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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04_수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 www.gallerydoll.com
한번도 걸은 적이 없던 길을 가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장면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 장면에 대한 상기는 나의 기억에서 온 것 같기도 하고 꿈에서 본 장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면 깊숙이 잠자는 인식의 끈 같기도 하다. 하나의 장면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예전에 행했던 행동을 반복하는 나를 경험하고 묘한 흥분을 느낀다. 내가 다음에 할 동작과 생각이 예언하듯 떠오르고 그대로 따라하는 자신을 보면서 마치 내 자신의 밖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해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 듯하다. 모퉁이를 돌거나 언덕을 넘으면서 마주치는 장면은 마치 꿈속에서 본 장면일 수도 있다. 숲 속을 헤매거나 바다를 멍하니 보면서 그 속을 생각한다. 넓은 바다를 격자로 잘라서 그림으로 옮기면서 많은 이야기가 그 속에 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장면, 인상, 사물 등은 그림의 소재로 그림을 푸는 끈과 같은 것이다. 이 끈은 실재하고 있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포착되는 현상(be)-현재의 상태이다. 현상은 내 주위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이며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대상이다. 이 것은 사물일 수도 있고, 풍경일 수도 있고, 계절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현상이 다 나에게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시각적 여운과 울림이 있는 대상이 중요하다. 특히 물, 풀, 숲 등 집합적인 군집의 성격를 띠고 있는 사물에 흥미가 있다. 가령 물이라는 현상은 그 물질이 가지는 특성상 여러 가지 다른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즉 어떤 여운과 울림에 의한 상상이 가능한 대상에 관심이 있다. 상상은 너머(beyond)에 대한 동경으로 현상(be)의 저편에(yond) 있는 어떤 것을 찾는 과정이다. 너머는 시각적으로 가리워진 공간적 개념의 저편을 말하기도 하며, 심상적 의미에서의 함의, 내포를 의미한다. 너머를 찾아가는 것은 마치 낯선 곳에서 익숙한 장면, 혹은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 같다. 하나의 장면 혹은 사물을 상상하면서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 문득 문득 다른 장면이 드러날 때가 있다. 숨김과 드러남의 반복적 과정에서 제3의 무엇이 드러난다. 예전에 본듯한 장면, 내면 깊숙이 존재하던 것을 끄집어 내는 듯하다.
사각의 평면에 2차원 혹은 3차원의 대상을 외형의 사실적 기술이나 설명을 위하여 그리기 보다 사각의 평면에 재료를 바꾸어 변용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물은 3차원을 점하고 있는 물질로 여러 가지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런 물질적 성질(현상)을 사각의 평면에 다른 물질로 풀어내는 것이 작업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다른 물질은 시각적 색감과 질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기존의 회화적 재료보다는 안료를 직접 느끼게끔 직접 제작한 안료 덩어리를 사용한다. 여러 겹의 레이어를 중첩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층 씩 안료덩어리로 드로잉을 한 후 불로 녹여 고착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아래 층과 위 층이 층을 이루거나 엉기기도 하면서 캔버스 천이나 종이에 스미면서 고착된다. 너머의 장면이 떠오르기를 기대하면서… ■ 김호준
Vol.20050429a | 김호준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