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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02_토요일_03:30pm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경기 안성시 미양면 계륵리 232-8번지 Tel. 031_673_0904 www.sonahmoo.com
이응우의 "바꿔쓰기와 다시보기" ● 지난 겨울 이응우선생의 작업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갑작스런 건강 적색 경고를 받고 그가 취한 조치는 추운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공주 원골 자연미술의 집 작업장에 틀어 박히는 것 이었다. 우선 너저분한 작업실을 정리하던 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오브제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것들과 놀이를 시작했다. 자르고, 태우고, 붙이는 동안 불속으로 들어가 재가 될 나무토막들이 그의 손맛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용도가 애매한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 쓰다버린 작두 같기도 하고 우주공상영화의 비행선 같기도 한 作業物들은 그의 생김새만큼이나 털털하게 보이지만 그가 몰두했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의 놀이의 소산들은 우쭐하게 자신을 뽐내야 직성이 풀리는 여타 예술작품들과는 달리 시골 노인들이 툭툭 찍어 쌓아 놓은 나무토막들처럼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그저 다른 것들과 나란하게 누워있을 때 오히려 보기 좋다.
'바꿔쓰고 다시보기'는 이응우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무릇 모든 창의적 사고의 출발이 그가 말하는 "변용과 재인식"의 과정이고 보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물의 분류적 특성과 실용성에 의해 규정되는 사물의 이름과 그 의미망을 벗어나 사물의 또 다른 본성과 만나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치유하기위해 작가 본연의 일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자신이 천착해온 자연미술의 연장선상에서 무언가 그럴듯한 작업을 하기위해 몸을 도사리기보다는 그저 발에 걸리고 손에 잡히는 나무토막과 철재들을 주물럭거리는 작업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본인도 예기치 않았던 주변 것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그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얻어낸 소득은 무엇보다도 창작의 즐거움을 실감나게 경험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작가로서 쌓아놓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긴장을 풀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신의 감성과 정신을 유영(遊泳)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이응우가 자연 현장에서 이미 풀어놓은 작업의 양이 적지 않고 한국 자연미술계의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인 이상 그의 작업들 하나 하나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몸의 정상적이지 않은 징후를 접하자 삶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응우는 자기스스로 자기에게 짐 지운 그 어떤 것을 내려놓고 마치 초보자처럼 아주 원초적인 제작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전시회가 단지 그의 유희적 작업들로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 그가 전시 팜프렛 표제 작업으로 선보인 '댕기'라는 작품은 긴장의 이완 이후에 찾아오는 산뜻한 발상으로 이전의 유사 작품과 그 형식적 차이를 보이는 작업을 선보였음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그는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 서서 보다 새롭게 앞으로의 작업을 설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여름 땡볕 아래 그야말로 잘 차려입고 그의 꽁지머리에 세갈래 풀로 땋은 머리를 묶은 다음 그 끝에 빨간 댕기를 매었다. 여기까지는 자신의 꽁지머리와 자라나는 들의 풀들을 서로 관계지우면서 우리의 전통적 머리스타일과 자연의 생명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동안 野投그룹의 일반적 제작 어법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는 선연한 핑크빛 배경색을 자신의 작업의 배경으로 취함으로서 개념적(conceptual)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을 시각적(visual)인 영역으로 회귀시켜 시감각적 즐거움을 충분히 제공하게 하였다. 그가 팜프렛 제작을 위해 도발적 포즈와 배경색을 그의 품성대로 점잖게 수정하기는 하였지만 처음 제시한 사진이 주는 매력적이면서도 코믹한 여운은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서 그는 보여짐을 의식했다. 풀잎 댕기머리를 달고 단색 벽면 앞에 삐딱하게 서 있는 뒷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작업 의도를 분석해 들어갈 여유를 주지 않고 직접 눈의 망막에서 먼저 작용한다. 개념과 감성이 그 경계를 허물고 동시에 엉켜 들어오는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그냥 삐실 삐실 웃음을 흘리게 한다.
