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504_수요일_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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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회화가 지니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서정성이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그 표현되어진 사물들이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것이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 대한 접근과 대상의 취사선택, 그리고 그 표현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일정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연의 관찰과 표현에 있어서 서구 미술 역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양회화의 그것처럼 특별히 강조되거나 정형화된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회화의 관찰 방식은 일단 대상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생명력의 긍정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생명력의 긍정은 일반적인 생물, 무생물과 같은 생물학적 구분을 뛰어 넘는 것으로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적 인식 체계이다. 그럼으로 십장생(十長生)에 해나 바위, 물이나 구름 등이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서정성은 표현되어진 대상을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은유, 혹은 비유가 내재된 의미 있는 형상으로 환치시킨다. 즉 소나무는 장수와 지조를 상징 한다 라든지, 대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나타내는 것이다라는 등의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즉 동양회화에서의 자연 사물의 표현은 모두 생명을 지닌 것으로 모두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숨겨진 부호와도 같은 것이다. 동양회화를 감상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내재되어진 의미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고전적이고 원칙적인 해설이어서 현대 한국화의 품평이나 감상에 전적으로 대입시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서 파생되었거나 일정한 연계성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면 전혀 무관한 것이다라고 말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작가 이승숙의 작업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구도와 기법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채색화 작업이다. 물론 일반적인 채색화의 정교하고 치밀한 기교적 운용보다는 상대적으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함과 한결 여유로운 표현은 작가의 작업을 경직된 채색화의 범주 속에 한정시키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작가의 작업은 비록 채색의 구조를 띠고 있으나 그 바탕은 수묵의 묘취와 분방함을 기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연 설명은 사족에 가까운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러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그 작업의 전개 방향과 관심이 일정한 지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일찌기 보았던 작가의 작업들 중 인상 깊은 것은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담채를 바탕으로 수많은 크로버같은 야생초를 화면에 담아내던 것이었다. 작고 반복적인 형상들을 마치 수를 놓듯이 화면에 하나하나 자리잡아가는 작업 방식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푸르게 열린 하늘을 배경으로 화면의 하단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는 풀잎들은 서로 같은 형상을 띠고 있지만 작은 변화들을 통하여 각기 다른 모양을 띠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서로간의 관계에 의하여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처럼 이들은 모이고 엉켜서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표현되어진 내용 자체로는 평이한 구도와 소재였지만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크게 열려진 광활한 배경의 하늘이었다. 여리고 하늘거리는 풀잎들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공간을 드러내기 위해 차용된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것은 여백의 운용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일견 여백은 비어있는 공간이다. 만약 단순히 비어있는 공백이라면 그것으로는 별 의미를 지닐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화면 안에서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유기적인 기능과 역할을 할 때 비로소 비어있는 공간은 여백으로 환치되는 것이다. 작가의 여백은 하늘거리는 바람 속에서 여리게 흔들리는 떨림과, 그 떨림을 통해 전달되는 소박한 생명의 감상들을 조심스럽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일견 소극적이고 정적인 분위기의 여백들은 호흡으로 숨결로, 그리고 바람으로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생태적인 사실성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푸르고 드넓은 여백으로 이를 보충함은 단순한 조형적 방법이지만, 이로써 얻어지는 화면 전반의 효과는 사뭇 기대 이상의 것이라 할 것이다. ● 여리고 정적이며 차분한 작풍은 근작에 들어 일변하게 된다. 보다 적극적인 표현 욕구가 두드러지는 신작들은 소나무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업들이다. 거친 듯 분방한 붓질의 흔적들조차 애써 거두어들이려 하지 않으며 일정한 동세를 지닌 흐름과 방향성이 두드러지는 신작들은 분명 예전의 정적이고 침착하며 섬세한 작풍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소나무의 기세는 여실하지만 작가의 관심은 이러한 소나무의 웅자의 표출에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는 소나무를 통하여 바람을 드러내고 그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생명을 포착하고, 그 생명을 통하여 특정한 메시지를 표출해 내려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즉 작가의 소나무는 단순히 자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의인화된 상징체로서 다가오고 있다 할 것이다. ● 이러한 해석은 신작 중 수묵을 통한 에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수묵 에니메이션이라는 실험적 장르는 근자에 들어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이지만 보편화된 것은 아닌 것이다. 특히 그 작업 양태가 정적이고 수동적인 한국화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눈길이 가는 분야임에는 분명하다. 윤곽을 그리지 않고 발묵과 선염에 의한 내용의 전개는 일반 에니메이션의 기계적인 작위성에 비하여 한결 친숙한 느낌이 들 뿐 아니라 수묵 자체의 장점이 잘 발현될 수 있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제반의 장점들을 반영하며 일정한 스토리를 엮어내고 있다. 마치 사람처럼 의연하게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흔들리는 가운데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나란한 질서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일상이, 또 그 일상이 축적되어 이루어지는 삶이 그러한 것처럼 흔들리는 가운데 그 뿌리는 더 깊어지고, 가지는 더욱 강건해 지는 것처럼 흔들리지만 의연함은 여전하다. 주제가 되는 소나무만을 강조하여 표현함으로써 그 여백의 운용과 작용은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고 분방함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작가의 이름모를 작은 야생초에서 소나무로, 그리고 수묵 에니메이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은유와 비유를 바탕으로 한 삶의 흔적과 그 감상을 표출해 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더불어 광활하고 대담하게 설정되던 여백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이자 살아있는 숨결이며 부대끼는 현실이 아니었을까 느껴진다. 서정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스스로 느낀 것에 대한 감상임을 상기해 본다면, 작가의 서정성이란 단순한 자연미에 대한 찬미나 재현이 아닌 보다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구체적인 사물의 가치와 의미를 환치시키는 과정은 보다 특별한 과정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그것이 본래 강한 상징성을 바탕으로 한 한국화의 서정성이 바탕이 되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작가의 경우 여백과 표현되어진 사물과의 관계를 통하여 의미를 표출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것을 작업의 기본 얼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경우 범람할 수 있는 유사 이미지, 혹은 일상적 이미지를 여하히 경계하고 드러내고자하는 바를 구체화할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보다 과감한 취사선택의 묘와 표현되어진 대상의 본질에 박진하는 접근 방식이 효과적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 서정성에서 에니메이션의 영역에까지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나아가는 열정에 기대어 그 성과를 기재해 본다. ■ 김상철
Vol.20050504c | 이승숙 수묵채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