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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19_금요일_04:0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chohungmuseum.co.kr
candy-coated : '그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 인간은 평균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이에 따른다면 인간은 하루에 보통 200번 가까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신과 의사 제럴드 제리슨 박사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작은 거짓말을 자주 한다"며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거짓말은 필수"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의 삶에서 '거짓'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처럼 보기 좋고 먹음직스러운 '거짓'에 주목하려 한다. ● 거짓말, 혹은 기만ㆍ속임수ㆍ은폐ㆍ위장ㆍ술책 등으로 총칭되는 '넓은 의미의 거짓'은, 사실이 아니면서 상대방에게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행위라는 점에서 모두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마치 사탕처럼 자극적인 색채와 달콤한 설탕으로 둘러싸인 '그것'의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 내용물은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진실일 수도 있으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수도, 혹은 또 하나의 잘 포장된 거짓일 수도 있다. ● 중요한 것은, 현상적으로 이러한 '거짓'이 단순히 한 개인 또는 집단에게 불리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언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거짓말이 형성되는 과정과 배경은 거짓말을 행하는 주체의 특정한 상황이나 심리 뿐 아니라, 그 사회의 윤리적인 잣대, 문화적인 기호, 권력 기준, 계급 관계 등 그 사회를 존립케 하는 가치 근거에 좌우되어 여러 가지 전략, 교육, 홍보 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그 스스로가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거짓, 즉, 어떠한 알맹이를 감싸는 정교하고 복잡한 표피의 이면을 다양하게 확대해 보고자 한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거짓'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대인의 삶과 한국사회의 구조에 대해 누설해 보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좁게는 미술계 내부의 문제이거나, 작가(미술계)와 관객(대중)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 또한 무거운 주제로 인해 전시가 지나치게 엄숙해질 우려가 있는 이상, 이번 전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치 농담하듯 관객에게 다가가며 작가와 관객간의 벽을 유쾌하게 녹여보려 한다. 관객은 완성된 작업들을 관람하는 것 이외에도, 직접 작업 과정에 참여하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되거나, 작업이 우연히 관객의 일상에 끼어 들게 되는 등, 관객의 흥미와 참여를 유발하는 장치를 갤러리 내ㆍ외부에 장치할 예정이다.
풍경-'대낮', 풍경-'밤' ● 역사상 모든 사회의 통치를 유지시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폭력,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외관상 그것을 부정함으로서 튀어나왔다. 따라서 사실상의 폭력과 모순이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 자본은 분명히 군복과는 다른 옷을 걸치고 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또 바꾸어 입기를 즐긴다. 이제 그러한 꾸미기는 또 하나의 산업이 되기에 이르렀다. 눈여겨본다면 사실 진실은 도처에서 보인다. ● 백주대낮에 우리의 '문명'을 실제로 쌓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버젓이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해서 바로 익숙한 그만큼 보지 못한다. 도시의 야경은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야경은 햇빛이 모든 것을 드러내는 대낮의 풍경과는 다르게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사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서운 곳이고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모르는 불안한 곳이며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불신스러운' 곳이다. ● 새벽이 되어 인적이 사라질 때까지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 야경은 사실 쓸쓸하고, 사무치도록 외로운 곳이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을 감춘 공간이다. 도시야경의 이런 모습은 지금의 우리사회 전체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았다. 야경은 달콤한 candy-coated space이다. ■ 김효준
갓뎀웰빙 ● 느닷없이 '웰빙'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여기서 '느닷없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현재 '웰빙'이라는 개념이 '자연과 조화하며 잘먹고 잘살자'는 원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또 하나의 인위를 창출하며 계급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 유행하는 '웰빙'이라는 개념은, 이미 자연을 파괴한 후 환경파괴가 인간에게 해악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가깝게 보이도록 만든' 것을 기만적으로 팔아먹는 상술이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비싼 쌀밥을 마치 선진의 표상처럼 고착, 모두가 먹게 만들어놓고 이후 저렴했던 잡곡값을 쌀값보다 올려 팔아먹는 행위 등을 들 수 있는데, 결국 우리시대의 '웰빙'이란 '자본이 없으면 무의미한' 부유층만의 특권으로 귀결되는 비참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 공교롭게도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교묘하게 닮아있는데, 청계천을 덮어버린 후 다시 뜯고 물길을 막은 다음 그 위에 상수도로 인위적인 시냇가로 만드는 청계천 계발에서도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극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사회불안, 무력감은 이미 배분을 무시하고 성장을 제일목표로 삼았던 6.70년대 이른바 '박정희식 개발'로 이미 산업사회의 토대가 고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 벌거벗은 임금님 ●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채 방치된 캔버스를 구해 그대로 전시한다. 