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804_목요일_06:00pm
롯데갤러리 대전점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042_601_2827
물리적이면서도 물리적이지 않은 '공간'이라는 이름. 그것은 '간격'으로부터 혹은 '틈'으로부터 끌려왔는지 모른다. 나와 타자, 사물과 사물사이 숨죽여 존재하는 그것. 비어있기에 공간이라 불리우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침묵하며 스스로 움직이지 않지만 욕망한다. 나는 어떤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손으로는 휘저을 수 없는 공간, 방문을 열었을 때 눅눅하고 새침함으로 나를 맞이하며 내 몸이 일으키는 손짓과 마찰로 그들의 욕망을 움직이는 그러한 공간이 아닌 물리적으로는 마주할 수 없는 그런 곳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 상실과 치유, 허상과 실체 그리고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도 물리적이지 않은 그 간격, 어쩌면 그들이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어 존재감 마저도 없었던 그 틈으로 끼어들어 침식시키고 움직이며 욕망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죽은 돼지의 뼈들을 모아 가루를 만들며 썩어 버려지던 비늘들을 모아 깨끗이 씻고 쓸모 없어 져버린 옷들을 태워 곱게 고르는 행위들은 죽음과 삶, 상실과 치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행해지는 간격에 대한 손질이고 그냥 없어져버릴 틈에 대한 풀이이다. 그 좁지만 무한한 틈에서 나는 꼼지락거리며 말하지 못하고 상처받고 또 죽어버리려던 그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비어있기에 존재한다던 공간은 결코 비어있지 않고 소리 없이 욕망하며 스스로 존재하리라던 실체들의 실타래를 변화시키고 풀어나간다. 그렇게 그들은 공간에서 치유되고 변화하며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간다. 침묵의 태도로 일관하던 그 공간- 죽음과 삶, 상실과 치유, 과거와 현재, 허상과 실체 사이- 에 서서 나는 독백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불투명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 안에서 고독하면서도 냉소적이기만 했던 나를 발견했고 환기한다. 그리고 이젠 그들 모두의 내재적 심상과 흐름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공간은 침식되기에 고독하면서도 웃을 수 있다.
'공간의 침식' 이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물리적이기도 하고 추상적 개념이기도 한 '공간의 침식' 이라는 말은 그 동안 해왔던 작업의 내용과도 통하는 많은 점들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인 어떤 것들, 또는 추상적인 어떤 것들....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끼어들기'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 이 것은 첫 번째 개인전 'she-he'에서 그들이 서있는 물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둘 사이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두 번째 개인전에서 전치를 통해 사물의 개념을 바꾸어 버렸던 '손질된 일상' 에서의 변형 속에 내재된 개념적 추상적 공간의 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세 번째 개인전 '공간 스케치' 에서의 돌보지 않는 외딴 공간의 스물거리는 생명성과도 많은 연관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 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 '손질된 일상'과 많은 연관성을 지닌다. 일상적 공간 안에서 재료들을 취하고 그들이 죽음, 상실 또는 손에 닿을 수 없는 어떤 것들과 관련지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죽음 앞에서 수북이 쌓여있던 생선 비늘들과 돼지의 뼈들, 쓸모없어져 버려지던 옷들과 열매를 맺고 말라비틀어진 넝쿨들. 이들은 내 일상의 주변에서 죽음과 상실이라는 무게에 직면해 있고 삶과 죽음, 상실과 치유 사이의 공간에서 꿈틀대며 다시 욕망한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꼼지락거리며 그 침묵하는 공간 안에서 그들을 깨운다. 그렇게 나는 그 곳에서 일상을 중얼거린다.
밝고 시끄럽고 화려한 요즈음의 미술에서 나는 너무 무겁고 심각하고 또 조용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반짝거리는 스팽글, 통통튀는 컴퓨터 속의 캐릭터들과 변화무쌍한 화면들, 그들의 유혹에 빠져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즐겁고 행복하며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핑크빛 꿈을 꾸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렇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뿌리치고 나는 왜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위들을 하고 있을까. 비늘을 씻고 썩히고 말리고 붙이고, 뼈들을 말리고 태우고 곱게 고르고... 이러한 행위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누군가 '예술가는 신화를 먹고 사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고 했던 것처럼 나는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다. 아니 일상의 모든 공백과 결여를 매꾸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능동적 게릴라로서의 예술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단지 어느 순간 그것들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나로부터 그들을 몰아붙이지 않고도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것들이 존재가치가 있고 사랑받을만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중얼거리고 싶었다. 그 중얼거림은 아마도 죽음과 삶, 상실과 치유, 허상과 실체 사이의 공간에서 그들이 욕망하던 그 침묵속의 중얼거림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인희
Vol.20050809a | 이인희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