과 역사기행을 통해서 근대 프랑스와 조선이 교류한 상호영향사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럼으로써 120년간의 시차를 뛰어넘어 그 이질성과 동질성을 현재에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업들을 대략 서너 가지의 경향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즉 한지를 설치하고, 그 표면에다가 각종 비디오 영상을 투사한 설치작업(Catching the Shadow - Red, Red 2, Child Wall's Shadows), 엠보싱 기법에 의한 한지 조각들을 소재로 한 설치작업(Empty Shadow), 모니터에 연결된 낚싯대를 소재로 한 설치작업(Fishing the Fish Shadow), 그리고 기타 각종 오브제 작업 등이다. 대개 오브제와 영상이 서로 어우러진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그만큼 서사적인 구조를 띠게 된다. 이들 중 메인은 아무래도 설치된 한지의 표면에다가 각종 영상을 투사하거나, 설치된 한지와 모니터를 대비시킨 일련의 작업들일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가운데 원(圓)형태의 구멍을 뚫은 한지를 일정 간격을 두고 공간에다가 중첩 설치하고, 그 표면에다가 비디오 영상을 투사한다. 이때 영상의 일부는 한지의 표면에 투사되고, 다른 일부는 가운데에 뚫어진 구멍을 통과해 한지 뒤편의 벽면에 투사된다. 이로써 작가는 한지의 표면에 난 중첩된 구멍을 통해 영상을 보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관객은 결코 완전한 영상, 완전한 이미지를 볼 수 없다. 부분적인 영상과 왜곡된 이미지의 편린들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는 한지 뒤편의 벽면에 투사된 이미지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즉 관객은 시점의 각도와 벽면(스크린)의 각도에 따라 달라져 보이는 이미지, 왜곡된 이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 완전한 실체를 거머쥘 수 없는 이미지, 마치 퍼즐처럼 조각난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역사적 사실과 이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충돌하는 현실을 암시한다. 역사적 사실 중 최소한의 단서들만 현재화할 수 있을 따름인 기억의 불완전한 복원력과 함께, 각 개별주체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가다머는 역사적 사실과 예술적 사실에는 일종의 지평융합 현상이 작용한다고 본다. 즉 하나의 해석이란 대상에 속해있는 지평 즉 대상의 지평과 주체에 속해있는 지평 즉 주체의 지평이 융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첩된 한지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구멍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 시간의 통로이며, 근대 프랑스와 조선이 만나는 역사의 통로이다. 그 통로를 안과 밖, 겉과 속의 구분이 없는(그 경계가 모호한) 한지가 특유의 은근한 빛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이 빛의 아우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보듬어 안으려는 치유의 제스처로 나타난다. 권순왕은 한지의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이 형상을 두고, 노자와 방패연에서 그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즉 노자에 의하면 하나의 수레바퀴란 가운데 부분의 빈 구멍 없이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방패연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구멍은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이며, 그 바람의 강도를 조율하는 역학적 구조로 인해 방패연은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감각적 실체(陽)는 비감각적 실체(陰) 없이 생각하기가 어려우며, 역사적 실체는 관념적 실체인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형태로만 주어진다는 사실의 인식이 놓여 있다. 이는 감각적 실체에 기댄 서구인의 역사인식과는 비교되는 동양인 고유의 사유체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빈 구멍은 기억이 미처 복원해내지 못한 역사의 여백, 역사의 그림자를 암시한다. 이렇게 설치된 한지의 표면에 투사된 영상들 중에는 적색 신호등, 적색 파라솔, 프랑스의 삼색기의 적색, 위험물 표지판에 프린트된 적색 표시, 거대한 X 기호로 나타난 적색 표시 등 한눈에도 적색이 많이 등장한다. 실제로 Red(적색)를 작업의 소제목으로 취하고 있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작가는 적색에다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우선적인 의미는 말할 것도 없이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선동적인 메시지로서 나타난다. 거기서 작가는 일종의 이중성을 본다. 그러니까 혁명과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던 것으로부터 붉은 악마와 광장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의 변화, 거부와 대립과 분열을 상징하던 것으로부터 일상인의 미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의 변화의 과정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적색 기호들 사이로 몽타주 되는, 거대하게 흐르는 물의 화면이 프랑스와 우리나라간의 이질성을 넘어서는 동질성의 계기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는 제의적 행위를 암시해준다. 그리고 그 제의적 행위로 나타난 화해의 제스처는 성벽의 돌 틈에 핀 빨간 꽃으로서, 즉 작가가 우연히 들른 모네의 마을 지베르니의 언덕에 핀 빨간 꽃(양귀비)에서 더 강화된다.
