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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_05:00pm
갤러리 온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지하1층 Tel. 02_733_8295 www.galleryon.co.kr
박세영 - 도시의 밤, 서핑스케이프 ● 우리는 매일 습관적으로 길을 떠난다. 일상은 여러 갈래의 길들로 직조되어있다. 일상의 삶은 반복되는 여행과 동일하다. 익숙한 풍경, 공간을 소요하고 그 안에서 삶을 이루고 자신만의 기억 속에서 일상의 여정을 행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행하는 이 일상의 여정은 공간의 기억과 긴밀하게 관련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한 올의 섬유'다. ● 사진 속 장면은 늦은 밤 도시 풍경, 특히 상점의 창에 비치거나 반사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인적이 사라진, 더없이 적조하고 한가로운 시간이다. 엄습한 어둠과 낮 시간대의 소음과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자리한 적막이 고막에서 맴돌 때 작가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시간대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드물다. 가끔 도둑고양이들이 그림자를 끌고 우아하게 지나다가 홀연 사라져버리는가 하면 아주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행인들이나 취기가 오른 술꾼들의 흐느적거림만이 가로등 아래서 그림자 연극처럼 스칠 것이다. 이때 살아남은 이미지란 반사된 조명, 네온, 불빛 그리고 창가에 어른거리는 자신의 잔영 같은 것들뿐이다. 결국 나 혼자만이 이 시간, 이 공간에서 고립무원으로 남아있음을 절감한다. 그는 거리를 거닐었다. 이미 충분히 익숙하고 낯익은 장소이지만 모두가 사라지자 유령 같은 밤의 도시는 이상한 비현실감과 공허를 안개처럼 피워 올린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니라 상가건물의 유리창들이다. 캄캄한 실내를 죽음처럼 가둬놓고 유리는 침묵 속에서 조명등과 네온, 차 헤드라이트에 의해 반짝이고 번지다가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을 받아준다. 작가는 문득 유리창에 비친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상가건물의 창은 안과 밖을 동시에 비춰낸다. 그러자 이 기이한 통로, 창문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가로질러 놓여있는 다리 같다. 자신의 시선 앞에서 갑자기 이곳과 저곳이 동시에 겹쳐지는 장면은 환각처럼 다가온다. 이차적인 시선, 혹은 몇 차례 굴곡진 시선들로 바라본 풍경이다.
본다는 것은 모든 경험의 문이자 사고의 근원이며 안다는 것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과 연루되어 있다. 공간은 여러 가지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거기에서 존재들은 서로간의 작용과 반작용이 기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가 된다. 바르트는 어떠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도책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직접 그 공간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도시란 단순한 건축적 공간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텍스트로서의 공간이다. 그래서 공간은 텍스트로 읽힌다. 텍스트로서의 공간은 그 장소의 또 다른 모습을 읽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도시 공간은 단순히 건축학적 시각만으로 보여 지는 것이 아닌, 도시가 지닌 모든 흔적들이 발화하는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이 담겨진 일종의 기호적 공간이 된다. 도시 풍경은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움직이며 체험하는 경험의 공간을 말한다. 그러니까 풍경이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최초의 문화적 공간에 다름 아니다. ● 박세영의 사진은 밤풍경인데 그 공간에 직접 들어가서 소요하는 자의 체험을, 자신의 시선으로 마치 서핑하듯이 도시의 밤풍경을 유영한 기억들이다. 이른바 이 '서핑스케이프'는 영상매체를 통해, 카메라 렌즈와 자신의 신체의 눈이 일치한 상태에서 자신이 본 세상풍경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차갑고 서늘한 색감으로 물든 도시의 밤은 낮의 번성함을 죄다 죽이고 가라앉히고 다만 유리 창문, 진열대, 조명과 마네킹, 신발과 걸려있는 옷, 상품들, 간판과 사진포스터, 십자가, 가로수와 자동차 뒤편 등을 여러 겹으로 흔들리며 보여준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사람이 부재하고 모든 자본주의의 교환과 거래가 그친 시간, 공간에서 작가는 문득 찾아온 해방감과 함께 자기 혼자만의 시간,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아 나선다. 그는 밤의 산책자가 되어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밤은 낮 시간대의 모든 규제와 위선,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기 연출, 시선의 교차에서 비로소 풀려난 자유로움을 만나는 시간이자 순수의 시간, 자기 혼자만의 세상과 만나게 한다. 이 밤풍경의 외부는 내부가 스스로를 비추러 오는 거울이 되었다.
밤의 도시를 소요하다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 몇 겹으로 중첩된 창에 비친 풍경은 낮에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밤에는 보이는 장면이며 누구에게나 다 보이긴 하지만 애써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또한 간과되어 버리는 모습들이다. 사실 창에 비치는 몇 겹으로 부풀어 오르고 흐르는 이미지는 자신이 발견하고 만들어서 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틈에 투영된 이미지를 통해 자신이 자아를 찾아가는 틈, 다른 차원으로 갈 수도 있는 틈, 못가는 틈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그 창문은 마치 엘리스의 거울 같기도 하다. 작가는 그 이미지 앞에서 문득 무언가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도 잘 모르는 자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 역시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알고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선다. 거울에 비친, 창에 번지는 풍경은 자신의 뒤에 존재하는 장면이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이 아닌 자기 뒷면에 있는, 존재하는 장면이 비추어진 것이다. 나는 창을 통해서만, 반사면을 통해서만 그 세계를 본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이미지는 왜곡되고 흐르고 유동한다. 거울 속에서 모든 상들은 왼쪽으로 전도되어 있다. 거울 속에서 익숙한 현실 풍경은 뒤집혀 다가온다. 몽환적이면서도 애매한 상들이 아른거리는 장면 앞에서 작가는 무의식중에 자아를 본다. 만난다. ● 사진은 다소 짙고 축축하며 어두운 색채로 적셔져있다. 모든 이미지는 애매하다. 짙은 그림자 같은 형상들이 먹처럼 번져있고 그 어딘가에 조명, 광선이 떨고 있으며 창 앞의 풍경들이 하릴없이 비춰진다. 보는 이들은 이 양쪽의 세계를 동시에 본다. 앞과 뒤가 공존하는 세계! 그 세계 사이에 끼여 있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이곳과 저곳, 그 사이에서 다만 떠돌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박세영의 사진은 인적 없는 도시의 밤풍경을 서핑하듯 소요하다가 문득 그 앞에서 홀로 되뇌는 독백과 물음, 그것이다. ■ 박영택
Vol.20050601b | 박세영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