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phor

윤선이 개인展   2005_0428 ▶ 2005_0507

윤선이_EarthⅠ_나무판에 혼합재료_50×7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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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428_목요일_05: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현대의 이코노그라피(Iconography) ● 새 것에 휩쓸리는 요즘 작가들과 달리 윤 선이는 담담하다. 그의 작업이 풍기는 색상하며 정경은 세월의 기억을 머금고 있는 옛 것에 쏠려 있다. 녹슨 못이 등장하고 화석처럼 굳은 바탕, 거무스레한 펄프, 그리고 스테이플과 압정, 유리조각들 등은 객지를 떠돌아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청 태가 낀 우물 안을 들여다볼 때의 감회처럼 우리의 기억을 자극한다. 물을 퍼 올리지 않아도 썩지 않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며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그의 그림은 무언가 희미해져가는 것을 일으켜 세운다. ● 오브제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 말은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열쇠가 된다. 미디어 작가의 경우 물량폭주의 사회 속에서 꺼져가는 인간의 실존 및 고뇌를 은유하기 위해 오브제를 사용하며 아쌍블라쥬(Assemblage) 작가 역시 기계화된 현대문명을 반추해내는 방편으로 오브제를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의 경우 평면과 공간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오브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 그는 객관적인 맥락에서 오브제를 기용한다. 그가 사용하는 못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달아맨 대못이며, 깨진 유리조각은 뼈가 으깨지고 살이 떨어져나가는 참혹한 고통에 잇대어져 있다. 이처럼 그가 사용하는 오브제는 허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대가로 지불한 수난과 희생을 함축한다. 그것은 가장 감동적이고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오브제이다.

윤선이_Two People_나무판에 혼합재료_50×90cm_2005
윤선이_People_나무판에 혼합재료_각 36×36cm_2005

"나는 그리스도 신앙의 종교적 진리를 끌어안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이 시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윤선이)● 그간의 개인전을 통해 보여준 작품기조를 감안할 때 윤 선이의 회화는 단순히 '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그의 작품 줄거리는 유월절에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그의 작품에 생장점(生長點)이자 출발점(出發點)인 것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주요한 표지요 극한의 사랑을 내포한다. 십자가 안에서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나가 된다. ● 그의 작품을 둘러보면 거의 모든 작품에 크로스(Cross) 형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듯한 크로스(Cross)도 있지만 대게는 비뚤어지거나 휘어지거나 기울어져 있다. 또한 연기에 그을린 것처럼 흐릿한 형태도 있다. 그 십자가란 종래 보아온 엄숙하고 경건한, 때로는 장신구로 전락한 예쁜 십자가와는 사뭇 대조된다. 형태는 비록 다르지만 그의 십자가는 못과 피로 특징지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직접 상기시키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십자가 위에서 피를 쏟으신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고 우리를 향한 '일방적인 사랑'이 거기에 녹아내려 있다. ● 윤 선이는 내용의 진정성 못지않게 형식의 짜임관계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더라도 시각적 충실성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미술작품도 의사소통의 수단중 하나이다. 조형어휘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면 상대방과 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는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능력으로 진가를 발휘하는 작가이다. ● 윤 선이가 구사하는 조형어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다. 그것은 재주만을 믿고 값싸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진지한 숙고와 장인적인 끈덕짐으로 얻어졌다. 그는 어떻게 하면 오브제들이 감각적 물질로서의 그들 본연의 상태를 떠나 다른 개체로 전환될 수 있을지를 고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에 대한 비전을 현재라는 특정한 시기 안에 채택된 고유방식으로 그 위치를 드러내도록 시도하였다. ● 윤 선이는 누구든 자신의 작품을 편하게 감상하기를 원한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도, 흙 속에서 방금 출토된 유물, 미완으로 남아 있는 혼돈된 태초, 수평과 수직으로 된 크로스(Cross)마저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만남 등 다양하게 풀이되기를 바란다. 요철이 심한 화면은 연상(聯想)의 함(函)이고, 크로스(Cross)는 메타포(Metaphor)이며, 오브제는 메시지 전달의 개체로 작용한다.

윤선이_People_나무판에 혼합재료_52×37cm_2005
윤선이_Landscape_캔버스에 혼합재료_144×89cm_2005

그렇더라도 그의 작품의 심층에 깔려 있는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의 오독(誤讀)을 낳을 수 있다. 근래에 제작한 작품 중 단추를 무수히 쌓아올린 릴리프(Relief)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기독교적 스펙트럼으로 볼 때에만 정확한 진의가 파악된다. 그 안에는 빨강, 회색, 흰색, 노랑, 연두, 청록 등의 크고 작은 단추들이 층층이 축적되어 있는데 그들은 '심적인 유쾌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그 심적인 유쾌함이란 막연한 즐거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온 기쁨으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 작품은 진정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 죽음을 깨뜨리고 생명을 얻었으며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고 광명의 빛을 얻은 그리스도, 그와 연합한 윤 선이의 신실함, 그것은 시냇물에 방금 헹궈낸 것 같은 영혼의 정결함이며, 이와 함께 부활의 기쁨을 예술의 지평으로 널리 확대시키는 작가의 풍부한 감성과 창의력이 돋보인다. ■ 서성록

