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427_수요일_06:00pm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일상적 풍경의 의미와 실경산수화의 모색 ● 중국 고대 회화사에 있어 중요한 이론서중 하나인 필법기(筆法記)를 쓴 형호(荊浩)는 형사(刑似)의 기초위에서 자연대상의 생명을 표현해야 한다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관념을 강조하여 본격적인 수묵산수화의 길을 연 바 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자연의 이치와 존재의 의미에 관하여 무한한 것은 비 물질의 정신적 존재이고 유한한 것은 사물이라고 하는 물상의 성질이 영원할 수 없는 유한의 존재로 분류 하였다. 그 결과 모든 예술은 표현의 형식에 있어서 감각을 통한 지적, 또는 상상적 창조 활동에 의하여 나타났으며 그것은 곧 인간의 정신적 숙고를 통한 직관의 세계로 표출되는 것이라 믿었다. 특히 이런 예술의 흐름 속 에서도 생략과 강조, 함축과 은유의 특성을 지닌 수묵화는 직관적이고 상징성이 강한 동양회화의 정수로서 종이의 속성과 여백의 운치, 먹색의 현학적 조화와 운필의 자유로움이 어울려 회화적 미감을 극대화 시키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작가 권인경은 그동안 수묵화가 지닌 격조 있는 미감을 바탕으로 현대수묵실경화로의 새로운 가능성과 보편적 정감을 모색해 왔으며 동양 고유의 정신적 토대 위에 전통적 표현기법과 시대적 감각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표현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해 온 청년작가중의 한 사람 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평소 지필묵의 부단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서정적 감성의 세계를 펼쳐보이고자 했던 작가는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였던 "진경, 그 새로운 제안" 전에 초대받았던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간결하고 풍부한 먹색과 대각선의 분할된 화면구도, 입체주의화가 피카소가 즐겨 사용하였던 콜라주 기법을 응용한 색다른 표현방식으로 일상적 도시풍경과 자연의 형태를 반추상적으로 재구성하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 사생을 통해 자연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기도 했던 그는 점차 대상의 실체와 본질에 대한 느낌을 사색적인 필치로 바꾸어 가는 특유의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 첫 개인전에서는 지금까지의 이런 작업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동안 화면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순환적 자연관에 의한 자연의 생명력과 이치를 중요시 해왔던 작가는 일상적 주위 풍경들의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현대회화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의 대비된 화면 분할과 깊이 있고 풍부한 먹색, 부드럽고 섬세한 필선의 조율로 표현된 형상의 이면을 주목하게 하는 관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회화적 시각과 조형언어의 의미는 그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견지해온 자신만의 표현방법의 한 형태이자 탈 장르화 되고 있는 현대수묵실경산수화의 방향성 탐구를 위한 또 하나의 제안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작가는 심원법을 기초로 한 깊은 공간미와 감각적 필치, 표현 매재의 적절한 혼용기법 등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화면에서 보이는 그의 필치는 자연의 에너지를 호흡을 통하여 화면 바깥으로 이끌어 내는 그만의 감수성 짙은 특성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확장되는 여백의 미감을 통해 화면을 더욱 생동감 넘치고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eo tolstoi)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움직임이나 선, 색채, 소리, 또는 말로써 표현되는 행위에 의해 자기 자신 속에서 느껴진 감정을 다른 사람이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적 행위이다." 라고 밝힌 바 있다. ● 전통적으로 동양의 산수화풍에서 유추할 수 있는 진경의 미감과 추상성은 바로 직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이런 정신적 율동이 가장 간결하게 드러나는 것이 다름 아닌 수묵이 갖고 있는 재료적 특성이다. 따라서 약간은 도회적 이미지를 띄면서도 담백한 작가의 수묵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동양적 정서를 현대적 흐름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작업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 수묵을 생명으로 하는 모든 작가는 그가 바라보는 자연의 이미지에 대하여 수묵화만의 격조 있는 필의와 정감을 통하여 어떻게 해석해야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한다. 또한 자신이 바라보는 사실적 형상의 이미지와 추상적 양식으로 변해가는 화면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수많은 고심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 평소 작가는 그의 회화세계에 관하여 "내 작업의 화두는 일상이다. 현대의 일상은 도시다. 이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풍경들에 대한 고찰이며, 과거와는 또 다른 현대인의 삶이자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의 진경이 겸재와 그의 추종자들에 한 조선의 명승고적에 대한 개성적 표현이었다면 현대에 있어서의 진경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도심풍경, 즉, 일상의 풍경에 대한 관심과 확인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바라보고 현재의 삶 바로 이 순간을 주목하고자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간결한 먹색의 격조미를 바탕으로 일상의 풍경과 자연의 이미지를 이중적 분할의 화면과 도회적 감각으로 재해석 하고 있는 그의 실경수묵화는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를 어떤 시각으로 그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는 그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다루어왔던 일상의 도시풍경들을 꼴라쥬 기법과 대각구도의 독자적 조형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수묵 실경화는 마치 북송시대의 마원(馬遠)의 그림에서 나타났던 잔산잉수(殘山剩水)의 전통적 흐름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수묵화의 현대성 모색과 해석에 있어서의 발전된 한 형식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부감법과 평원법의 전통회화 구도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는 화면의 포치는 그가 동양화 본래의 전통필법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얘기 할 수 있다. ● 결국 현대적 도시풍경과 자연의 이미지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주목하고 있는 작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이중적 화면구도를 통해 현재의 시간이 미래와 과거의 시간 사이에서 변화되고 진행되는 지속적 상황임을 제시하고 있어 일상의 순간이 그가 바라보는 우주와 생명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화단의 수묵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명제는 전통이 내재된 자신의 정체성과 이질적인 서구 미술문화와의 변별성을 어떻게 수용하여 자신만의 미의식과 조형 언어로 표현해내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란하기까지 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전통의 표현 매재를 중심으로 한 우리 수묵채색화 장르의 침체된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작가 역시 한국 현대 수묵화의 활성화와 방향 모색을 위해 함께 고민 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 작품이란 작가 자신이 처한 시대와 사회 환경 속에서 체득할 수 있는 보편적 미감과 예술적 관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표현될 수 있는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표현된 세계가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시대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예술의 발전은 지속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수묵의 표현방식과 조형 감각을 통하여 그가 한국 현대수묵회화에 있어서의 새로운 방향설정의 구축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작가 자신이 자연과 스스로의 내면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되풀이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그만의 회화적 특성이기도 하며 타인과의 공감대를 통하여 보편적 미의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따라서 작가 권인경의 회화세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 수묵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이 시대의 조형의 흐름 속에서 어떤 형태로 계승 발전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한편 수묵화 특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향후 현대수묵화의 심도 있는 연구와 발전을 모색하는 데 있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실제 혹은, 관념적 표현으로 버무려진 그의 회화세계는 사실적 묘사의 객관적 시각과 개념적 필의(筆意)의 흔적과 더불어 이제 스스로의 내적 허상들을 몰아내고 일상과 자연에서 만끽할 수 있는 정서적 감성의 깊이를 형상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의 한사람으로 첫 개인전을 앞두고 많은 시간을 작품 앞에서 홀로 고민하였을 작가의 이번 전시가 향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데데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 장영준
Vol.20050418c |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