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현대수묵전 ②

서울시립미술관 기획展   2005_0810 ▶ 2005_0918

이은숙_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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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16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한국_김희영_문봉선_박병춘_서세옥_송수남_송수련_송영방_신영상_오숙환_유근택_이민주_이은숙 이종목_이철량_장상의_정진용_정탁영_조순호_조환_홍석창 ● 중국_동샤오밍_후앙이한_리후아성 리앙취앤_리어우쯔지앤_판원순_샤오거_스궈_동쫑타오_왕취앤_왕티앤더_왕티앤더_웨이칭지_우이 위샤오강_쯔앙하오_쯔엉치앙_쩌우징신_쩌우카이_쭈쯔엉겅

● 세미나_2005_0817_수요일_04:00~06:00pm_양국 현대수묵화의 역사와 현황, 과제와 전망에 대해 한국과 중국측 전문가의 발제와 토론_오광수_'한국의 수묵화에 대하여'/ 얜샨츈_'현대 중국 수묵화'

전시설명회_매일 2:00, 5:00pm 예정

주최_서울시립미술관_심천화원(중국 광동성 심천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Tel. 02_2124_8947 www.seoulmoa.org

현대 중국 수묵화 ● 수묵화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 형식의 하나로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 문인들이 이 수묵화 창작과 비평 활동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수묵화는 거의 문인화로 인식되었고 세계 미술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한 장르가 되기도 했다. 이 수묵화가 담고 있는 수많은 미학적 내용은 아직까지도 대다수 서양 갤러리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대상으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수묵화와 문인화를 심지어 이를 중국화와 함께 논하기도 해왔지만, 본문에서는 상하문의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세가지 개념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현대 수묵화의 현황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먼저 간략하게 나마 지난 세기 중국화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중국 수묵화에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1920년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쳔두셔우(陳獨秀)와 컁유웨이(康有爲)가 " 미술 혁명"이란 구호를 내건 이후로 중국의 예술가들이 중국화에 대해 안팎으로 변혁을 위한 탐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서양의 기세를 기반으로 한 변혁의 노력이 가장 활발했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대략 아래 두 가지 종류로 나뉘어 보겠다. ● 그 첫번째는 쉬뻬이홍(徐悲?)이 주도한 모색이다. 쉬뻬이홍을 선두로 서양 사실 주의에 입각한 조형 관념을 가지고 중국화의 개조를 시도한 본 운동은 중국화 혁신 실험 가운데 가장 사회적 영향력과 정치적인 색채를 많이 띤 운동이었다. 이들 실험은 사회 여론의 간섭을 받은 적이 없으며 이러한 실천은 처음에는 사회 혁명 즉 컁유웨이(康有爲) 와 쳔두셔우(陳獨秀)가 주장한 " 미술 혁명"의 한 부분으로 예술 관념과 예술 양식에 대한 일종의 혁명이었으나 나중에 이 운동의 성과는 일부 정치가에 의해 사회 혁명에 직접적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은 근대 중국화단의 초라한 쳔두셔우式 주의의 화풍에 대해 확실히 건설적인 비판 역할을 했다. 비록 쉬뻬이홍의 실험의 출발점은 인물화 영역(당시 쳔두셔우式 주의의 화풍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곳이 산수화와 화조화 분야였음)이었지만 그는 "필묵"을 가지고 서양의 소묘를 해석했고, 런보녠(任伯年)의 사생적 성향을 띤 화풍을 도입한 이후 빠르게 동물화와 풍경화로 그의 관심 영역을 넓혀갔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방안은 50년대에서 70 년대까지의 대륙 중국화 창작에 주도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리커란(李可染)式의 산수 사생화와 팡쩡셴(方增先)式의 " 져쟝파(浙派) 인물화" 모두 이러한 실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험에는 항상 한가지 위험이 따랐는데 바로 운치로 가득 찬 필세 하나 하나가 점차 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물체 쪽으로 치우치면서 화면상 반드시 존재해야 할 "골법"의 효과가 점차 미약해져 하나의 존재가 곧 다른 존재의 부정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상의