윤선이_Two crosses_종이에 혼합재료_112×80cm_2003
윤선이_Landscape_나무판에 혼합재료_50×70cm_2005

윤 선이의 일련의 작품들 속에 담긴 '은유' ● "한국에서 온 여성 예술가 윤 선이는『성경』의 창세기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을 예술 창작의 주제로 삼는다. 그녀는 화선지로 만든 종이찰흙과 압정과 핀, 노끈, 유리조각, 찻잎, 커피, 먹물 등의 물질로 아름다움과 침략, 진실과 허구, 고통과 사랑, 대량생산된 공업제품과 수공으로 만든 자연 물품의 이원적 관계를 표현하면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속에서 진실이 내재한 정신성을 추구한다. 작품의 화면 속에는 마치 가장 작은 곳에서 아래를 조감하는 풍경처럼 어떤 추상적 은유가 담겨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구와 천당, 바다, 혹은 창세기 전의 혼돈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예술가란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계발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윤 선이가 이전에 갖었던 전시의 팜플렛에 쓰여진 이 글에 대해 매우 동감한다. 이 글은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고, 또한 더 깊이 파고들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뒤이어 나는 세 가지 층위의 감상을 통해 위 글에서 말한 이른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법'을 밝혀보고자 한다. ● ▶ 첫 번째 관점 ○ 복합 재료로 이루어진 회화를 보는 일반적인 방식처럼, 각종 실제의 재료들로 가득 채워진 벽면에 수직으로 걸려 있는 그림을 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 그녀의 작품은 한 편으로는 어떤 자연의 신비한 부호 같은 성격을 드러내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강렬한 장식적 성격을 지닌 재료의 성질을 띠면서도 어떤 고심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러한 추상적 신비 부호들과 쇠못 등의 구체적 사물 사이에는 사실 도저히 하나로 융합될 수 없는 어떤 형식과 내용 사이의 문제들이 존재한다. ● ▶ 두 번째 관점 ○ 상상적으로 내려다보는 각도에서 이 작품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관객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듯이, 아주 높은 하늘에서 극도로 축소된 지상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장식성은 축소되고, 쇠못은 이미 황폐해진 대지 위의 건축 폐허나 숲의 잔해, 혹은 수많은 십자가 등으로 변한다. 이 세 가지 이미지는 한꺼번에 중첩되기가 매우 쉽다. ● ▶ 세 번째 관점 ○ 머리를 90도로 기울여 측면에서 바짝 붙어서 이 못들과 그 아래의 지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순간적으로 관객의 신분 변화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관객은 밖과 위에서부터 안으로 들어가며, 아울러 아래로부터 앞과 위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런 변천을 겪은 후에 다시 두 번째 관점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쇠못 아래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들과 쇠못 바깥에 있는 큰 생물들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쉽게 체험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와 천상에 있는, 보이지는 않지만 눈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 사이의 관계일 수도 있다. ● 쇠못의 결(肌理)과 조형(造形) 및 종교사(宗敎史)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의 파멸적인 전쟁이나 죄악에 빠진 인류에 대한 신의 징벌을 나타내는 듯하다. 작품에는 강렬한 말세 의식, 집단적인 조악으로 인해 초래된 멸망에 대한 의식이 담겨 있다. 어쩌면 예전에 뉴욕에 체류했던 그녀의 경험이 작품 속에 상당히 드러난 것은 아닐까?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보면, 거의 즉각적으로 존 카펜터(John Carpenter)의『뉴욕 탈출』이라는 영화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윤선이_EarthⅡ_종이에 혼합재료_202×140cm_2005

그녀의 비교적 최근 작품들은 감각과 척도, 바라보는 각도가 다르다. 이 작품들은 교회 뜰의 부서진 도자기 파편처럼 이미 부서지고 떨어졌지만, 갈라진 흔적 사이에는 갖가지 색채의 단추 및 거울 파편이 가득 뿌려져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상(聖像) 모자이크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그것은 성모 마리아 교회의 채색 유리로도 연결될 수 있다. 자연적으로 떨어진 이런 물질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성스러운 빛과 은총, 위안을 암시하며, 전체 이미지는 신성한 영역의 소멸 혹은 신성한 영역의 회복 사이에서 파동처럼 일렁인다. 부서짐과 궤멸 속에는 모성의 자상함이 깃들여 있으니, 이 파편들은 마치 상처를 치료하고 갈라진 흔적을 메우는 재료처럼 보인다. 이 도자기 파편과 단추로 만든 작품들 앞에 서면 그저 간단한 시각의 변화만으로도 관객들이 마치 무너져 잔해만 남았음에도 여전히 성모 마리아의 자상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의 마루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신도와 천상의 저 한 쌍의 눈동자들 사이의 관계가 체현(體現)되는 것이다 ● 신러위앤 아트 스페이스(新樂園藝術空間)에서의 윤 선이 개인전에 관한 평론_Artist 11월호_2004 ■ 황 하이밍(黃海鳴)

Vol.20050424b | 윤선이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