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찾아서

김선규 사진展   2005_0517 ▶ 2005_0522

김선규_목마른 참새_컬러인화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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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17_화요일_06:00pm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그들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생명, 그 아름다운 몸부림 ●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마감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시내에서 차가 꽉 막혀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차에서 내려 부지런히 걸어보지만 북적이는 거리에서 사람들 어깨만 부딪힐 뿐이었다. 뛰어도 보았지만 이미 마감은 물 건너 간지 오래였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건데, 일이 많아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넓어질수록 '행복'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갈길만 바쁘게 갈 뿐이었다.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끄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공원에는 따뜻한 오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무가지마다 아기손같은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제비꽃과 민들레가 환하게 피어있었다. 벚꽃이 분분히 휘날리는 경희궁 한켠에 참새 다섯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멀거니 앉아서 보고 있는데, 신나게 놀던 참새 한 마리가 목이 마른지 수돗가를 기웃거렸다. 수도꼭지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 참새가 귀여워서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방울아, 제발 떨어져다오!' 살다보면 종종 마술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꼭꼭 잠겨 있던 수도꼭지에서 물 한방울이 떨어졌고, 참새는 날렵하게 날아올라 물을 마셨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참새의 동작 하나 하나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빨려 들어왔다.

김선규_밀짚모자 속의 행복_컬러인화_2005
김선규_밤섬 집오리꿈_컬러인화_2005

늘 오가던 길인데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문득 만난 것이다.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 구석구석에도 작은 생명들은 제 모습대로 살고 있었다. 회색의 도시에서 마음마저 굳게 닫은 인간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자연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한한 기쁨과 평화를 주는지 잊고서, 스스로 마음의 여유도 포기한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존재마저 잊고 지나쳐왔지만,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본래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 자신도 삶의 의욕으로 충만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나누고 싶어 신문지면을 빌어 '생명을 찾아서'를 연재하게 되었다.

김선규_보리피리_컬러인화_2005
김선규_생명을 찾아서(물속단풍)_컬러인화_2005

이렇게 해서 시작한 '생명을 찾아서'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시내 거리 한복판에서, 산과 들에서, 때로는 낡고 허물어져 가는 고향집 마당까지 구석구석 살피며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자연의 친구들을 만났다. 차를 타고 사건 현장을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면서 마주치는 생명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그들을 담아내기 위해 몸을 숙이고 카메라를 낮춰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세상은 참 달라보였다. 사람의 눈높이가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본 세상은 더 이상 사람들만의 세상은 아니었다. ● 세상이 궁금한 듯 콘크리트 갈라진 틈새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 산란을 위해 산더미 같은 수중보를 뛰어 오르는 잉어, 게걸스레 짬뽕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비둘기,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들에게 세상을 열어주려는 유혈목이등... 어떤 형식으로든 우리와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그들은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삶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김선규_얼음속 새싹_컬러인화_2005
김선규_중랑천 잉어의 꿈_컬러인화_2005

생명을 찾아 나서면서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무심코 길거리를 지나칠 때에도 눈은 시멘트 바닥에 돋아난 풀 한포기, 매연을 잔뜩 뒤집어 썼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연둣빛 새순을 더듬는다. 그들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빛이 따스해진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사진작업이 다시 다시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생명' 덕분이었다. '생명'이란 장중한 주제앞에 머뭇거릴때 많은 분들이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천금같은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함께 해 주었다. 그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비로소 책과 전시는 '온전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지금 이순간도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최선을 다하며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김선규

Vol.20050517a | 김선규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