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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신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런 생각부터가 사실은 있는 그대로일수 없는 것이 아닌지. 바라봄은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식의 작용이니, 이것은 자의적인 관점으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사물보기가 그것과 교감하는데 있어 방해가 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한 의문은 대상과의 '거리두기'에서 풀고자 했으며, 여기서 거리두기는 훈련된 원근법적 시선과 대상에 대한 물성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 대상의 의미, 즉, 기능이나 존재 이유, 가치, 성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 멀리 공장을 보았으나 무엇을 보았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나는 그때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던져야했던 것이다. '저 멀리'라는 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대상의 존재감이었다.
존재감은 내가 그 대상과 교감하고 그것을 알아갈수록 커지는 반면 실제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마치 터널 안에 있을 때 죄어오는 공간자체의 존재감은 극대화되는 반면에, 그 공간 안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감각은 무뎌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러한 존재감에 주목했고 작업말미로 감에 따라 공장의 이미지는 점점 희미해지다 결국엔 없어진다. 상실된 대상을 대체하는 것은 그것의 기운이었다.
기운은 대상이었던 공장과 주변, 그리고 나까지 어우러지게 할 뿐 아니라 고정되지 않고 감싸고 흘렀다. 또한 그것은 대상이 일방적인 내 시선에서 의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견제했다. 기운은 물 한가운데 돌을 던졌을 때 생기는 파장과 유사하게 드러난다. 서로 다른 파장은 대상이 놓여있는 저 멀리 수평선에서 맞닿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땅의 파장과 하늘의 파장이 대상을 감싸며 맞닿았을 때, 각각의 파장은 부딪쳐 서로를 상쇄시키거나 또는 모호하게 중화되어 섞인다. 이러한 파장은 내가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만큼 진동했다.
이렇게 파장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기운은 나와 대상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또한 분명할 수 없는 여지이기도 했다. 여지는 나의 고정된 시선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대상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해주고 지속적인 몰입의 시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여지는 대상에 대한 고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저 멀리'를 고려한 거리 두기를 통해 드러난다. ■ 최고야
Vol.20050607a | 최고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