두번째는 린펑미앤(林風眠)이 주도한 모색으로 쉬뻬이홍과 비교해 봤을 때 린펑미앤의 예술에는 학자적 혹은 신세대 문인의 품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이론 분야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러한 풍격은 완성된 작품 속에서 확연히 느껴진다. 그는 동서양 회화의 수많은 양식에 광범위하고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고 전통적 중국화가 규격화 된 표현에만 치중하고 가장 기본적인 조형에 대한 연구를 경시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의 서양 현대 예술에 관한 이해는 표현주의와 입체주의로 까지 확대되었고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중국의 민간 예술을 재해석해냈다. 우리는 그의 예술 작품들을 "중국화"로 분류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또 "서양화"라고 한다면 더욱더 부적절한 분류가 될 것이다. 그의 예술적 특징은 매우 선명한 편이며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그 어떤 조형 언어로 그 풍격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줄곧 중국 수묵화 고유의 운치를 잃지 않고 있는데 린펑미앤의 예술은 일반 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술계에서는 후배들에게 오히려 쉬뻬이홍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중국화 내부에서 변혁을 일으키려는 노력에서 탁월한 성과를 얻은 작가를 꼽으라면 황빈홍(黃賓虹)과 판톈셔우(潘天?)만한 작가가 없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들은 모두 문인화의 전통을 이어온 수호자들로서 이들 그림은 형식(시,서,화,인(印)이 일체가 된)면에서나 그 성향(필묵과 여백에 치중)면에서나 모두 가장 전형적인 문인화의 미학적 특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의 사의화(寫意畵)의 전통 속에서 문인화의 발전 가능성을 찾아 내는데 최선을 기울였다. 황빈홍의 묵의 사용법에서의 성과와 판텐셔우의 붓(필선)의 사용법과 구성(구도)에서 거둔 성과는 사실상 일반인들로 하여금 그들 작품이 전통적이면서도 창조적이며 가장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한 탐구의 과정 속에서 일부 서양 회화의 관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황빈홍의 '질박하면서도 화려한 멋"과 판텐셔우의 " 강한 골격"의 미학적 풍격은 인상파의 "몽롱"한 분위기와 서양의 구도학이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사회학적 각도로 볼 때 그들이 창조해낸 창작물과 그들이 지닌 재능은 이미 역사 속에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정진룡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어떤 분야(시,서,화,인(印))에서든 그들을 능가하는 것은 이미 매우 힘든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젊은 작가들에게 일부 기법의 참고 자료가 되고 있을 뿐 하나의 예술로써 그들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의미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필자가 『가치의 종결과 도식의 전환― 판텐셔우 연구』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지적한 바 있지만. 타운朶?199년 상하이 서화출판사그들의 예술이 근거하는 지식적 배경(중국 고대 문인들의 통합성과 지식적 배경)은 이미 이 시대에는 사라지고 없다. 1949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쫓겨나 점령한 후에 그들은 문화에 대해서도 봉쇄정책을 펼쳤는데 이 때문에 타이완의 현대주의 미술 운동은 거의 무에서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49년 이전의 대륙 문예 발행물은 모두 압수되었고 혁신을 주장했던 예술가들 대부분이 대륙에 남았음). 려우궈송(??松)을 대표로 하는 젋은 타이완의 예술가들이 중국화의 혁신 문제를 제기했을 때 쉬뻬이홍, 려우하이쑤(?海粟), 린펑미앤의 그러한 "동서가 결합"된 예술적 도식은 그들 앞엔 이미 전무했고 려우궈송(??松)은 직접 "동서 합벽(동서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의 시각으로 려우꿔송과 꾸원다의 비교에서 살펴본 현대 수묵화 발전의 문화적 배』현대 중국 수묵화 학술세미논문 전집및 세미나기)참17920 페이타이완 미술관 인,199년 당시 주를 이루던 서양 추상 표현주의 예술로 전향하게 되었고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송대의 산수화 작품을 전시했다. 그의 이러한 창조적 도안은 알게 모르게 쉬뻬이홍, 려우하이쑤, 린펑미앤의 실험적 방안을 초월하거나 더욱더 발전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상내용동일내참 70년대 말, 대륙이 개혁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중국화의 개혁은 학술적인 방식으로 다시금 제기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져쟝(浙江) 미술학파 (그 전신은 시후(西湖)국립예술원)의 청년 교수 꾸원다(谷文達)로 그는 전통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먼저 중국화의 재료로 서양 현대파(主要是超?? 주의)의 도식을 표현해 낸다. 그는 한동안 중국화의 특수한 재료를 매개로 삼아 서양 현대파를 온전하게 혼합한 작가가 없었다고 보고 자신의 작품에서 수묵을 화선지 위에 " 침염, 이중 번짐, 적신 자국" 등의 독특한 기법으로 극대적 효과를 꾀했다. 그 후 2년이 지나지 않아 그는 중국화의 일부 상징적인 부호로 이러한 방법을 수정했는데 그는 서예의 문자 부호를 화면의 모체로 삼았고 심지어 자신의 신체를 예술의 한 부분으로 삼고 세상을 놀래게 한 "선방(禪房)"을 구축하여 중국화 개혁을 장치 예술의 영역까지 끌어 올렸다. 그는 이 단계에서 서양 현대주의를 응용해 중국화를 개조하려는 실험을 펼친 화가 중 가장 극단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화가가 되는데. 이는 중국화의 21세기 변혁 중 가장 조악한 부분으로 평가 된다. 현대 중국 수묵화단은 전에 없던 변혁의 국면을 경험하게 되는데 곧 예술가 간의 다양한 풍격과 동일한 작가라고 하더라도 몇 년 사이 한 작가가 수많은 풍격의 변화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추상 수묵 대표 화가로 꼽히는 왕추안(王川)은 90 년대 초에는 거의 관념주의적 작품이나 장치성을 지닌 작품을 창작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앞서 대략적으로 그려놓은 틀에 맞춰 계속 설명하고자 하는데 내부에서 진행된 중국화 변혁과 외부에서 진행된 변혁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조환

