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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27_수요일_05:00pm
공동추진위원장_이종률_김윤기 책임기획_박응주 / 객원큐레이터_김태현 부산큐레이터_배인석 / 광주큐레이터_조정태
주관_(사)민족미술인협회 항쟁미술전추진위원회 주최_(사)민족미술인협회_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_부산민주공원_광주5.18재단_태백민예총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길에서 다시 만나다 ● 四月革命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 夕陽에 비쳐 눈부신 / 일년 열두달 쉬는 법이 없는 / 걸찍한 강변밭 같기도 할 것이니 (김수영,「가다오 나가다오」) ● 대개의 혁명은 길 위에서 꽃을 피우곤 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감옥을 향한 길 위의 행진이 그러하며, 러시아 2월 혁명의 발단이 된 페트로그라드시의 중심부 대로에서의 여성노동자들의 행진이 그러하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4ㆍ19의 경무대 앞은 독재무능정치를 끌어내린 시민혁명의 발원지였고, 부산 마산의 거리 거리는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단두대였으며 광주의 모든 거리는 해방구, 6ㆍ10의 전국토는 평등의 물결로 넘쳐났다. 그런데 혹자는 그 길이 끝났다고 한다. 또 누구는 이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고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엔 어느새 잡초도 무성해있고 가로를 행진하는 대오를 밝히던 횃불의 흔적마저 가믓하고 지난날의 회오와 의심의 시간만이 쨍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을 뿐이다.
길이 끝났는가? 이 전시는 끝난 그 길 위에서의 사유이다. 우리는 혹시 조급증으로 모든 것을 추억으로 돌리는 자조의 쓴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은지, 선거 때 야당에 던진 투표 한 번으로 위대한 의회주의 혁명을 이룩한 것으로 스스로도 놀라며 도취되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는 그 둘 다를 역사의 상상력에 대한 포기로 규정하리라. 이를 '달력의 상상력'이라 명명해본다. 이는 하나를 줬으니 하나를 받는, 실로 옹색하기 그지없는 차용증서의 상거래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혁명이 안 되면 민중도 필요 없는' 지식인이다. ● 김수영에 의하면 근대씨가 뿌려진 그 대지위에는 이제 호박씨 배추씨 무씨가 뿌려질 차례이다. 근대의 그 빛나는 빌딩, 그걸 허물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려라!... ● 문제는 이 허무를 감내할 수 있겠는가, 그 무명의 세월을 견딜 수 있겠는가이다.
항쟁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이 전시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한 때 수구적인 민족정신의 앙양을 위해 대거의 작가들을 동원했던 '민족기록화'처럼 죽은 항쟁을 살아있는 듯 묘사할 수도, 아비의 아비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오는 살아있는 항쟁사를 죽은 듯이 추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각인된 기억'으로 남겨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태초의 공동체에의 꿈, 수 백년된 나무 아래에서 할미와 손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 아비가 상상했던 나라가 손자의 꿈이 되는 상상력의 전승이었어야 했다. 이는 두 가지의 입지점을 가능케 했다. 말하자면 이는 가까이는 내가 딛고 선 땅의 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멀리는 예술의 기초마저도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보될 수 없다는 도덕적 명령에 가까운 논리의 기초를 구성했다.
그 첫째란, 한 자연인의 삶 속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어 그것은 태고로부터 메트릭스의 세계에까지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는 예컨대 사랑이나, 우정, 평등, 평화와 같은 가치들로서 이들은 새로움이나 참신함과 같은 기준에 의해 다퉈질 수 없는 정체성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각인된 기억은 신체에 육화된 정신의 영역으로 이것이 정체성의 근간, 주체의 주체되기를 독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이 예술의 기초인 것은, 예술의 형식성을 주장하는 논의와 대척의 지점에서 그러하다. 흔히 모더니즘이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형식성은 모든 예술이 비의성이나 밀폐성, 즉 독자적인 자율적 형태를 지닌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만 효력을 미쳐야할 규정으로서, 모든 '가상'들은 결국 재귀적으로 이 세계의 고통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한 예술의 사회적 기초라는 것이다. 결국 이는 예술을 한 사람의 천재적 작가의 일필휘지의 영감으로 여기는 예술론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작품들은 하나의 유기체적인 완결, 곧 형식과 내용의 통일성을 제 일의로 두지는 않고 있다. 각인된 기억이 끊임없이 형식을 교란하는 지점, 그 교란에 허심탄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즉 예술이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라면, 그곳은 태초의 공동체에의 꿈, 주인된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주장을 넘을 수 없으며, 그 이상과 이하는 사절하는 독자성을 확보하는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다.
이 전시는 하나의 제안이다. 책임을 거론하면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법, 자유를 말하면 책임을 수반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책임에게 위임해왔던 통치의 신념, 그 60년의 공과를 이제는 자유의 스펙트럼에게 위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동엽과 김수영의 차이,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을 외치던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잿님이 할아버지와 경복이 할아버지, 두붓집 할아버지같은 이에게 역사의 바톤을 넘겨보자는 제안이다. 민족이나 민주주의나 민중 그 어느 것도 말하는 일 없이, 물질적이고 생물학적인 집단으로서의 민중, 그 살(肉)적인 부대낌들이 만나 부르는 합창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것은 김수영이 묘사한 바 서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찬 '풀'들의 역사다. 풀들이 나고 지고 또 그 자리에서 잎을 맺고 열매지며 바람과 비와 이슬과 서리와 섞이는 길 위에서의 만남이다. 일년 열 두 달 쉬는 법 없는 강변 밭 대지 위에 초목이 생멸을 거듭하듯 우리의 죽음은 그 삶으로부터 길어온다. 그 죽음으로부터 삶을 길어온다. ■ 민족미술인협회
Vol.20050731a | 길에서 다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