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525_수요일_06:00pm
협찬_LG화학 건재사업부
갤러리 올 서울 종로구 안국동 1번지 Tel. 02_720_0054
한 아이가 앉아 즐겁게 놀고 있다. / 한 아이가 창을 들고 앉아 있다. / 아이가 아니었다. 한 아이는 ● "S"가 앉아 있는 곳은 모호한 공간이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꿈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어져 있다. 그것이 꿈이든 현실이든 분명 이 아이는 나와 대화가 썩 잘 될 것 같지 않다. 일단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어렵고, 접근하기 애매한 표정, 웅크리고 돌아앉은 뒷모습, 부서지고 찢긴 꽃잎을 선택한 취향, 심지어 창까지 들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의 짧고 순간적인 생각이며 지금부터는 "S"의 속마음을 보자. ● '나는 잠시의 외출이 즐겁기도 하지만 지금껏 내 마음 닿는 곳마다 통증에 시달려왔다. 그런 내가 사회와 마주보기 위해 모처럼 밖을 나왔으나 역시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스스로 격리되어 있다. 나는 외롭지만 스스로의 격리를 즐기련다.' ● 작가 최수임은 극단적인 경계선 장애를 갖고 있는 "S"를 통해 삶의 양면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양면성과 모순이 삶의 원리가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란 쉽지 않는데, 작가는 이를 경계선 인격 장애를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경계선 인격 장애란 정상과 비정상, 이상과 현실, 주변(타자)과 자신에 대한 경계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장애인데, 이것은 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이 조금씩 앓고 있다. "S"를 통해 우리는 극단적인 경계선 장애를 마주한다. 풍만한 모습과는 달리 차림새가 그저 아이인 "S"는 사회나 환경 또는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지속적인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그려진다. 사회적 나이에 비해 천진한 모습과는 달리 드러난 행동은 공격적이고 돌발적이며, 이기적이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혼자 있는 것을 피하고자 대인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적극적이지만 상대가 거부하게 되면 그 긴장이 심해지면서 충동적으로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듯, 주인공도 정형화 될 수 없는 공간에 앉아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창을 들고 방어막을 준비해둔다. 작가 최수임은 스스로의 경계를 흐리고 사회에 나름대로 잘 동화되어 산다고 생각하는 관람객들에게 이러한 인간의 극단적이고 대립된 양면성을 보여주면서 통합되지 못한 삶의 경계지점을 환기시킨다. 사람과 사람사이, 꿈과 현실사이의 경계에서 우리는 늘 부유하고 있음을 말이다.
거울속의 나는 즐겁다. / 거울속의 나는 역겹다. / 놀이는 끝났다. 이젠 나가야 할 ... ● 아까 만난 익숙한 "S" 가 거울 앞에 서 있다. 거울 속엔 나도 있다. 그런데 "S" 는 나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입술을 쭉 내민 표정이 불만에 가득하다. 도무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아이다. ● '나는 지금 가장 즐거운 놀이중이다. 사회생활이 힘들면 힘들수록 리모컨 놀이를 즐긴다. 거울 앞에 서서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나의 변신은 자유롭다. 누군가 잠시 다녀간 것 같지만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마치 독백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전시는 작가자신("S")이 직접 출연하여 S자 곡선과도 같은 삶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전시장 곳곳에 모순이 삶의 원리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오브제를 놓아둔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신체, 희비가 교차된 표정, 자위적 행동의 자학적 표현을 통해 인간 삶의 양면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생의 찬란한 기쁨 뒤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S"를 통해 희망과 환희 뒤의 절망과 고독을 눈으로 확인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독백과도 같은 인물상 "S" 만으로 복잡 미묘한 삶의 양면성을 표현하기가 불가능 하다. 사실 작가는 관람객에게 "S" 가 귀엽게 보이든, 괴기스럽게 보이든, 삶의 양면성을 찾아내든, 찾아내지 못하든 상관없다고 한다. 어차피 임의적인 삶에 강요란 없기 때문이다. 평소 경계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어느 한편에 치우친 보여짐을 싫어했으며 이렇게 선택된 주제가 삶의 양면성이다. ● 지금부터 경계에 선 관람객은 어떠한 강요도 없이 보는 대로 느끼면 된다. ■ 서지형
Vol.20050525d | 최수임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