현재 유행중인 "新문인화"와 "학원 수묵"은 기본적으로 내부적 변혁이라 할 수 있고 " 추상 수묵"과 "실험 수묵"은 외부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80 년대에 들어 우리가 말하는 내부적 변혁은 주로 전통 문인화의 일부 관념 및 형식에 부분적인 확대 및 변형을 가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변혁은 져쟝(浙江) 일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중 일부 화가에 의해 극단적인 경향이 나타나 과장되고 변형된 기법으로 묵화의 문인화적 형식 발전이 거의 황당한 수준에 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와 상반되는 경향으로 다른 화가들은 정통 문인화의 세심하고 고고한 성향의 추구에 혼신을 다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변혁은 황빈홍과 판텐셔우의 전통 문인화에 대한 총체적인 발전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전시되는 통쭝따오(童中?)의 작품은 황빈홍과 판텐셔우의 방식이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 이어 지고 있음을 관객들이 발견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 통중따오는 "현실주의 주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산수화가로 당대 화가들과 함께 전통 속에 남과 구별되는 특출난 작가였다. 그는 시간을 거슬러 남북조 양대 회화까지 올라가 다시 "사생(寫生)"으로 복귀했는데 그는 "필묵"에 치중하였지만 그 보다 더 대상이 가지는 구체적인 느낌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의 필세는 매우 과단성 있고 선이 명확하며 준법을 더욱 각색했으며 질서정연함을 보인다. 그의 필법은 남종화의 변화 다단하고 역동적인 운치가 있으며 구도는 북종화의 대담한 공력이 엿보인다. 통쭝따오는 화화를 하나의 진지한 학과의 하나로 봤는데 그의 이러한 태도는 "新문인화"의 일부 세밀하지 못한 작품 분위기와는 완전 다른 작품으로 나타났다.

