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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미량_김경미_김묘빈_김연신_김윤아_김은영_김현정_김혜진_박아란_서호성_손소영_심혜진 오정선_윤은미_윤정숙_이정민_이진영_이해은_이현수_이혜연_임현진_주현정_최승온_노예영
성신여자대학교 수정관 전시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249-1번지 Tel. 02_920_7248 www.sungshin.ac.kr/western
1. 마음과 위장색 들춰보기 ● 회화가 '시각을 마음에 전달하는 한 방법'이라면 역으로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시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 특히 젊은 시각 이미지 생산자들에게 있어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이며 지금 이 시각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요상한 생명체인 까닭에 마음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과제이다. 더욱이 이제 막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알려고 하는 젊은 작가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카멜레온보다도 더 많은 위장색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마인드스코프_MINDSCOPE』展은 망원경(telescope)과 현미경(microscope)에서 이름을 따왔다. 우리말로는 '마음 들쳐보기' 또는 '심경_心鏡' 정도가 될 것이다. '마인드스코프'는 망원경처럼 멀리 볼 필요도 없으며, 현미경처럼 프레파라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마인드스코프'에는 '시간 ' 또는 '시제'라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마음인지, 현재의 마음인지, 아니면 미래의 마음인지가 관건이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누구의 마음인지가 더 앞설 것이지만 말이다. 이를 어렵게 한동안 유행했던 '응시'의 개념으로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마인드스코프_MINDSCOPE』展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응시'가 아니라 '관찰'에 더 가깝다는 것만 밝히고자 한다.
젊은 작가들의 마음 또는 위장색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관찰자 뿐만 아니라 해당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위장색이 적합한지를 알고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 까닭이다. 황량한 사막에 들어온 카멜레온이 화려하게 즐기던 꽃주변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울긋불긋하게 위장색을 취했을 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위장색은 아직 젊고 꿈이 많은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커다란 힘이다. 이미 세상을 다 살았다는 마음에서 위장이라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삶의 짐일 뿐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닌 이들에게 위장색은 삶의 활력이며 존재의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로또를 비롯하여 즉석복권까지 이를 사려는 사람들은 꿈이 있는 젊은이들이라고 결코 꿈이 없는 이들은 복권을 사지 않는다. 그래서 금요일마다 로또방이 붐비며, 복권가게 근처 벽에는 동전으로 꿈을 긁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것은 복권보다도 더 많은 꿈을 필요로 한다. 혹자에게는 중요한 것은 복권 당첨액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이야기 하려는 것은 당당하게 복권을 긁어대는 꿀꿀하지 않은 꿈을 지닌 마음인 까닭이다.
2. 『마인드스코프_MINDSCOPE』展의 짜임●『마인드스코프_MINDSCOPE』展에 출품한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략 다섯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우선 첫 번째로는 대상의 재현에 충실하면서 회화적 일루전을 추구하는 작업으로 김연신, 이정민, 이현수, 손소영을 들 수 있겠다. 김연신은 경쾌한 수채화 기법으로 연꽃잎이 가득찬 연못을 그린다. 이전에는 화면을 빽빽하게 채워나갔으나 요사이 여백을 주는 방법에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정민은 커다란 화면에 작은 사물들을 확대하는 작업으로 '얼굴화된 단편'적 모습을 모노크롬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법으로는 붓터치가 보이지 않는 탄탄한 붓질로 미시적 색채 원근법에 탐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현수는 자연물인 토마토, 키위 등 과일의 절단면을 커다란 캔버스에 화려한 색채로 확대하는 작업을 한다. 확대한 만큼 그 이미지들은 더 괴기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더 다채롭게 보여지기도 하는 회화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손소영은 눈앞에 걸려진 빨래줄의 빨래집게와 그 뒤에 보이는 건물풍경을 그리고 있다. 화려한 색채의 빨래집게와 일상적인 풍경에 매료된 것 같다.
