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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02_화요일
참여작가 / 김현명과 J.U_박태홍_양아치_이랑_이장원
주최_(재)세종문화회관
광화랑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160 www.sejongpac.or.kr
아주 뜨거운 냉방장치의 역설 ● 여름은 사계절 중 火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계절이라 이를 견디는 삶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시기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이었는데 20세기 막바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아열대 기후처럼 봄과 가을은 스쳐가듯 짧아졌고 여름과 겨울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여름의 태양은 절기 중 가장 높은 곳까지 솟아올라서는 지상의 미세한 곳까지도 뜨거운 열기를 불어 넣는데,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그 열기는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정도 벗어난 경기도 근방으로만 나가도 평균 온도가 2도 정도는 낮아진다고 한다. 굳이 온실 효과를 말하지 않더라도 빽빽하게 밀집대형으로 서로 몸을 부비며 서있는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 가열된 여름의 더운 대기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는 시내에 주저 앉아버린다. 열기에 열기는 가중되면서 체감온도는 배가된다. 검은 아스팔트는 더욱 검은 기름기의 아지랑이를 뱉어내고 회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들은 흰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어지러운 은빛으로 발하는 씬을 만든다. 더운 열기가 목구멍을 턱턱 막고 부딪치면서 요동치다 눈을 어릿하게 만들더니 머릿속을 온통 녹여내려 든다. 이쯤이면 여름은 더 이상 만물이 풍성한 여름이 아니라 지옥의 한철이 된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그렇다. 요컨대 서울에서 여름을 나기란 더 이상 火를 이긴다는 보신탕 몇 그릇이나 북한산 계곡의 서늘한 한 때 만으로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보다 평균온도가 3도씨 이상 오른 계절을 견딜 수 있게 되었나. 우리가 신체적으로 진화라도 했다는 것인가? 식자들은 전기와 디지털의 힘이고 이미지의 훈련 덕이며 이는 과학기술의 현격한 발전 덕이라고 말한다. 산업사회를 지나 첨단 정보기술사회로 진입한지 이제 몇 해되었으니 우리가 이렇게 자연의 혹독한 시험을 견딘다는 소리다.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격변하는 현대의 무한 경쟁과 무한 변화의 환경에서 견디며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한 것이다. 그것이 현대교육과 과학기술의 냉방효과이다. 그리고 이미지산업과 서비스 산업의 초절정 포스 덕분이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도 서울은 잘 돌아간다. 몇몇 공공서비스 분야가 불편하기는 하나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데 익숙한 시민들에게는 별일이 아니다. 점차 더운 열기로 휘감기는 서울은 다양한 직간접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민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더위를 몰고 온 여름을 잘 견디길 격려한다. 녹색의 잔디와 연주회와 스포츠경기가 그렇고 여름 철 우리의 오감을 휘어잡는 서스펜스와 스릴러와 액션무비가 또 그렇다. 더운 밤을 가로지르는 특별 쇼와 드라마가 우리의 친구가 되어준다. 또 자유로,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같은 고속화도로가 사방으로 쭉쭉 나아있어 교통체중시간대를 피해서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달릴 수 있다. 도로와 자동차가 교통수단에서 냉방수단으로 변하는 것이다. 또 각종 온라인 게임과 가상공간의 시추에이션들이 찬바람과 눈이 펄펄 날리는 게임 속 산야를 헤매며 레벨업의 경쟁을 통해 여름을 가상현실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여름은 그렇게 우리의 가상감각의 절기로 환원되기도 한다.
미술가들의 여름은 어떨까? 유유자적하며 동시에 서슬퍼런 예술의 경연장에서 현대미술 속에 빠져든 이들은 어떻게 서울의 여름을 자신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일까? 시시각각변하는 뉴욕발, 런던발, 베를린발, 도쿄발, 베니스발 세계현대미술의 첨단 예술정보를 접하면서 서울의 미술가들은 어떤 여름을 보낼까. 현대미술가들은 불과 70-80년 전 미술가들이 보냈을 도제식 교육에서 벗어나서 현대적인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을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오거나 또는 미술실기 박사를 연마하며 그들의 청년기를 보낸다. 물론 평생 공부하다 학생부군신위를 받는 것이 우리의 평범한 삶의 궤적이라면 유난히 길어지고 연장되어만 가는 미술가들의 학습 시기는 지나친 듯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치 예술이 무협의 한 장면처럼 어떤 기연을 통해 비급을 전수받고 무림에 나선 협객들 간의 우정과 배신과 투쟁과 충절을 보는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현대예술이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의 이미지경쟁의 장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경제나 정치와 같은 다른 분야에 비하면 여전히 선문답과 풍류의 멋을 아는 이들이 의탁할 아주 느슨한 공간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입문과정이 필요한데, 아마도 이러한 입문과정은 작가마다 다르고 그 시기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요즘처럼 인내의 한계를 훨씬 상회하는 여름의 열기는 어쩌면 서울의 미술가들에게 평균적 현실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을 시험해 보고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뜨거워 손도 댈 수 없는 현실의 각박한 열기를 더욱 뜨거운 여름에 한 번 시원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러한 역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서울이라는 테크노폴리스의 뜨거운 여름을 우리는 어쩌면 꿈처럼 작동하는 냉방장치를 상상하는 호기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 김노암
Vol.20050802a | 테크노폴리스의 여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