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722_금요일_05:00pm
국민아트갤러리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 국민대학교 예술관 1층 Tel. 02_910_4465
역할놀이라고 풀이될 수 있는 롤플레잉은 J.L.모레노가 1920년대 초에 만들어낸 말로써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心理劇)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연기는 각자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맡겨, 대사나 줄거리는 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통의 연극과 다른 점이다. ● 작가는 노이로제와 정신병치료에 쓰였던 롤플레잉을 보다 공상적인 유희로 정의내리며 회화로 풀어나간다. 작업에 있어 주로 본인의 꿈을 모티브로 삼는데, 꿈속에서 작가는 기차놀이하는 소녀로도 등장하고, 호스를 장난감 총 삼아 놀이에 열중인 경찰로도 등장한다. 이렇게 역할 놀이를 즐기는 주인공들은 '놀이'답게 유희적이고 축제적이다. 그것은 사물의 은유, 더 나아가서는 놀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은유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안에서 진짜 총이나 전화기는 파란 고무 호스나 종이컵으로 대체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어렸을 적 친구들과 어울려 했던 경찰놀이나 소꿉놀이는 실제(實際)와 다르지만 공상을 더해 또 다른 실재(實在)를 불러일으킨다. 이 은유성을 통해 작가는 일상적인 듯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며 아주 약간의 일탈로 은유된 대체물은 공상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에는 대부분 같은, 그러나 크기는 다른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보인다. 가상과 현실의 이야기를 동시에 펼치고자 하는 작업의 기준에서 보자면 그 인물들은 모순되고 대치되는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의 내러티브처럼 유희하며 어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캔버스도 군데군데 군집을 이루며 뭉쳐져 있다. 각각 독립된 내러티브는 하나 이상으로 엮어져 그보다 넓은 내러티브를 생산해낸다.
공상과 몽상의 중간쯤에서 탄생된 이미지들은 기괴하거나 괴물같은 형상을 띌 정도로 일탈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천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복장 페티쉬, 섹슈얼한 장난 등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도 같은 내러티브는 물리적 현실과 무의식적 사고의 중간쯤에서 존재하는 공상, 그리고 이 환상은 실제 현실과의 긴밀한 관련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약간씩 비틀린 이미지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은유된 유희이다. 환상이나 공상이 꼭 현실과 대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해, 여기에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유사한 대체물이나 결핍된 요소에 대한 상상을 거쳐 롤플레잉이라고 하는 기존의 개념에 유희성을 더욱 가미한다. 은유를 바탕으로 한 놀이처럼 공상도 역시 그러하다. 현실이 머릿속에서 재배치되는 유희를 즐기며 탄생되는 작업들은 그 자체로 놀이이다. 작가는 공상을 통해, 그렇지만 현실과 상충되지 않는 이미지들을 생산해내며 그 곳에서 유희한다. ■ 강지윤
Vol.20050721b | 강지윤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