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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전시기간중 매주 수요일_06:00pm
정영훈_홍순환_김관수_한계륜_차기율_구영모 책임기획_김숙경 / 협찬_나무기획
『2005 역설과 현장』展 전시일정 ① 정영훈_『신의 은총』_2005_0720 ▶ 2005_0726_2층 ② 홍순환_『역학의 구조』_2005_0727 ▶ 2005_0802_1층 ③ 김관수_『무제』 _2005_0810 ▶ 2005_0816_1층 ④ 한계륜_『[말하다.][malhada.]』_2005_0817 ▶ 2005_0823_3층 ⑤ 차기율_『순환의 여행ㆍ방주와 강목사이』_2005_0824 ▶ 2005_0830_1층 ⑥ 구영모_『미술棺』_2005_0830 ▶ 2005_0906_특관
관훈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무저항적 상태와 자생적 에너지 ● 현대적 삶이 토해내는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때론 그것이 지시하는 과제적 위상에 눌려 그대로 주저앉게 된다. 그리고 그것 중 어느 하나와 '문득'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무기력증은 더욱 심화되거나 혹은 깊은 상실감의 반전으로 도전과 극복이라는 강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생산한다'는 인간의 의도적, 감성적 행위란 이와 같은 대립적 경로의 접점에서 드러나는 삶의 상징적 현상들이다. 이는 한 개인의 역사성을 기술하는 은유적 결과물임과 동시에 또 다른 개인의 감성적 주체에 접근하는 비정형적 매개물이다. ●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난해성은 -설치와 영상으로 대변되는- 매체적 영역에 이르렀을 때 그 무게감이 더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는 '미술의 이해와 소통'으로 대변되는 미적 감성의 공유와 예술의 역할이 갖는 다층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예술의 형식적, 개념적 다양성 또한 '변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사회생물학적 본성과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 가져 갈 것인가?'라는 삶의 과제적 원론에 닿아 있음을 환기한다면 그다지 난해한 지점에 정체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주지할 점은 '아름다움'을 기술하는 현대미술의 현상에는 그 의미를 반어법적 혹은 배치적(背馳的) 방식으로 제시하는 역설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인습적 행위가 산출하는 '낯설음의 작용효과'로서 하나의 내용과 형식을 가시화함에 있어 독특한 전달강도를 갖는다. 즉 '허구를 통해 진리를 가늠한다'는 미술의 역사적, '종교적' 기능을 근간으로, 가상과 현실 혹은 허구와 실체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모호성을 극대화하며 관찰자라는 감성적 주체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역설'로 대변되는 탈괘도적, 비정형적 전달방식은 미적, 사회적 가치판단의 인습적 가면을 벗기며 전시공간을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현장'으로 몰아 간다. 그 안에서 '아름다움의 실체'가 갖는 허구성은 더 이상 허구적이지 않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이 인간의 생활현실과 예술현실의 경계에서 자유롭고 또한 지배적이다.
'한 개인의 역사와 현실은 변화하는 과정, 즉 진행선 상에 놓여있다'는 삶의 객관적 의미내용은 그것이 갖는 보편적 당위성에 비해 다분히 '특수한 형식적 변수'로 미술현장에 위치한다. 이는 미술 안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가능태(可能態)가 허구와 실체를 동시에 함유하며, 다기다양한 의미들을 가시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격은 작가가 전달하는 개별적 내용과 형식들을 구체적으로 관찰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관훈갤러리가 초대하는 전시「2005′역설과 현장」을 통해 구영모, 김관수, 정영훈, 차기율, 한계륜, 홍순환은 소통방식의 역설적 구조와 그것의 강한 현장성을 제시한다. 그들이 전달하는 의미론적 개별성은 삶 안에 존재하는 '많은 것 중 어떤 것', 즉 과제적 선택의 문제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영훈은 자신의 전시에서 '게임의 논리'가 적용된 New-Media를 매개로 기존 현대미술의 형식적 유산들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작업 "신의 은총"에서 작가는 현실의 압박을 상징하는 인간두상의 몽환적 이미지를 전시공간에 배치, '가상이 현실화'되는 묘한 지점으로 관객을 유도한다. 그 안에서 관객은 자신의 신체가 '만들어진 두상'과 동일시되는 독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시각 매체가 갖는 사실성과 허구성은 홍순환의 작업 "중력의 구조"에서 보편적 가치기준의 비논리적 모호성을 상징한다. 그는 일상에서 폐기된 사물들에 물리적 힘을 가해 그것이 지닌 중력적 역학관계를 변질시킨다. 허나 그것은 사물의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시각적 존재의 허구와 부조리를 통해 인간의 생활현실에 내재된 비합리적 모순을 가시화하고 있다. ● 또한 김관수는 작업"무제"를 통해 매체의 의미를 일정시간이 지나 '만들어진' 하나의 '개인적 결과물'로 규정한다. 작업과정에서 그는 개념적 논리보다는 사물을 다루는 근원적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대이론적, 형이상학적 허구에 대한 반론으로, 자신의 작업이 '장인적 행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피력하고 있음이다. ● 현대미술의 지적 작업에 관한 비판적 시각은 한계륜의 영상에서도 중요한 성격으로 자리한다. 그는 작업 "[말하다.][malhada.]"에서 신체동작의 반복적 행위를 간결한 영상이미지로 연출, 관객에게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즉, 기술적 현상에 집중하는 기존 영상미술에 대한 비평적 대안으로, 작가는 '회화가 갖는 조형적 고유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한계륜이 회화적 조형언어를 통해 영상매체의 난해성을 해소한다면, 차기율은 자연이 지닌 생명의 근원성을 주제로 설치미술이 갖는 탈조형적 혼란의 개념적 문제를 해결한다. 작업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에서 작가는 나무뿌리들을 다듬어 마치 하나의 신체기관이 연상되는 '유기물'로 환원하고 있다. 그의 작업공간 안에서, 자연으로부터 채집된 사물들은 작가의 분명한 의지를 통해 인간의 문명적 경로를 순환하는 서사시적 여정에 놓이게 된다. ● 전시의 마지막으로, 구영모는 고풍스런 액자들로 커다란 관(棺)을 제작, 미술관(棺)을 미술관(館)으로 가져온다. 이는 모든 형식적 관념적 질서와 의미를 변환해 버리는 것이다. 작업 "미술棺"을 통해 작가는 기존의 창의적 예술형태에 종말을 고함으로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미술이 산출해낸 수많은 가치기준의 틀 앞에 선 예술가의 윤리적 책임과 의무를 조율하는 작가적 자유의지이다.
현대미술의 형식은 대형서점 가판에 자리한 신간들만큼이나 다양하며 그것들이 일으키는 진동은 개별적이다. 또한 '미술은 일정부분 과거의 통상적 영역 밖의 형식으로도 존재한다'는 현대미학적 정의 역시 '이젠' 그리 독특한 현상이 아님도 분명하다. 인간은 현대화라는 문화역사적 과정을 통해 -미적, 의도적 인간활동으로 규정된- 예술전반에 형식적 다양성과 개념적 개별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오늘날 작가들은 자신의 개인적, 저항적 역사와 예술의 대사회적, 윤리적 역할이 강하게 교차하는 '과도기적' 현실에 위치하게 된다. 그들이 전달하는 삶의 의미론적 내용들과 이를 구체화하는 분명한 형식들은 미술현장에서 다양한 갈래로 특성화되고, 작가에 의해 다시 '불특정 경로'로 이행할 수 있는 '유기적 산물 그 자체'인 것이다. ■ 김숙경
Vol.20050726b | 2005_역설과 현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