그는 전시 오프닝의 간단한 퍼포먼스를 통해 상서로운 일을 위해 길을 떠나기 전 의복을 정제하고 예쁜 댕기를 맸던 우리의 옛 형님들과 누이들을 이야기하면서 전시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축원하였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 제작과정을 듣는 일은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이 나의 의식이 소화 할 수 있는 범위를 어느 순간 벗어나 쭉 뻗어나가는 느낌을 받을 때는 기분 좋은 질투감이 머리와 가슴사이를 왕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한 겨울 작업실에서 풀어낸 이응우 선생의 작품전이 긴 여름 장마의 첫머리에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열린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즐거운 작업 과정에서 찾아든 행운같은 영감의 순간이 같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또한 작가 이응우의 앞으로의 행적이 창작의 진정한 즐거움이 고갈된 이 시대를 격려하는 큰 몸짓으로 드러나게 되길 바란다. ■ 전원길
사물의 변용과 재인식 ● 휴가를 틈타 겨우내 자연미술의 집에서 생활했다. 처음에는 실내정리, 특히 자료실정리와 옥외의 울타리와 잔디밭, 마당정리 등 작품외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평소 이처럼 근력과 악력을 쓰지 않았던 지라 자고나면 팔이 저리고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만큼 피곤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노동과 같은 육체적 활동은 잡다한 생각과 일상의 번민을 소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울러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은 점차 창작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무엇이든 일을 하다 발생된 잡동사니들을 태우다가도 작업을 위한 모티브를 발견하고 그때마다 한곳에 모아두었다. 이렇게 모아진 소재들을 실내로 들여와 곰곰이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참을 보노라면 그 오브제들은 생긴 모양과 특성에 따라 가상의 공간속에서 춤을 추다가 그들 나름의 최적의 위치를 찾아 이동하게 된다. 하마터면 불살라버리거나 쓰레기통속으로 묻혀 버릴 운명의 기로에서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무의미해진 일상의 노폐물들이 나의 손끝에서 새 생명을 얻어 예술적 창작의 요체로 부활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생명의 주입, 부활, 재인식의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변용'작업의 본질이다.
나는 이러한 내 작업적 매카니즘을 물질로서의 대상에 대한 내적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즉 원래의 용도나 역할과 관계없이 전혀 다른 의미나 내용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외형적 코드는 현대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수공적, 생태적이라서 원시적인 느낌마저 든다. 오늘날 첨단의 기술융합시대의 흐름으로 볼 때 현재 나의 지극히 수공적인 작업은 세월의 흐름을 역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나는 수공에 의한 노작이란 작업방법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요즘 나의 작업들은 조형중심으로 발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작업이 조형이라는 형식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구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작업의 시작은 나의 생활과 밀접한 부분에서 관심의 향방에 따라 소재들을 선택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생활과 조형을 융합하는 시도이다. 즉 작품들의 용도나 그 기능을 생각하고, 때로는 형상자체로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그 구조의 견고성과 시각적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꽤 숙고한다. 예를 들면 방향, 크기, 횟수, 색채, 등등 아주 사소한 디테일의 경우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나는 '사물의 변용'에 대하여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변용'은 '변화됨'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물질적 본질을 떠나서 물성까지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련의 작업들이 우리의 사물에 대한 질서마저 흔들어 놓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저 자연스럽고 인간적이어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철학은 인간의 내적 정신의 구현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것의 표현이다. 그럼으로써 예술은 내적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생명력은 타자들을 감동시키고 스스로의 지위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강한 작품일수록 감동의 깊이가 더할 것이다. ● 그동안 자연과 함께해 온 오랜 시간의 경험이 현재의 내 작업들을 지탱해주고 있다. 즉 자연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요소들을 어떤 방법으로 미학적 관련 속에 대입시켜 새로운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고 소통의 구조를 갖게 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리고 나는 가급적 내 의도대로 재생된 새로운 이미지들이 동적에너지를 갖길 원한다. 그리하여 각각의 개체들이 더욱 율동했으면 한다. 이들 작품 속에 살아있는 생명의 움직임은 결국 타자에게 전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새 아침에 자연미술의집에서 ■ 이응우
Vol.20050715a | 이응우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