왕티앤더

가치학적 각도에서 따져 볼 때, 동샤오밍(董小明)은 문인화의 전통을 계승했는데 그는 회화를 하나의 직업 이외의 "취미"로 삼았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문화 예술에 관한 행정관리와 복잡한 공무와 해결 방안에 묶여있었다. 그는 인적이 없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화실에서 종이를 펼쳐 묵에 대해 연구하며 무한한 비평의 세계로 접어 들었다. 그는 고대의 문인들처럼 그림 그리기를 자기 반성과 수양으로 삼았다. 그는 고대 동서양의 여러 화풍에 넓은 관심을 가져왔는데 그 중 추상주의와 표현주의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였다. 위미페이(于米?), 스타오(石?)와 8대 선인에 대해 더욱더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그림은 처음 봤을 때는 정리 되지 않아 어지러운 듯한 느낌이지만 가만히 찬찬히 뜯어 보면 한 군데도 느슨한 부분이 없다. 외부로부터 진행된 중국화의 혁명은 그 양식이 실로 다양해서 어떤 것이 "실험 수묵"이고 어떤 것이 "추상 수묵"에 대한 변혁인가를 말하기 어려운데 이는 려우꿔송과 꾸원다가 모색했던 노력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예술가의 이러한 고민은 이미 그들의 선배들이 고민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복잡 다단하고 심층적이었다. 형식상이나 관념상으로나 그들은 개인적인 색채를 더욱 많이 띄고 있었는데, 이러한 국면의 출현은 전체 중국 전위 예술의 발전 및 이데올로기와도 관련이 있었다. 수묵화에 진행된 추상 실험 혹은 수묵화의 매체 자체가 지니는 미학적 힘에 대해 연구한 예술가가 비록 수적으로는 많지 않았지만 학술적 수준이나 예술적 성과는 상당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도시에 살면서 전시 및 연구 토론 활동을 펼쳤다. 그들의 작품은 서양 비평가와 전시 기획자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결코 중국의 대표적인 전위 예술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평가하지 않았으며 중국의 대다수 민중에게도 환영 받지 못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고독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 예술가들은 각종 유혹을 물리치고 예술과 인생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는데 집중했다. 현대 수묵화가 가운데 조형 문제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 화가는 쭈쪈껑(朱振庚)이었다. 그는 이 방면에서 가장 재능을 지닌 화가로 그의 독특한 행로는 그 어떤 운동 및 분파에도 속하지 않은 채 "조형"이라는 시각으로 중국화의 "필묵"을 고찰했다. 그는 선 하나하나와 모든 공백들을 하나의 독립된 화면으로 보거나 전체 화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조형 요소로 바라보았다. 그의 이러한 여백 처리 방식은 서양 미술 이론 중의 "올오버" 이론의 중국식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는 가장 간결한 필법으로 서로 다른 여러 대상을 처리해 냈는데. 얼핏 보면 그의 필법과 묵상법이 황빈홍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그 화면의 깊은 곳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판톈셔우의 진지한 구성 의식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쯔엉치앙

추상화 모색에 대한 측면에서 보면 량취앤(梁?)과 왕징추안은 이 분야에 있어 가장 큰 성과를 얻은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서양의 "차가운" 추상주의와 "뜨거운" 추상주의의 개념을 들어 그들의 풍격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량취앤의 초기 추상 회화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도움을 받아 액션 페인팅 예술과 라틴 예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분방함 가운데 일종의 우아미를 간직하고 있다. 지식이 더 많아지고 생활의 경험도 풍부해지자 특히 니쨘(倪瓚)과 져쟝(?江) 등 중국 문인 회화의 성격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의 그러한 우아한 멋은 스타일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예술 또한 천천히 '차가운'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는데 그가 선택한 기법은 덧붙임 기법으로 형식상 질서감과 이성적인 특징을 준다는 점 이외에 관념적으로는 평온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생명의 의의를 발견해내는 승려들의 일상적인 수행과도 흡사하다. 반면 왕추안(王川)은 이와 상반적으로 그가 초기에 모색한 회화의 기하학적 원리에서는 정서와 색채를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90 년대 중기에 들어 그의 스타일은 갑자기 급선회해 회화 속에 작가 자신의 순간 순간 변화하는 정서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다. 그는 전통 수묵화의 붓의 풍부한 사용감과 세심함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는 반면 서양의 추상 표현주의 회화는 전체적으로 "세심함"이 부족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작은 터치의 변화에 매우 신경을 썼지만 "파란만장"한 효과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려낸 선은 비록 독특한 동양적 정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서예와 같은 장식적 경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묵색의 농담과 건습의 대비 속에서 평범하고도 솔직 담백한 터치는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음미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90 년대 말,그가 암 투병에서 이겨낸 후 더욱더 수묵화 창작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걸고 붓의 터치를 연구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종종 관객에게 영혼이 담긴 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기서 리화셩(李?生)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초기 화풍은 황빈홍, 쳔쯔쭈앙(?子庄)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전통적인 형식 속에서 여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해 낼 수 있다라고 믿었으나 20여 년이 넘은 작품 활동을 통해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예술적 창조력을 상실했다고 느끼면서 90 년대 중기 추상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화선지 대신 원고지 속에 그의 열정을 담게 된다. 그러나 터치 하나 하나가 본인의 흥미를 그대로 간직 하고 있어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처음으로 비평가와 수집가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시기의 수묵화 변혁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지속적으로 국내외 주요 현대 예술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게 되었다. "실험 수묵"은 90 년대 수묵화계의 매우 중요한 예술 운동의 하나가 되었고 비록 줄곧 이러한 운동에 참여한 예술가가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학술성과 탐구성을 띤 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여러 번의 중요한 "실험 수묵" 전시회에서 참가한 화가들은 여럿 있지만 그 중 쉬지 않고 시종일관 줄기차게 "실험 수묵"을 이끌어 나간 작가로는 션쪈(深?) 화가 려우쯔잰(?子建)을 들 수 있다. 그의 개인 심리의 흐름의 각도에서 살펴보면 어렸을 적 까맣고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했던 명상의 영향을 받아 현재까지도 시종일관 한결 같은 "흑색 회화"의 풍격을 지니게 된다. 려우쯔잰은 중국 전통 수묵화의 "필묵"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묵상(墨象)"으로 "필묵"을 대신하고자 했다. 그는 덧붙임, 탁본, 강한 번짐 등의 非전통적인 작품 방식을 구사하였고 그 작품의 화면에 중국화가 가지는 고유의 운치는 없지만 그를 대신하는 긴장과 소란스런 분위기가 있다.

