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511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2층 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2층 Tel. 02_734_1333
우리가 일상 속에서 조형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들이 표현되어져 있기 때문이고, 작가가 조형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은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형예술은 각종 '표현'을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활동이다. 일찍이 쏘크라테스는 정신적 내용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형 예술의 임무라고 논하였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내용을 다른 사람이 보고 느끼며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 조형예술인 것이며, 표현이 없는 조형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조형예술에서의 '표현'이란, 다시 말해 내용을 구체적인 조형성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여지는 재료 즉, 매체(medium)를 통해질 때만이 비로서 가능하다. 조형예술은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예술이기 때문에, 시각에 지각될 수 있는 매체 없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적 내용을 전달 할 수 없다. 볼 수 있고 보여지게 할 수 있도록 표현되고 표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바로 매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며, 조형예술이 탄생하고 받아들여 질 수 있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매체'이다.
이러한 매체는 그것이 가진 물질적인 특성에 따라 그 표현 가능성이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같더라도 어떤 매체를 통해지느냐에 따라 내용의 표현은 달라질 수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매체를 통하면서 그것이 지닌 물성에 따라 독특한 메시지가 창조되기 마련이며, 그 메시지 자체는 가장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내용에 더해져 표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내용에 따라 적합한 매체 선택을 위한 실험과 탐구가 반드시 필요하며, 적절한 매체의 선택은 내용의 표현을 극대화시킬 수도 혹은 적절하지 않은 매체의 선택은 그 표현을 반감시킬 수도 있다. 가장 적절한 매체를 통해 그 매체의 물성을 살려, 표현코자 하는 내용이 이상적으로 표현되어지고 보는 사람들의 감성에 충격을 줄 수 있을 때 그것이 결국 조형예술이며 미(美)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매체의 물성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매체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도예와 디자인, 두 가지 모두를 경험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각기 다른 그 두 분야의 경계선을 없애고 한데 뭉뚱그려 자신만의 새로운 표현매체·소통수단을 만들어낸다. 수분을 흠뻑 먹고 점성을 가지고 있는 흙(점토)이 도자기나 조소의 재료라는 기존 시점에서 벗어나 점토판 자체를 하나의 캔버스 개념으로 끌어왔으며, 표현을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던 붓이나 연필 같은 중간 매개체를 버리고 손이라는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작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점토라는 캔버스와 직접 만나게 하였다. 점토는 손에 감정을 싫어 움직이는대로, 즉 누르면 누르는대로 스치면 스치는대로 숨김없이 표현이 이루어지는 당시의 감성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흔적을 남긴다. 꾸밈이 없고 순수하다. 즉, 점토라는 캔버스 위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순수한 유년시절의 기억이미지들과 거기에서부터 끌어내어지는 감정들은 가장 직접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흔적으로 남겨진다. 이 작업들은 최종적으로 디지털 프린트로 완성이 되며, 2차원의 평면 결과물이나 그 안에는 3차원적 입체의 정보를 강하게 가지고 보는 이들의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그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면서 또한 디지털적인, 그 모든 것이 복합되어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중이 다.
memories and traces... ● "눈을 감고 나의 깊은 내면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나의 어린시절... 내 유년기 기억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이것은 하나씩 꺼내어서 낱낱이 헤아려 보기는 힘들도록, 한데 뭉치고 녹아져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느긋하게 흐르고 있다. 나의 작업에 있어, 이 유년기 기억의 이미지와 감정들은 창조적 영감의 원동력이 되는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한다. 인위적이거나 계산적인 사고가 개입되지 않은 가장 순수한 그 자체로서의 유년기 기억 이미지들을,'나'자신으로부터 끌어내었을 때 비로서 나의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면으로부터 끌어낸 이것들을 순수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캔버스'가 필요하였고 그것은 바로 점토였다. 점토는 나의 유년기 기억 이미지와 감정들이 끌어내어지는 순간 이루어지는 표현들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내어 주었다. 어떠한 중간 매체도 거치지 않은 내 손끝의 움직임을 점토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었으며 나와 작품의 일체를 가능하게 해준다. 점토 위에서 이루어지는 '리얼한 움짐임의 흔적'은 즉흥적이고 과감하며 때론 섬세하고 미묘하다. 지금 나의 유년기 기억이미지들은 점토라는 캔버스 위에서 가장 순수하고 꾸밈없는 형상의 세계로 옮아가고 있는 중이다... " ■ 하정현
Vol.20050506c | 하정현 디지털프린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