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407_목요일_05:00pm
스페이스 사디 서울 강남구 논현동 70-13번지 보전빌딩 Tel. 02_3438_0300
누군가를 만났던 기억이나 어떤 음악의 멜로디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생성, 소멸하는 기억의 파편들을 떠올리는 과정일지 모른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연관되어 생각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해답을 구하기 어려운 일들이 내 삶 구석구석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함을 작업을 통해서 재차 확인하게 된다. ● 말 잇기 놀이를 할 때 연상 작용에 의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기묘한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장소에 가니 누군가와 나누었던 한참 전의 대화가 갑작스레 떠오른다거나 하면 난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워 지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된 분명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당혹감이라 할 것이고, 그 다음은 직감에 가까운 느낌상의 연결점을 찾았다 할지라도 도저히 말로써 그것을 풀어서 설명할 수 없음에서 오는 답답한 심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꿔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 나름의 해답을 스스로 갖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지나친 환원론을 경계하면서도 나는 나 자신의 지각과정과 더 나아가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하여 비로소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결국 나의 기억들은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탈바꿈하여 뇌의 신경체계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모호하고도 거대한 덩어리로서의 기억의 집합체가 수면 위에 빼 꼼이 내민 일각(一角)에 의존하여 상식을 운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얼마 전에 내가 내리게 된 하나의 결론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기억은 '의지'를 가졌다는 것인데, 이 기억들의 복잡한 조합과 연계에서 비롯되어 생겨난, 일견 엉뚱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의지'는 우리가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듯이 우리 안에 항상 잠재해 있어서 각자의 개성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도 그 존재가 밝혀지기 힘든 것이다. 말 잇기 놀이에서 똑같은 선행어를 받아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각자 연상되는 바가 다르도록 만드는 어떠한 경향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발화(發話)는 그것이 생성되는 순간에 이미 잊혀지고 있고 기억 속에서 여러 겹의 다른 해석을 스스로 잉태한다. 「독백 (싱글채널 비디오, 5분 29초)」에서는 이러한 기억 속 의미의 미끄러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어 각기 다른 길로 벗어나게 된 세 가지의 기억이 서로 비슷한 시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다시금 달라지기도 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완전한 합치점이 부재함과 동시에 기억은 다시금 현재에 생명을 얻어 각기 다른 차원의 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부여받는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기억은 결국 온전한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방치되고, 혹은 희미해질 뿐이다. 만일 TV 모니터에서 전파의 혼선으로 뜻하지 않은 장면을 보게 된다면 그 느낌은 어떠할까. 아주 사적인 사건의 한 단면이 흐릿하게 화면에 중첩되어 비쳐지고 그것을 바라보던 이는 무심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TV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도록 하는 힘이 있다. 보는 이는 단지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급속히 익숙해 질 뿐이다. 마치 TV 드라마 속 주인공이 언제부터 왜 영웅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가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것처럼 말이다.
「Color Bars (싱글채널 비디오, 4분 40초)」속의 주인공은 칼라 바 그 자체이다. 별 의미 없이 기억 속을 맴돌던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에 맞춰 색면들이 변화한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바로 이 순간 떠오르는 하나의 기억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나를 유인하는 듯 하다. 「의지를 가진 기억 (더블채널 비디오, 좌: 4분 24초, 우: 2분 56초)」은 나 자신의 신체를 기억하는 방법 안에서 마치 내연기관의 그것처럼 기억의 한 단편이 동력을 얻어 꼬리를 물고 전환되는 양상을 추적한 작업이다. 몸의 중추신경과 균형감각은 계속된 회전을 견디지 못하고 기억의 변형태인 환상에게 길을 내어 준다. 밝은 햇살 아래서 빙글 빙글 돌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어 나의 몸은 실린더가 달린 엔진처럼 가동되어, 계속해서 떠오르는 상들을 연결짓고 기억하며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소파에 앉은 이들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한 쪽에서는 풀어헤쳐진 의식의 향연이 열리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의식을 다잡으려는 강박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상이한 두 가지의 의식도 그 경계가 모호해 지며 하나의 리듬감을 형성하게 된다. ● 현재의 작업에 스스로 부여한 일이 있다면 기억이 가진 이러한 의지가 발견된 접점, 그것이 가진 내적 구조를 찾아 작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기억 앞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의식에 뚫려 있는 유예의 공간들, 그것이 가진 자생성에 몸을 내맡기는 것과 같다. 흥미와 기대, 그리고 불안을 함께 안고 있는 그 공간에 거는 기대는 막연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이 합목적적이라 믿고 매 순간 설명 가능한 의미를 쫓는 것 만큼 환상에 빠져드는 일도 없을테니 말이다. 오히려 그러한 짐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추이를 바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된 모든 시도들이 독창성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 김태진
Vol.20050407b | 김태진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