두 번째 경향으로는 다소 거칠지만 심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업으로 김묘빈, 김윤아, 김현정, 심혜진, 윤은미, 이혜연, 최승온, 이해은이 있다. 김묘빈은 망사천과 나무처럼 거친 바탕에 먹물 등으로 인물을 그리는 작업을 한다. 다소 암울하거나 괴기스러운 인물들은 그려지는 호흡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붓터치들로 구성된다. 인물의 재현보다는 형식실험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윤아는 자신의 나이때에 느끼는 여러 고민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아바타 아이템 바꾸기 또는 인형 옷갈아 입히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경쾌한 색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화려하지만 다소 불안한 젊음을 그려내고 있다. 김현정의 작업은 소꼽놀이 도구 또는 부엌의 살림살이처럼 무척 애착이 가는 사물 또는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한땀한땀 바느질된 사물의 테두리들은 섬세한 드로잉과 같은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심혜진은 자신의 침실을 무대로 등장하는 여러 잡념들을 앙증맞은 두 마리의 벌레들로 형상화하였다. 파스텔조의 몽상적인 화면에 두 가지 생각들이 노닐고 있다. 윤은미는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작품의 바탕이 되는 뇌는 강물처럼 골이 깊게 파여 있으며 이로부터 연결된 파란인간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이혜연은 여행풍경 시리즈를 심상적 드로잉으로 그려내었다.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라서 낯익어 보이는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익명의 인물들이 서성이고 있다. 최승온은 대지 또는 피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여 생멸하는 두터운 층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표현적인 거친 붓터치로 때로는 얌전한 패턴 드로잉으로 그려진 작품들에서 회화의 다양한 층위에 대한 개인적 모색이 엿보인다. 이해은은 감각적인 붓터치 드로잉으로 너저분한 옷가지가 걸려있는 의자가 놓인 방안과 복잡한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변화무쌍한 색채 드로잉으로 고정된 사물에서 유추해낸 유동적인 감각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세 번째 부류로 의식적인 회화로서 구조 또는 일상을 도해하는 김은영, 김혜진, 노예영, 박아란을 들 수 있다. 김은영은 가상의 건축물을 캔버스에 구축하는 작업을 한다. 설계도나 조감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김혜진은 스냅사진처럼 잡아낸 거리의 일상을 작은 색채 드로잉으로 나열하는 작업을 한다. 드로잉만큼 가벼운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간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노예영은 탄탄한 구조에 대한 이해와 묘사력으로 거리에서 읽혀지는 복잡한 현대인의 일상을 구축한다. 무수히 많은 익명들에 의해 얽히고설킨 갖가지 이야기들이 때로는 너무나 단조롭게도 보이는 도시의 삶을 그려내려 하는 것 같다. 박아란이 담아낸 일상에서는 화려한 색채와 광고판 글귀 같은 이미지들이 과감하게 들어와 있다. 다소 당돌하게 보이는 화폭에서는 소비사회의 이미지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네 번째로 섬세한 붓놀림으로 초현실주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회화작업으로 김경미, 윤정숙, 임현진을 있다. 김경미는 생경한 배경에 놓여진 일상의 사물들을 그리는데 이는 초자연적인 구성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초현실주의가 꿈과 관련된다면 그의 회화는 좀더 일상에 다가와 있다는 생각이다. 윤정숙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생뚱맞은 의자를 평면에 사실적으로 구현해낸다. 이 가상의 의자를 화폭에 배치시키기 위한 여러 모색들이 엿보인다. 임현진은 넓고 푸른 대지와 무한한 하늘처럼 자연을 대표하는 대상에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한다.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의 자연을 넘어서는 자연은 다소 경외스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마지막 경향으로 그려진 대상보다는 그려진 상태 그 자체 또는 재배치된 사물에 관심을 갖는 형식실험 작업군으로 서호성, 오정선, 이진영, 주현정, 고미량이 있다. 서호성은 열정적인 색채와 마티에르로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특히 무채색에 가까운 거친 바탕에 검은색과 붉은색 그리고 또 흰색으로 구성된 화면에는 커다란 지문이 찍혀져 화면의 균형을 돕고 있다. 오정선은 바탕천에 거칠게 뿌려진 안료작업으로 행위 또는 호흡에 관한 작업을 보여준다. 무엇을 그린다기보다는 그려지는 과정 또는 환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진영은 밝고 경쾌한 색채대비를 활용하여 화면을 재구성한다. 넓은 색면과 간결한 드로잉이 교차하면서 회화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것 같다. 주현정은 식물이미지들로 조그마한 타일을 만든 후 이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한다. 커다랗게 접합된 이미지들은 굳이 그려진 대상에 구애받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고미량은 호치키스 스테이플을 부식시키고 접합하여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층층이 쌓여진 구조물과 부식된 색채들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현대사회에 있어서 시간과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3. 꿈을 드러내는 당당함 ● 예술의 목적을 '인간개성실현'이리고 하자. 그렇다면 시각 이미지 생산자는 '어떤 내용이 담겨진 시각물로서 인간개성을 실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이를 '나 잘났다'로 설명하였다면 요사이는 '나 별났다'로 이해된다. '나 잘났다'는 것은 우열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혹자의 개성실현이 여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억압 또는 좌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나 별났다'는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는 것으로 수직보다는 수평감각이 더 의존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마음을 시각으로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 이 개념은 무척 중요하다. 예술이라는 지형에서 자신의 꿈도 중요하지만 남들의 꿈도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저 다르다는 차이일 뿐이다.
과거 현대미술이 취해왔던 '나 잘났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보자면 과거 또는 주변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존재이유였다. 심지어 예술이 남의 삶까지 관여하며 지도하려 들었다. 자신의 삶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아버지만 탓하고 친구들만 미워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얻은 것은 창백해진 화폭이었고 잃은 것은 꿈이라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남한의 젊은 작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생은 어둡게 살기에는 너무 짧고 젊음은 눈부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신의 꿈을 남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는 당당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슬프면 찌질이처럼 울어도 보고 기쁘면 기쁘다고 해맑게 웃어도 보자. 그리고 화가날 때는 무섭게 대들어도 보자. 물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될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표현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이 『마인드스코프_MINDSCOPE』展의 처방이자 취지인 까닭이다. ■ 최금수
Vol.20050612b | 마인드스코프_MINDSCOP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