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619_일요일_05:00pm
참여작가 오픈행사_과천 VJ영상설치_YBY 퍼포먼스영상설치_이케다 쿄우코 퍼포먼스 연출_소재우_김형식_김형주_박상현_양재형_추수희(계원대 매체예술과 YBY) 채동원_박진숙_이인혜_김명화_이선미_정성일_김수진(대진대 왕대포무브먼트) 김효숙_정지은_이케다 쿄우코(용인대)
협찬_과천시_과천시 시설관리공단_과천 여성VJ (ACEVENTURA)_스톤앤워터 후원_경기문화재단
에어드리공원 내 잔디밭 경기 과천 갈현동 677 정보과학도서관앞 Tel. 02_3677_0771
윤현옥의 탐구생활 ● 윤현옥의 작업을 읽는 일은 그의 언행만큼이나 명료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그 못지않게 어려움도 크다. 나는 그의 작업에 반하기 이전에 먼저 그의 인간에 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 첫 장면은 23년 전 석사과정 학생의 신분으로 되돌아간다. 늦깎기 학생으로 1982년 2학기에 대학원을 등록하면서 중등교직생활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던 내게 대학원 출석은 큰 난관이었다. 이미 그보다 7,8년 전 모 고교의 야간부 미술교사로서 대학원 과정중이였던 내가 주간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강의 진도와 그에 따른 연구에 실패하여 결국 2학기를 마치고 도중하차한 경험을 가졌던 나로서는 이번만큼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강의진도를 쫒아가는 문제는 결코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구원의 빛은 윤현옥에게서 왔다. 당시 조교 일을 보던 현 전북대학교 이상조선생의 주선으로 윤현옥을 소개받은 나는 비프스테이크 하나를 빌미로 뻔뻔스럽게도 이일선생님 회화론 강의노트를 위시해서 그의 노트를 몽땅 복사하는 철면피한 짓을 벌리고 말았다. 뿐더러 이후의 이론 강의들도 거의 그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빠진 것만 복사하기로 하였지만 그의 노트를 보는 순간 조리 있는 정리와 시원시원한 字體에 매번 반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한때 나는 노트정리 벽에 빠졌든 적이 있는데 그 시초는 윤현옥의 모범적인 노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 그 후 그의 10여 년간에 걸친 독일 유학생활과 귀국 후에도 각자 다른 길로 인하여 적조한 관계가 되었다가 최근 2002년 8월 카셀 도큐멘타를 같이 관람할 기회를 갖으면서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5년마다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는 규모 자체가 크기도 하지만 작품 또한 평면작품이 거의 전무한 대신 미디어아트나 사진 등의 도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이 관람을 위하여 전시장 가까운 곳에서 민박을 하면서 하루 왼 종일 그것도 3일 동안을 관람하게 되었다. 나를 위시한 일행은 꼼꼼히 본다고 작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이나 컨셉의 작품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는 전시장에 제시된 모든 기호를 해독하고 모든 내러티브를 청취하고 또 준비해간 다소 육중한 캠코더로 그것들을 모두 옮겨 담았다. 그는 나 같은 감상적(sentiment)인 작가가 아니었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하여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상식을 거부하는 이 같은 태도는 문예진흥기금을 지원 받아 그해 가을과 겨울에 걸쳐서 시행된 재건축 프로젝트 2002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 잠실주공 4단지 아파트의 재건축과 연계하여 송파의 송전초등학교와 안양 스톤앤워터에서 개최된 이 전시에서 그는 프로젝트 전체의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이 전시회는 12명의 개인작가와 9개의 예술집단이 공모에 의해 참여하였다. 나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는데 문제는 예상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작업과정이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지리적, 예술교육적 측면들을 시각언어로 바꾸는 일이었는데 이는 여러 차례의 그룹 스타디와 토론을 거쳤다 할지라도 예술적 성향과 출신이 다를 뿐 아니라 각자의 작업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관계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여전사였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저한 기획과 통제 하에서 전시는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서 그 과정과 성과를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자? 션?내용은 류병학 지음,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잠실동 안양의 명당 석수동, 아침미디어 출판이나 조선일보 10월28일자 윤현옥 인터뷰를 참조할 것). 단지 나는 윤현옥이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하고 그 기획과 실천에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할 뿐이다. ●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나는 과천종합청사 부근의 한 공원에 설치된 윤현옥의 작품을 찾았다. 전시물은 과천주공 아파트가 재건축 단계에 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것들과 버려지는 것들을 소재로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부터는 설치된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관심사를 읽도록 한다.
