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그리기

류용문ㆍ이광호展   2005_0506 ▶ 2005_0513

초대일시_2005_0506_금요일_04:00pm

스페이스 사디 서울 강남구 논현동 70-13 보전빌딩 Tel. 02_3438_0300

'회화' 안의 '그리기' ● 류용문과 이광호를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 있다.가령 서구 현대미술에서 재현의 문제는 이미 폴록이나 스텔라같은 작가들에게서 그 대안을 찾았고 그 모순과 한계를 넘어섰다. 그런데 왜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재현의 문제에 관하여 고민하고 있을까. 이미 서양 미술은 오래된 전통 안에서 해답을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역사 속에서 그 해답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그들은 이 지점에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동양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던 우리가 고희동을 필두로 일제 감정기에 수용한 서구의 미술은 그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인상파 류의 소수 작가들의 경향일 뿐이지 서구 미술의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과장된 면이 많다. 또한 서구의 전통적 의미의 회화성은 이미 인상파의 등장으로 굴절되었다. 흥미롭게도 도제제도를 피해서 도망간 마네와 고희동의 입장은 닮아 보인다.

이광호_The Manner of Painting_단채널 비디오_5분_2005
이광호_그림「여인」의 변화과정_디지털 프린트_2005
이광호_그림「여인」의 빠렛트_2005

류용문과 이광호의 작업은 익숙한 구상회화 같아 보이지도 않다. 막말로 새롭고, 신선하고, 잘 먹혀 들 것 같지도 않다. 달리 말하자면 그럴듯한 전원풍경과 여인들이나 정물화 같은 그림도 아니고, 설치미술이나 매체미술처럼 진보적이거나 개념적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회색분자처럼 확실한 입장이 없어 보인다. 이런 나의 문제제기는 그럴싸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분법적 사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은 서구 지향적인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서구의 미술은 어떤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발전되고 연속적인 맥락으로 이어져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술은 불연속적이며, 파편처럼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이다. 다만 그것들 중에 일 부분만을 미술사나 잡지의 기사 등을 통해 알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구 왕국의 정권을 전복한 신 왕국은 새로운 왕국에 의해 다시 전복되어 왔다. 류용문과 이광호는 고정된 회화의 가치 전복을 위해 새로움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 회화 안에서 간과되거나 쉽게 치부되어 왔던 어떤 것들을 찾으려 한다.

류용문_작업실_컬러인화_2005
류용문_북한산_캔버스에 유채_72×72cm_2005
류용문_여친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05

'그리기' 안의 '회화' ●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술반 활동을 해왔던 류용문과 이광호는 대학입학 후 급변한 상황과 마주친다. 그때까지 그려왔던 구상적인 회화는 기초가 필요한 저학년들을 위한 것이었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성급히 따라 가야만 했다. 하지만 류용문과 이광호는 '회화'라는 아버지 없는 집에서 가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움을 위하여 발 빠른 적응도 하지 않는다. 설정된 목표를 위하여 무리하게 나아가지도 않는 듯 하다. 그저 자신들이 해왔던 것들을 놓지 않고 단지 그들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하여 고민한다. ● 류용문의 작업은 외부에서 설정된 소재를 화면 안에 재현한다. 그러나 그 소재들을 주제로 부각 시키는 장치는 없어 보인다. 때로는 화면이 불안정하기도 하고 확실한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 소재는 작가의 사유 속에 있는 이정표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작가의 시선 안에서만 머무는 듯 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뒤따라가 보지만 발견 되는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작가가 만든 함정과 그의 철학적 고민이다. ● 이광호는 우리에게 낯설은 프랑드르 화가들, 인상파가 내몰아 버린 전 라파엘파, 그린버그가 소외시킨 작가들에 관심을 보인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현대미술은 이미 모더니즘 안에서 아방가르드를 앞세우며 서사적인 면을 배제한 서구의 한 시대이념 일 뿐이라는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는 예전과는 다른 면, 즉 완성된 그림의 의미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화법'을 보여준다. ●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류용문과 이광호의 그림에는 대상이 없어 보인다. 화면에는 단지 캔버스와 대상 사이의 왕복하는 주기적인 시선만 있을 뿐이지 순간적으로 대상과 용해된 작가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관객 스스로가 강하게 화면 안에 빠져들기가 힘들다. 그것 또한 회화의 매력일 텐데…… ■ 윤제

Vol.20050506a | 류용문ㆍ이광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