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최정우 조각展   2005_0622 ▶ 2005_0628

최정우_다들미친거 아냐_철, 흑경_240×1000×100cm_2005

초대일시_2005_0622_수요일_06:00pm

갤러리 올 서울 종로구 안국동 1번지 Tel. 02_720_0054

강박적 심리를 표출하는 공간 구축 놀이 ● 현대와 현대의 인간을 진단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초고속 정보화 사회, 비약적인 과학 발전의 시대. 소통 불능의 시대. 시대를 진단하는 말들은 암울하고 침울하기 그지없다.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뒤쳐진 채 고독하고 외롭기만 하다.

최정우_다들미친거 아냐_철, 흑경_240×1000×100cm_2005_부분
최정우_잠시꿈을꿨을뿐_철, 흑경_240×220×103cm_2005

최정우의 작품은 불길하다. ● 불안하고 위태로우며 그래서 불길하기까지 하다. 작품의 규모가 그러하고 커다란 덩어리가 줄 하나에 매달려 있는 것도 그러하다. 이번 전시에서 특징적인 면은 공간감과 텍스트의 결합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이다. 먼저, 작품이 만들어 내는 공간감은 다음과 같다. 수직성을 강조하며 우뚝 솟아있는 기둥과 같은 작품(혼잣말-다들 미친 거 아냐), 천정에 매달린 작품(혼잣말-썩어 없어질 것들) 그리고 바닥에 놓이는 작품(혼잣말-잠시 꿈을 꿨을 뿐) 모두 묵직한 양감과 압도적인 질량감을 전달한다. 작품을 보는 순간 일단 그 규모와 형식에 압박당한다. 거대한 덩어리의 질량감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그 크기에 있어 압도적이기 때문에 혹은 상당한 무게와 덩어리감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위태로우며 그래서 불길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압박감은 수직 철기둥 앞에 혹은 그것이 구성하는 공간 안에 위치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그 속으로는 침투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강화된다. 작품들은 형상과 질량감을 통해 공간을 형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의 표면 위에서 미끄러지고 비껴난다. 작품의 주위를 배회할 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정우의 작품 앞에 서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심리적인 공간에 서게 된다. 작품들은 배척과 거부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은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다.

최정우_꿈꾸다_철, 흑경_가변설치_2005
최정우_꿈꾸다_철, 흑경_가변설치_2005_부분

조각이란 실체들을 공간 속에 배열하는 예술이라고 말한 레씽이나 「현대의 조각」이라는 저서에서 조각의 공간적 특성을 언급한 카롤라 기디온-웰커의 견해를 따르자면 조각이란 공간을 구성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최정우의 작품 역시 공간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단순히 형태의 조형성이나 추상적인 형상을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다. 작품의 순수한 형상과 공간의 조작은 현대인들의 심리만큼이나 강박적이고 억압적인 공간을 구축해낸다. 우리는 몰아세우는 듯한 공간에서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를 보게 된다. 텍스트들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바닥에 깔린 스테인레스 스틸을 통해서 혹은 수직 기둥보다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아야만 이 추상적인 형태들이 텍스트들임을 겨우 알 수 있다. 한 단계를 건너서만 혹은 한발자국 물러나서만이 억압하고 몰아세우는 듯한 공간이 억눌린 심리의 표출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텍스트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썩어없어질 것들", "다들 미친 거 아냐", "잠시 꿈을 꿨을 뿐" 등등) 텍스트와 공간감의 결합은 구상 조각보다 더 구상적인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조형적 공간과 텍스트의 결합이 내용의 부재와 추상적 형상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형태는 텍스트의 해독으로 초월된다.

최정우_썩어없어질것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5
최정우_썩어없어질것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5_부분
최정우_볼까_철, 흑경_240×70×60cm_2005

텍스트가 반사와 거리를 통해서만 제시되는 것처럼, 우리도 모르게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혼잣말이나 나도 모르게 흘리는 실소들을 통해 강박적인 내면이 표출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독백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혼잣말의 순간이, 속을 흘려버리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로 그 순간 소통과 화해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의 컨셉인 혼잣말은 자조적이며 실소에 가깝다. 우리는 진심 한번 토로해볼 사이도 없이,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볼 사이도 없이 일상을 소비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가 낯간지러워진 세상......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 외에는 다른 말을 뱉을 수 없게 된 세상. 이미 대화는 대화가 아니고 몸짓은 몸짓이 아닌 세상...... 최정우가 구축한 공간 한가운데에서 고독하고 외롭다는 이 시대를 다시 한번 곰씹어보게 된다. 그의 작품을 통해 위태하고 불안한 현대인을 상황과 심리를 느낄 수 있다면, 문제를 인식한 다음엔 해결도 가능하다는 논리에 따라 우리의 이 시대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 김선영

Vol.20050705b | 최정우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