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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08_금요일_06:00pm
갤러리 아지오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1리 362-10번지 Tel. 031_774_5121 www.galleryagio.co.kr
팍투라로부터 소통으로 ●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으로 정교하게 마감된 이상길의 기하학적 입방체는 비인격적이며 중성적인 물질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기계적이면서 건축적인 형태를 지닌 구조체의 투명성은 러시아 구성주의 미학이 지향했던 팍투라(factura) 즉, 재료 자체가 지닌 성질의 실현에 충실하고자 했던 제작방식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기하학적 구조체의 결합과 조립, 합리적 배열에 의해 구축된 형태는 기능과 상관없이 심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적 요소인바 금속성의 물질과 조화를 이루며 조화, 질서, 균형 속의 긴장과 같은 미적 특질을 강화하고 있다. 구조물의 결합과정에서 강조되는 요철과 표면의 거울효과(mirror effect) 못지않게 자기완결성을 지향하는 형태는 정밀한 금형과정을 거친 제품에서 볼 수 있는 '날것의 신선함'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최근 작품에서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 외곽의 닫힌 형태와 내부의 뚫린 공간 사이에서 직선과 곡선이 각자 형식적 자율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형식이 내용을 추월하고 있는 경우로 보인다.
그러나 이상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이러한 형식적 특징을 뛰어넘는 상징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 입방체는 상자로부터 출발하고 있는바 '접촉(Contact)'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 이전에 발표했던 「숨을 쉬고 있는 상자」를 보면 상자는 단순히 물건을 담는 용기(容器)가 아니라 의미의 저장고, 상징과 은유의 채집상자이자 그 자체가 살아 호흡하는 유기체로 의미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일수도 있고, 수학적 비밀을 간직한 큐브(Cube)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폐쇄, 밀폐, 은폐, 보존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의미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통로이자 그 의미와의 접속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도체(電導體)이기도 하다. 2000년에 발표했던 「숨을 쉬고 있는 상자」를 보면 일련의 연속된 입방체 내부에 복잡한 내용물들을 갖추고 있어서 상자 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에너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병이나 유리구슬 같은 것들이 비록 결박당해 있을지언정 이것들은 계통, 계열별 분류방식에 따라 진열된 것이 아니라 다소 무질서하게 서로를 지탱하거나 압박하며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단순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구성이 자연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코스모스 속의 카오스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서로 이질적인 물질과 형태의 결합은 '우연한 만남'을 특징으로 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으로서가 아니라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고려의 결과이다. 비록 이 작품이 기계장치와 하등의 관련은 없지만 이 복잡한 내부구조는 세계로 향해 전파나 신호를 보내는 송신기이거나 혹은 외부로부터 전송된 신호를 받는 수신기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건조하고 규격적인 형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신호의 주고받음을 매개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마치 가지처럼 뻗어나가고 있는 선(線)이거나 혹은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구슬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한 동경을 입체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은 우주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접속을 가정하여 제작한 「우리뿐인가?(Are We Alone?)」란 작품에서 증폭된다. 우주공간으로 날아간 우주비행사의 발언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미지의 세계와의 소통을 꿈꿔왔던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마침내 우주로 향해 내뻗은 안테나와도 같은 구조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입방체 위로 뻗어 오르거나 혹은 입방체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잔가지들은 결국 작가가 그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와의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안테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와의 접속을 상징하는 장치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입방체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에너지를 우주공간으로 날려 보내거나 우주의 에너지와 접지시키기 위해 외부공간으로 뻗어나가는 촉수와도 같은 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직접 만든 유리의 그 자유로운 형태는 그 자체로도 지나치게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에 변화를 제공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투명하면서도 영롱한 색을 지닌 유리질을 통해 빛을 수용하고 발산하는 과정을 암시함으로써 작품에 신비감를 부여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사실 과학의 눈으로 보자면 터무니없는 것으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무한한 우주로 향한 동경과 상상력이 아름다움에의 추구와 결합할 때 우리를 '경이'의 세계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어린 시절 품었던 철없는 상상력이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듯이 성인이 되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신비를 좇는 작가는 네버랜드를 찾아 떠나는 피터팬의 순수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비과학적이거나 의사 과학적(pseudo-scientific) 위장, 그것도 아주 소박한 차원의 구조물임에 분명하겠으나 이러한 작업을 통해 단지 형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 구조물을 매개로 낯선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는 작가는 물질을 가공하는 노동 중에도 초월을 갈망하는 신비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구조체에서 뚫린 공간이 나에게는 마치 웜홀(wormhole)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구멍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의 상상의 여행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인 시간여행, 차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상상의 유영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형태의 견고성 너머에 있는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받아두어야 할 비자(Visa)와도 같은 것이다. 그 몫은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탄력 있고 개방적인 것인가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소통은 상호적이지만 내가 준비가 되어있을 때 작동한다. ■ 최태만
Vol.20050709c | 이상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