그 옆에 마치 작가의 '심오한 뜻'이 들어있는 듯 난해한 전문단어를 줄줄이 나열한 설명을 같이 첨부한다. ● 이는 일반 관객에게 소통이 단절된 채 어렵게 다가오는 현재 미술계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함이다. 현대 미술은 근대 이후,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수많은 혁신을 통한 자기변화를 거듭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점점 대중과의 괴리를 넓히며 자신의 영역을 고착하지 않았나 의심해본다. 심지어 일부 작가들은 예술가라는 미명 하에 작품의 '실체'보다 과장되고 부풀려진 해석으로 예술을 포장하고 있으며, 이는 종종 '현대 예술은 이해하기 힘들고, 예술과 예술가는 모두 기이하고 비 일상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고착시키며 대중간의 간극을 넓히는데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본다. 게다가 19세기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한 서양미술은, 서구의 전통적인 맥락과 상징은 잘린 채 형식만 이식되어 성장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한국 미술의 정체성이 모호하며 대중이 선뜻 이해하기 힘들어진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 이러한 현실은 작품을 양산하는 작가, 담론을 형성하는 평론가,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의 관객 모두가 자의 혹은 타의로 마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양상을 꼬집는 작업은 미술계 내에서는 이미 '진부하다'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아직 미술계의 망 밖의 일반 대중과 미술계의 간극은 멀기만 하다. 따라서 이번 작업은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현재 한국 미술계의 부정적인 단면을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꺼리'를 던져주려 하며, 이 작업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장치, 예를 들면 작품 설명 마지막에 이것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문구를 슬며시 집어넣거나, 작가가 직접 이것이 '위대한 작업'인 듯 설명하다 관람자의 이해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화를 내는 등의 퍼포먼스를 곁들이려 한다. ■ 김수연
거짓말 ● 피복, 물질성을 가진 상품,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써 갖추고 지켜야할 체계와 논리 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형식적인 부분-재료와 설치 방식도 포함하여-이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중요한 문제인 '진실과 거짓'의 관계를 바라보는 입장은, 그것들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며, 언제든 위치가 뒤바뀔 수 있는 것들이라는 판단하고 그 미묘한 지점을 포착하기부터 시작된다. '진실과 거짓'이란 세상의 어떤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고 얘기된다.
작업1에서는 티셔츠에 전사된 이미지와 모순되면서도 상통하는 글귀가 의복의 일반적인 형식의 한 부분인 라벨에 전사되어 있다. 모순되면서도 서로를 명확히 바라보게 하는 관계 역시 진실과 거짓에서 발견되는 성질이다. ● 의복은 좁게는 개인의 특성, 개별성을 가리는데 훌륭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넓게는 겉, 본질이 아닌 껍데기, 진심을 가리고 있는 피막 등등. 은유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것이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결합되면 어려운 의미를 찾지 않아도 각자 나름대로 읽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작업2는 동일한 크기의, 9장의 티셔츠로 구성된다. 티셔츠 앞면들에는 동일하게 웃고 있는 눈구멍과 입구멍이 뚫려 있다. ● 티셔츠의 뒷면이자 사람의 왼쪽 가슴, 즉, 심장의 위치라고 할 수 있는 곳에는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전사되어 있는데 그것은 마음, 꿈, 상상, 소망, 분노 등을 나타내며 진실, 실체, 진심, 거짓, 위장 등의 같은 말을 끄집어내고 있다. ● 티셔츠 하단에는 (작업1)과 마찬가지로 하단에 라벨이 붙어있고, '껍데기는 본질이고, 본질은 껍데기다' 라는 문장이 9장 모두에 전사되어 있다. 껍데기와 본질은 진실과 거짓의 동의어일 수 있고 어떻게든 치환이 가능하다. ● 이 9장의 티셔츠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공중에 매달리게 되는데, 왼쪽 눈구멍과 뒷면 이미지에 구멍을 내는 날카로운 창과 같은 것이 티셔츠들의 왼쪽 가슴을 관통하며 매달릴 것이다. 이는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얽힌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과 진실과 거짓을 발견하거나 바라볼 때 아픔이나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작업3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문학의 텍스트 한부분에서 시작된다. 이 글은 함축된 의미가 많아서 여러 해석을 불러일으키지만, 앞서 설명한 작업 전반의 주제와 형식적인 부분과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고 파악되었다. 그리고 좀더 친근하고 쉽게 읽히며 재미있는 그림을 유도할 수 있는 텍스트가 필요했다. ● 이것 역시 9장의 티셔츠가 가로로 길게 벽에 이어져 그림을 따라 움직이며 볼 수 있게 설치될 예정이고 단순하고 밝은 이미지 이면에 자리잡은 또 다른 현실의 모습을 얘기해보고자 했다. ■ 이지영
작업중-정신지체아이들 ● 작업중-정신지체아아이들은 두 가지의 candy-coated의 이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우선 작업 중인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사실로서의 정신지체인을 그렸다는 것이다. ● 그림을 전시할 때는 보통 말끔한 마감으로 제작과정의 흔적을 없앤 작품이 하얀 벽-가치판단을 영원히 유보하는 듯한 벽-에 걸리는데 이러한 작품전시에서의 candy-coated를 없애려고 한다. 그림 그리는 현장을 말끔히 지우는 것은 그림의 물신화를 공고히 하는 기만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작업에서 실제 제작 상황을 보여주려 한다. ● 정신지체인의 경우 이 사회에 일정정도의 퍼센트를 분명히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모습은 거의 없다. 본인은 이들의 실제 존재를 접했을 때의 다름에 대한 충격, 그리고 한 두 시간 사이에 다시 찾아오는 '이들도 나와 같은 인간으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사고하고 있다'는 공감대라는 또 한번의 충격 이렇게 두 번의 충격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들의 엄연한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이들을 감추고 필요할 때에만 드러내는 사회의 candy-coated를 벗기고 싶다. ■ 양은주
Vol.20050819a | candy-coate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