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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03_수요일_05:3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일파만파_옥현숙의 나무조각 ● 옥현숙은 나무로 조각을 하는 작가다. 나무는 기존의 전통적인 재료인 돌이나 브론즈, 혹은 최근에 많이 이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등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하고 또 소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재료다. 국내 미술시장의 특성 때문인지 최근에 제작되는 조각들은 작업이 대형화되고 설치공간이 옥외로만 편향되는 추세를 보여주면서 재료 역시 내구성이 높거나 표현의 강도가 높은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희박한 재료적 밀도를 지니고 있으며 실내에 놓여져야만 하는 나무조각은 이런 대세 속에서 우선 재료적인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보인다. 최근 와서 주변에서 나무조각을 보는 일이 힘들게 되었다. ● 나무조각은, 작업공정의 많은 부분이 작가의 아틀리에를 떠나 외부공장에 맡겨지거나 기계의 힘에 의존하는 강도가 높은 다른 재료들의 조각에 비해 과정과 결과가 조각가의 작가적 역량과 의지에 많이 의존한다고 할 수가 있다. 여기에다 드로잉과 비슷한 재료적 자유로움이 있다. 이런 점에서 나무조각은 드로잉처럼 작가의 존재감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나는 특장을 지녔다고도 할 수가 있겠다. 다른 조각재료들의 경우, 작가의 사유가 어느 정도 정도 진행되다가도 적절한 어느 지점에서 물성의 저항감 때문에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재료와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라는 유연한 재료는 사유를 이보다 더욱 진행시킬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다. 옥현숙은 이러한 점을 잘 이용하고 있다. 가장 역사가 깊은 보수적인 재료를 가지고 보다 자유롭고 순발력 있게 현대적인 사유를 이끌어간다는 데에 그의 작가적 미덕이 있어 보인다.
내부 / 외부 / 그리드 ● 옥현숙의 초기 작업에는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보여주거나 그 사이에 걸쳐지는 것들이 많았다. 나무처럼 깍아내는 작업은 외부에 작업행위가 국한되거나 결과물 역시 외부만을 보여주기가 쉬운데. 그의 경우는 내부공간을 향한 틈새를 만들어주거나 내부와 외부가 동등한 조형적 자격으로 등장하는 작업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무상자로 보이는 선물(Gift)시리즈가 여기에 해당한다(1987년).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어떤 면에서 그의 작업은 외부와 내부에 걸쳐져 있는 막(膜), 경계 등을 확대시킨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매스를 극도로 기피하려는 데서 말미암는 현상이다. 매스를 무력화시키고 공간의 확장시키려는 작업은 조각보다는 건축에서 더욱 현저한 현상이다. 조각이 엑스테리어를 겨냥하는데 비해 건축은 내부공간과 인테리어를 일차적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건축에는 처음부터 내피적(內皮的) 감각이 포함되어 있지만 조각은 외피적 감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조각의 확대를 건축으로, 그리고 건축의 축소를 조각으로 보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이 둘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공간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구현해내는가, 또 구조에 있어 내부적으로 반복적 확대 시스템을 가진 그리드(grid) 혹은 모듈(module)화의 유무에 달려있다. 물론 현대조각은 어떤 점에서 건축적인 요소가 많이 추가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진화과정이 달라서 내부, 그리드 등의 개념이 덜 발달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조그마한 나무파편들은 일종의 그리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것들이 모여지고 쌓여질 때만 유의미(有意味)를 이루며 이들은 공간의 진화를 위한 최소한의 분절적 단위라고 볼 수 있겠다. 옥현숙의 작업에서 매스보다는 공간, 공간에 있어서도 외부보다는 내부, 외피감각보다는 내피감각, 단일한 형태보다는 반복적 확대 구조를 가진 그리드가 강세를 보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사유가 조각적 진화의 흐름에 있기보다는 건축적 진화의 계통수(系統樹)에 더 가깝게 놓여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각(刻) / 소(塑) ○ 대부분의 조형작업은 플러스 워크와 마이너스 워크로 대별될 수가 있다. 앞의 경우가 조소(彫塑)라고 불리우는 것이고 후자는 조각(彫刻)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이 둘이 복합될 때도 있다. 그런데 목조라고 하면 대개 후자의 작업에 해당한다. 나무라는 주어진 매스를 점점 줄여나가다가 조형이 완성되는 지점에서 멈추는 작업이다. 매스는 아무리 줄여나가도 그 결과는 역시 매스가 남게 된다. 대체로 각(刻)의 작업은 외부지향적인 매스를 낳고 소(塑)의 작업은 내부지향적인 공간을 낳는다. 그런데 옥현숙의 작업은 매스를 줄여나가면서 공간을 확대하는 방식을 택한다. 매스를 줄이면서 작은 매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드라는 다른 차원이 되어 이는 다시 모여서 공간으로 진화한다. 각(刻)의 작업을 선택하여 소(塑)의 결과를 목표로 한다는 그의 작업의 매력적인 이중성이 있다. 나무라는 재료는 벽돌처럼 하나의 그리드로 가공되기에는 불리한 재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돌 혹은 철골과 마찬가지로 건축적 구조 혹은 더 큰 시스템을 완성시키기 위한 그리드(Grid)의 재료로서 그는 나무를 선택하고 있다. 이러기 위해서 나무는 나무가 가진 원래의 형태와 물성은 무효화되어야 하며 구조를 이루는 최소한의 크기로 분절된 이들은 다시 새로운 테두리와 공간을 이루기 위해 세포분열의 증식과정을 거치게 하여야 한다. ● 공감각(共感覺) ○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사운드다. 전통적인 재료와 대비되는 최근에 각광받는 조각적 재료감각이다. 사운드는 질량감이 극도로 제거된 조각의 재료인데, 물론 당연히 형태는 없고 공간만 지배하고 있다. 질량과 매스가 없는 채 공간만을 장악하는 유일한 불가촉(不可觸, intangible)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태를 지닌 채로 점령이 되는 공간감(空間感)과는 달리 형태가 없는 채로 장악이 되는 공간감은 중심이 분산되거나 굴절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조각이라는 사건이 주어진 공간 전체에 분유(分有)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운드는 하나의 음원에서 출발한 일파(一波)지만 관객에게는 만파(萬波)로 감각되는 것이다. 이는 이미 분절된 나무의 파편들과 합세하여 새로운 존재감과 생명감을 전시장 전체로 확장시키고 있다. ● 옥현숙의 조형작업은 기존의 조각이 기피해왔거나 무관심했던 부분을 재료나 방법론으로 들추어내고 있다. 습관적으로 부풀려 나가던 것을 줄여나가고 외부에의 집착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고의적으로 형태를 파편화시키거나 상습적인 물성감각을 변형시켜 새로운 차원의 실험적인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 감동이 제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 황인
Vol.20050803a | 옥현숙 나무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