아카이브적 기념탑 ● 윤현옥은 아파트의 철거와 함께 버려진 옷장의 문짝을 떼어다가 직조하여(pastched) 가로 와 세로가 5m×6m 쯤 되는 일종의 기념탑을 만들었다. 공원의 잘 다듬어진 파란 잔디와 조경수들 그리고 과천시와 캐나다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보다 권위있고 미적인 조형물을 마주하면서 세워진, 아파트철거에서 파생된 1970,80년대의 장롱을 소재로 한 일종의 민속학적 기념탑은 묘하게도 큰 거부감 없이 주변과 어우러져 있었다. ○ 그러나 윤현옥은 그 작품의 작가 혹은 저자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로랑 바르트 식으로 엄격히 하면 저자가 탄생되기 이전의 작업이거나 "저자의 죽음" 이후의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즉 저자(author)란 근대 사회가 개인의 인격이라는 것을 발견한 후에 생산된 주체성에 터한 현대적인 인물을 일컫기 때문이다. ● 저자가 나타나기 전의 민속학적인 사회에서는 예술가란 어떤 창작행위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발터 벤야민이 말한 이야기꾼(Erzahler)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현옥은 텍스트의 모든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존재인 저자라기보다는 철거되는 과천 주공아파트 한 주민으로써 버려진 장롱 문짝을 통하여 그 공동체 속에서 집단적 기억의 흔적을 보존하고, 시간과 공간의 얽힘으로서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철거되는 아파트는 불과 20여년전의 선진한국을 표상하는 계획도시의 산물이었고 버려진 장롱들은 그 아파트에서 신혼을 맞이했던 한국의 7,80년대의 신혼부부의 행복의 표상물이었다. 그의 장롱이라는 민속학적 이야기는 수신자 쪽에서 나름대로 해석되겠지만 나는 이를 위기의 표상체계에 대한 고발이라고 평하고 있다. ● 다른 한편에서 보면 저자란 서양의 근대가 만들어낸 주체, 즉 자신의 내면성을 가지고 있고, 원근법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를 상정한 뒤에 탄생된 주체의 다른 이름이라 할 때 윤현옥의 작품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바르트의 주체에 대한 비판적 해체의 논의를 관류한다. 실제로 그는 버려진 여러 조각들(pieces)을 모아놓았지 전통적 의미의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윤현옥의 작업은 작품(art object)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작품의 원본성에 도전하는 일종의 텍스트가 된다. 이때 윤현옥은 자신의 텍스트와 동시에 비로소 태어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따라서 바르트 식으로 표현하면 장롱문짝으로 직조된 그의 기념탑은 자신의 텍스트를 선행하거나 초과하는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의 작업에는 단지 언술행위의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윤현옥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주체라기보다는 단지 수행동사(performatif)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그의 작업은 단순한 기술(inscription)의 몸짓에 이끌려 기원이 없는 장을 그려 나가게 될 뿐이다.
