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배열로 이루어진 사물

전영근 회화展   2005_0520 ▶ 2005_0609

전영근_정물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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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20_금요일_06:3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www.songeun.or.kr

전영근 - 관계의 배열로 이루어진 사물 ● 전영근이 그린 정물은 개인의 생활상이고 고스란히 저장된 기물들이다. 카세트 라이오, 몇 권의 책(사전), 작은 텔레비전, 재떨이와 담배, 그리고 주전자와 작은 거울, 칫솔과 두루마리 휴지 등이 그것이다. 소박하고 누추한 살림살이가 적나라하게 배어있는가 하면 자취생의 서글픈 삶의 이력이 감촉될 것도 같다. 분명 학생일 것 같고 고행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남자의 방일 것 같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물들 역시 정물의 빈번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것을 한데 모아서 정물화로 그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그는 찬찬히 자기 주변의 사물들을 바라보고 그것들을 생각하는 데서 작업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는 사물들을 사용하고 그것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그것들 사이를 여행한다. 그 사물들은 모두 친근하고 편안하다. 사물들은 거기에 있지만, 고요하고 닫혀있다. 그것들은 움직이거나 ej들거나 귀찮게 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말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완전한 무관심으로 그저 그렇게 놓여있을 뿐이다. 두루마리 휴지나 칫솔로부터 어떠한 생각도 이끌어낼 수는 없다. ● 우리의 의지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실재들을 흔히 사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칸트는 "나의 사유는 사물들에게 그 어떤 필연성도 강요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들이 늘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된다는 점에 사물들의 본질적인 모습이 놓여있다. 모든 사물들은 인간이 몸에 맞고 몸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책이나 병, 사발 등은 우리들의 손과 입술에 딱 맞게 만들어졌다. 오직 인류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물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끝없이 과도하게 넘치는 충만한 사물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 전영근은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자기 육체와 함께 하고 있는 사물들을 그렸다. 오로지 사물들만이 공허롭고 적막한 공간을 배경으로 놓여있다. 그 사물들은 작가의 기억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며 동시에 자기 몸의 확장이자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전영근_두개의소파_캔버스에 유채_80×145cm_2004
전영근_소파_캔버스에 유채_60×72cm_2004

"네 앞에 사물들이 있다. 단단하고 서로 구분되며 무게가 나가는 그것들이 여기 있다... 나의 몸은 그것들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것들이 언제나 존재하고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곳에서 죽을 것이다. 결국 이것이 나를 세상과 묶는 사슬인 듯 하다. 그런데 이 사물들은 무엇일까?" - 장 투생 드상티

전영근_정물 Ⅰ_캔버스에 유채_53×45cm_2004_왼쪽

전영근_정물 Ⅱ_캔버스에 유채_53×45cm_2004_오른쪽

전영근_정물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4

전영근은 사물들을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데 있어 간직하고 있는 마음 몇가지를 말한다. 우선 그림이 한국적이어야 한단다. 다음으로 삶이 묻어 있어야 되며 기존의 정물화와는 차별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한단다. 나로서는 뭉뚱그려 '인간적인 정물', '관습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사물'로 요약해본다. ● 그의 그림은 기존의 정물화와는 달리 상투적인 소재, 회화기법이 지워지고 단촐하게 기물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한 화면에서 풍기는 묘한 적조감, 기이한 비일상적 분위기, 그러면서도 권태롭고 고독하고 자의식이 물씬 묻어나는, 그러면서 마치 누군가의 방을 몰래 엿보고 있다는 설레임이 있다. 형상은 다소 어눌해 보이면서 소박하게 그려져 있고 그로 인해 부드럽고 여유로운 재미 같은 것이 살아난다. 자신의 캐릭터화 된 기물의 표현은 곧 독창성으로 가 닿는다. ● 그 다음으로는 전체적인 색조가 부드럽고 애매한 무채색 계열로 그득하고 그래서 마치 진공상태나 탁한 기운에 가려진 공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비근한 일상 사물을 낯설고 비현실감이 감돌게 한다. 막막하고 아늑한 시간의 정지상태가 흐르고 공허로움이 살을 섞는 야릇한 분위기는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우울하면서도 차분하고 그러면서도 묘한 활력이 감지되는 상황성! ●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물들을 바라보는 일은 그 사물과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을 가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나란 존재는 바로 저 사물들과 함께 살고 죽는다. 책을 보고 담배를 피우고 거울을 바라보는 일, 두루마리 휴지가 있고 재떨이과 컵, 그리고 구부러지고 닳은 부위를 간직한 칫솔과 작은 커피 잔은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투영이자 한 개인의 생애가 층층히 쌓여있다. 기억과 시간의 퇴적물로서의 정물화다. 모든 사물은 인간의 척도다.

전영근_정물 Ⅰ_캔버스에 유채_76×60cm_2004

전영근_정물 Ⅱ_캔버스에 유채_76×60cm_2004 전영근_정물 Ⅲ_캔버스에 유채_76×60cm_2004

전영근_휴가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04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굵고 수평으로 자리한 붓질이다. 사물을 지시하고 재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색상과 붓질이 아니라 전체적인 정황, 심리의 막을 두루는 데 쓰이는 색상와 그 분위기를 고조하거나 베일링 하거나 촉각화 하는데 사용되는 붓질이다. 그것은 사물의 피부를 덮는 듯하다가 바탕과 외곽, 여백처리에 동원되고 다시 부분적으로만 사물을 지시하는 사이에서 왕복하고 유동한다. 수평으로 일률적인 리듬을 보여주는 이 물결 같은 붓질은 시선과 심리를 유인하고 매우 회화적인 느낌을 고조한다. 수직성을 눕히는 수평의 붓질은 직립한 인간의 붓질 사용과 시선을 휴식하게 한다. 그것은 eh한 시간의 경과나 요란스러움, 부박스러움을 지우고 차분하고 내밀한 표현으로 가라앉힌다. 그림자나 극적인 광선 역시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시간은 정지되고 깊은 침묵만이 흐르는 것 같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모노톤이었다가 어떤 부분에서만 칼라가 쓰이고 있고 이에 따라 특정 부분이 슬그머니 강조된다. ● 차분하고 적조하지만 매력을 지닌 작가의 이 정물은 '의인화된 정물'이다. 그는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배열을 달리하면서 그 배열의 차이가 자아내는 심리의 공명에 주목한다. 약간씩 떨어져 있거나 한데 모여 있는가 하면 화면 하단에 바짝 붙어서 상단이 시원하게 보이다가 어떤 것은 상단에 바짝 올려붙여서 상대적으로 하단을 시원하게 보이게 하는 식이다. 소파위에 가방을 올려놓거나 소파 아래 기물들을 감춰두는가 하면 기물들을 층층이 쌓아두거나 포개어 둔다. 모든 사물들은 우연적인 만남과 그렇게 해서 연출된 상황에 의존해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상황 아래 재편되고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그는 모든 관계의 함수를 고안하는 수학자 같다. 우리네 삶도 비슷비슷한 여러 상황 아래 살아간다. 전적으로 새로움이란 없다. 있다면 새로워보이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관계의 미학으로 보이는 이 정물은 다름 아니라 우리네 삶을 은유하고 있다. 무수한 관계의 망으로 얽히고 설킨, 그러면서도 더없이 쿨하고 적조한 삶 말이다. ■ 박영택

Vol.20050528a | 전영근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