이렇듯 작가가 「Catching the Shadow - Red」와 「Red 2」에서 적색이 상징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변화해온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면,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테마로 한 「Child Wall's Shadows」에서는 어른들과는 다른 아이들의 사유 체계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마당 가득히 널려 있는 자잘한 돌멩이들을 축조하는 방법으로써 집과 TV 등의 각종 생활의 구조물과 오브제들을 만들고 해체하고 또 만드는 놀이를 하면서 논다. 그 놀이에서 발견된 특징적인 사실로는 아이들이 재구성해 보여주는 구조물들이 옆으로 퍼져나가는 배열과 열거 그리고 반복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등장하는 벽은 단순한 구획을 위한 것이지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니다(그 벽은 차라리 칸에 가깝다). 이는 수직적인 구조와 대비되는 수평적인 지평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자체 배타적인 논리에 바탕을 둔 계통적이고 계보적인 사유, 계급적인 사유와는 비교되는 한편, 그 속에 온갖 이질적이고 이접적인 것들을 보듬는 계열적인 사유, 횡단적인 사유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작가는 다른 설치작업 「Empty Shadow」에서 강화도의 정족산성과 알자스 주에 있는 몰스하임의 성벽이 갖는 역사적 이질성과 동질성에 주목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정족산성은 프랑스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또한 알자스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독일의 침략으로 빼앗긴 언어와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성벽에서 작가는 적색에서 보았던 상징적 의미 즉 이중적 의미의 또 다른 한 형태를 본다. 즉 역사 속의 벽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자체 배타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 벽이 현재에는 문명을 치유하는 자연이나 이방인들을 불러들이는 휴식과 쉼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리고 성벽 위로 피어난 빨간 야생화가 그 변화된 의미를 강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순왕은 비정형의 우둘투둘한 요철이 있는 돌로 된 현지의 성벽에다가 일일이 한지를 대고 두드리는 방법으로써 그 표면질감을 떠낸 한지조각들을 소재로 하여, 일종의 가상의 벽(그림자 벽)을 재현해낸다. 이처럼 몰스하임의 성벽을 재구성해낸 작가의 행위는 시간 속의 오브제, 역사 속의 오브제를 현재화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족산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함축해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한지로 성벽의 흔적을 떠내는 것은 희미해진 기억에 의존하여 과거를 현재에 되살려내는 행위이며, 현재 속에 공존하고 있는 과거의 시간과 그 흔적을 되새김질하는 행위인 것이다. 전시의 제목에 나타난 '그림자'는 이러한 기억, 시간, 과거, 흔적과 같은 개념이 갖는 속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모니터에 연결된 낚싯대를 소재로 한 설치작업「Fishing the Fish Shadow」에서 모니터 안에서 낚시하는 사람과 모니터 바깥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대비시키고 있다. 관객은 스트라스부르그 시내를 관통하는 운하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는 장면 속 낚시꾼에게 동화되는가 하면, 재차 모니터 자체는 이를 낚고 있는 낚싯줄에 의해 물고기로 전이된다. 낚시를 소재로 한 이 작업에서 이데올로기의 주체와 객체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실상과 허상과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의 주체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임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작가는 창작 스튜디오가 있던 스트라스부르그와 외규장각 도서가 소장된 파리국립도서관(BNF)을 오간 기차표 다발을 오브제로 설치하는 등의 취재의 과정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각종 기록물들과 흔적들을 보여준다. 이 일련의 작업들로써 권순왕은 마치 율리시즈처럼 시간여행을, 역사기행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는 현재와 만나고, 역사적 사실은 이념적 사실인 이데올로기와 겹친다. 이로부터 기억의 편린들과, 역사의 조각들이 퍼즐조각처럼 본래 속해 있던 자리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 보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작가는 일종의 문명사적이고 영향사적인 역사의 한 축을, 그 희미한 흔적(그림자)을 드러내 보여준다. ■ 고충환
Vol.20050826b | 권순왕 국제 교환작가 보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