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ist

홍성도 사진展   2005_0603 ▶ 2005_0617

홍성도展_tourist_갤러리 인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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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3_금요일_05:00pm

갤러리 인 서울 종로구 팔판동 141번지 Tel. 02_732_4677 www.galleryihn.com

홍성도의 「관광객」시리즈, 그리고 시간의 발명 ● 홍성도의 작업은 사진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여기에 '조각적 차원'을 개입시키는 특이한 시도를 해 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진을 읽는 주체를 단지 '대상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수동적으로 해독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사진들을 역동적으로 '재-발명'해 나가면서 읽는 주체로 드러나게 한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 그가 보여주는 「관광객」(Tourist) 시리즈는 모두 네팔,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와 장소를 여행하며 찍은 '여행사진'들이고 때로는 거리의 흔한 상점이나 자동차의 쇼룸 등, 특별한 이국적 흥미꺼리와는 거리가 있는 대상을 찍은 사진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지나친 장소를 순간적으로 기록한 스냅샷 정도의 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에 대해 가해진 변형들을 주목하게 되면, 이들은 더 이상 관광객이 찍은 이국적 풍경사진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보여진 내용'(관광지의 이미지) 속에 '보고있는 상황성'(주체의 현존)을 경험케 하는 장치가 동시에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술적 구조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특정 장소, 예를 들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촬영한 다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같은 지점(혹은 인물)을 촬영한다. 그리고 그 두번째 사진에 있어 새로운 차이가 발생한 부분을 오려서 첫번째 사진의 그 해당 부분에 콜라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그 콜라쥬는 정밀하고 말끔히 삽입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오려내어지고 구겨진 채 리벳으로 고정되며, 이를 통해 그 입체적인 콜라쥬의 과정이 강하게 남게 된다.

홍성도_tourist_투명아크릴, 알루미늄, 사진_160×240cm_2005
홍성도_tourist_투명아크릴, 알루미늄, 사진_160×240cm_2005
홍성도_tourist_투명아크릴, 알루미늄, 사진_각 120×180cm×3_2005

여기서 시공간 혹은 바라보는 시점은 일종의 급격한 도약을 수행하게 된다. 그 도약은 이 혼성적 사진 속에 존재하는서로 다른 시간들(시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도약으로서, 이는 과격한 단절이며 동시에 양자 사이를 오가는 역동적 운동이다. 이러한 혼성성과 단절은 사진 속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의 단일성에, 그리고 이러한 단일성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우리의 통합적이고 안정된 주체'라는 믿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혼성적이고 분열적인 시공간은, 사진 내적인 시간('과거 그 어느 때의 모습'이라고 하는 서사적 시간, 갇혀진 시간)을 사진과 주체 사이에서 새롭게 '충격'을 가지고 발생하는 '현존적 시간'의 경험으로 변환시킨다. 즉 이 시점과 저 시점의 혼성적 시점을 동시에 소유하게 되는, 사진과 주체 사이의 역동적이고 실존적인 시간 말이다.

홍성도_tourist_투명아크릴, 알루미늄, 사진_60×80cm_2005
홍성도_tourist_투명아크릴, 알루미늄, 사진_90×135cm_2005
홍성도展_tourist_갤러리 인_2005

이와 유사한 다른 사례를 들자면, 우리는 마르셀 뒤샹의 작품인 With my tongue in my cheek(내 혀를 볼 안에 넣고, 1959)라는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옆 얼굴 모습을 실물과 같은 크기의 드로잉으로 그린 후, 자신의 볼 부분 만은 석고로 실물 캐스팅해서 드로잉 속에 그려진 볼 부분에 정확히 일치시켜 부착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은 평면적 재현과 입체적 조각의 양상을 동시에 가짐으로서,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과 시간의 단일성을 와해시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바라보는 주체의 비정형적 상태'라 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정형적 상태로부터 분출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분열된 상태를 지속적으로 통합시키고 분열시키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일종의 역동적 정지상태, 그럼으로써 "임의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재현 이미지와 입체적 실물의 혼성적 결합의 공간을 '여행'하는 우리의 신체적 현존인 것이다. ●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관광'의 활동은 사진으로 찍힌 과거의 풍경 속에서 종료되고 기념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이 관광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이 바로 지금 새삼스럽게 다시 창조해내는 일종의 "추가적 여행활동"이 된다. 그 여행은 바로 시간을 발명하는 작업이 되며, 또 역으로 그러한 시간의 의미는 맹목적인 발명과 창조 이외에는 아무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마치 다음과 같은 베르그슨(Bergson)의 말처럼 - "시간이란 단지 '발명'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김원방

Vol.20050621b | 홍성도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