쩌우징신

수묵화는 현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매개를 이용해 현대의 도시 생활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 하는 가장 도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션쪈( 深?) 화단은 90 년대 초," 도시 산수화"라는 과제를 제기하여 청장년 화가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창작에 참여한 화가는 기본적으로 산수 화가에 국한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일부 인물화가들은 도시를 주제로 한 창작을 시작하였고 리샤오 쉬앤(李孝萱), 왕얜팡(王彦萍), 샤오꺼(邵戈), 황이한 (?一瀚)등 작가가 이 분야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펼쳤다. 샤오꺼는 각종 회화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내는 화가로 그의 조형은 초현실적인 예술적 특성을 담아냈는데, 이는 전통 수묵의 미학적 원칙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예술이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 "생존 상태와 예술 태도의 일관성에 관한 문제"고 밝힌바 있다. 그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 바로 현실 에 파묻혀 버린 내면의 깊은 고독이었다. 그의 무거운 화면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이렇게 무겁고 심각한 철학적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황이한의 작품은 일종의 생동감 가득한 에너지를 표현해낸 것으로 그는 수묵의 이러한 우아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젊은이의 평범하고도 얕은 표면 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의 화면 속에서는 전통적 수묵화가 지니는 미학적 품격을 전혀 느낄 수는 없으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작가 본인은 매우 고집스러우며 고전주의 기질과 사고 하기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화가라는 사실이다. 수묵의 입체적 공간 표현에 대한 가능성을 개척하는 데 있어 왕텐더(王天德)는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90 년대 중기 『수묵화 식탁』은 당시 전체 중국의 전위 예술과 거의 같은 시기에 창작되었고 그의 이러한 작품은 중국 당대 장치 예술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다. 90 년대 후기에 그는 몇몇 '의복 산수'를 창작했는데 그는 새로운 형상 속에 전통적인 "필묵"의 효과를 그려내길 원했다. 최근 그는 이러한 그림과 실물과 조합하여 우아함과 세속성이 함께 공존하는 특징적인 현대 예술 작품을 창작해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수묵화는 고대의 예술 양식 중 하나로 최근 20여 년 동안 중국 대륙에서 기본적으로 전통적 방향을 따라 발전해왔지만 동시에 전위적인 방향으로도 발전해왔다. 이곳에 전시된 20명의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그 변혁의 한 측면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얜샨츈

Vol.20050823c | 한·중 현대수묵展 ②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