흔히 논의되듯이 현대미술은 논리와 수행성의 양자 가운데 논리 즉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적 규범에 적합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대하여 후기현대미술은 이데올로기 적이기 보다는 차라리 헤게모니 적이거나 논리보다는 몸의 수행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는 논리중심주의나 남성중심주의와 같은 중심주의에 대한 강력한 항의이자 그 나름대로의 미세 정치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연장선에서 윤현옥의 또 다른 작업인 아파트 철거와 함께 용도가 폐기된 각종 프라스틱류의 생활용품들이나 어린이들의 노리개들, 화장도구, 장식품들로 구성된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기념탑을 주목하게 된다. 모조리 모조물로 이루어진 피라밋 구도를 한 이 작은 조형물은 장롱 기념탑보다 일견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에 상응하는 전통적 아우라를 철저히 제거하고 키치들 만의 잔치를 만듦으로서 일종의 비속개념을 작품에 도입한다. 비속(adjection)은 키치와 같이 평가절하 되었던 요소들을 독립적인 향유의 주체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탐색하면서부터 1990년대 미술의 중심화두로 떠오른 개념이다. 이 분야에서 처음 어브젝션 이론을 제공했던 페미니즘이론가 크리스테바(Julia Christeva)는 어브젝션이란 정체성, 체계,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고 경계, 명제(posit! itions), 규율 등을 무시하는 것이며 아울러 사이(in-between), 모호한 것, 혼성물(composite)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 이 같은 어브젝션 이론은 초현실주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바타이유에 의해 소개된 낮은 물질주의(base materialism)의 개념과도 상관된다. 이 개념은 서구근대의 몸/마음의 이원론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비속한 요소들의 탐색을 통하여 사회적 금기들에 대한 기존의 범주들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윤현옥의 이 같은 비속한 요소들이나 키치적 작품의 중요성은 그것이 비록 이전의 오브제 미술에 바탕을 둔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보수적인 지배문화에 의해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과거를 딛고 보수문화의 반열에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작품이 설치된 과천은 행정도시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보수적인 시민들의 성향을 감안 할 때 그 의미는 명확해진다. 또한 그가 의도하는 파행성은 시각중심주의에 갇혀있던 모더니즘의 미학적 미술을 해체시킨다는 미술내적 명분보다는 7,80년대의 우리의 자화상을 키치들로 이룩된 기념탑을 통하여 하나의 기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 한편 윤현옥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작업과정에 나타나는 놀이의 개념이다. 주지하는 대로 미적 형식주의가 최고조로 달한 모더니스트 회화작품은 놀이 개념이 철저하게 제거된 예술형태이다. 놀이란 호이징가(John Huizinga)의 견해를 따르면 인간의 근원적 활동형식이다. 그는 놀이란 인간생존과 관련있는 활동을 제외한 신체적, 정신적 활동인 만큼 삶의 이해관계를 떠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목적 활동이며 가장 자유스럽고 해방된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놀이는 질서에 의해 유지된 세계에서는 생길 수 없는 창조적 힘을 가지고 있다. ● 놀이는 열린 개념인 만큼 윤현옥의 작품에는 자발적 참여자들이 많다. 이번 작품도 계원대 학생들과 대진대, 용인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그의 놀이에 동참하였다. 심지어는 주민들이나 어린 학생들도 익명으로 그의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앞서도 그의 예술행위에 나타나는 헤게모니적 요소를 지적하였지만 그는 여럿을 모아 밑으로부터의 미학을 놀이 개념을 빌어 수행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이를 통한 작업은 헤게모니이론을 주창한 그람시가 지적하는 대로 지적인 행위와 결합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람시에 정통한 그는 놀이의 참여자를 작품을 통하여 다시 지적(organic intellectuals)으로 교육시키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가 헤어지면서 내게 던진 한마디는 "사실 나는 미술교육에 관심이 많아요"였다. ■ 엄기홍
* 전시장소를 찾아오시는 방법
- 지하철 4호선 과천종합청사역에서 걸어오실 경우 4번 출구로 나와서 2단지 아파트를 지나서 안양방향으로 도서관까지, 버스를 탈 경우 3번 출구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안양, 인덕원 방향으로 한 정거장 가서 2, 3단지 앞에 내려서, 가던 방향(안양)으로 조금 가다가 길을 두 번 건너서 도서관이 나올 때 까지 가서, 앞쪽의 에어드리공원 내의 놀이터 옆으로.
- 차로 오실 경우 서울에서 남태령을 넘어 관문 사거리 지하도로 직진해서 안양방향으로 가다가 과천에서 나오는 우합류 도로에서 우회전해서(이 코너에서 도서관이 잘 보임) 과천방향으로 오시다 보면 정보과학도서관(유리로 된 건물)이 보임, 도서관에 주차하고 공원으로..
- 과천정보과학도서관의 옆으로 본 전시의 소재, 주제가 된 주공아파트3단지 재건축 현장이 있습니다. 차로 오시거나 걸어서 오실 경우 이곳을 들러서 구경하고 오시면 좋습니다.
Vol.20050625d | 윤현옥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