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ge 2005

나진숙展 / Jean Rah / 羅眞淑 / installation.sculpture.video   2005_0406 ▶ 2005_0419

나진숙_My Nest 2000_혼합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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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406_수요일_05:00pm

창 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2_5556 www.changgallery.net

내재적 비상의 삶 ● 삶이란 것이 두 발을 이 땅에 딛고 영위하는 것이라면 초월적 삶이란 정신이나 영혼이 지향하는 저 너머의 세계일 것이다. 초월을 향한 열망은 현실이 주는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아니면 애초부터 신과 만나면서 그의 세계를 배워가며 그것에 적합하게 살고자 하는 영혼의 울림으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 영혼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나름대로 초월을 꿈꾼다. ● 나진숙은 자신의 현실을 조각한다. 때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하는 여러 색채와 굵기의 씨실과 날실이 한 올 한 올 짜여져 마지막에 가서야 멋진 형태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나진숙_The Cage 2005展_창 갤러리_2005
나진숙_My Nest 1999_나무, 혼합재료
나진숙_Beyond Voyage 1_나무에 디지털 프린트

작가는 일정한 크기의 나무판을 하나하나 깎아서 만든 형태들을 마치 퍼즐을 하듯 짝을 맞추어 사방으로 나란히 접합시킨다. 그는 하나의 커다란 나무판을 이용하여 단번에 조각해도 될 것을 왜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로 잘라서 일일이 조각을 하고 이어붙이며 형태를 완성하는 수고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작업 행위가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다름이 아님을 발견한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여러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작은 나무판들의 조합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기쁨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딪치게 되는 고통과 좌절과 같은 삶의 어두운 모습들도 결국은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데 꼭 필요한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희구가 담겨있다. ● 그의 조각에 새겨진 형상들을 처음부터 알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나무가 창출해낼 수 있는 다양한 마티에르를 생략하고 극도의 저부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형상들은 적합한 빛의 강도에 의해 슬며시 스스로를 드러낸다. 따라서 작품 앞에 선 관람자는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이 조금씩 부조 앞으로 다가가게 되고 마침내 형상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문득 지나쳤던 작은 씨앗이며 꽃, 나뭇잎, 구름, 물결, 빗방울, 그리고 우리의 얼굴과 같은 것들이다. 관람자와의 대면으로 자신의 모습들을 밝혀주는 이 과정 속c에서 형상들은 관람자와 작가와의 감정의 교류를 매개한다.

나진숙_Harmony_나무_43×10×10cm
나진숙_My Nest 2000 상세 이미지_혼합재료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그마한 새의 형상이다. 새는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상호의존적 조화 속에서 살아야한다고 인정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을 상징한다. 현실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서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소도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그 곳은 어미의 품안에서 온전한 평온을 누렸던 둥지와 같은 곳이다. ● 그런데 작가의 새는 왠지 연약하고 쓸쓸해 보인다. 어딘가를 향해 날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날개를 접은 채 가만히 앉아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그 모습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새장 속의 새를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모습은 디지털 작품에서 확연해진다. 조각보다는 한층 움직임을 실재처럼 부여할 수 있는 3-D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의 새는 날아가는 대신에 새장 안에 있다. 작가는 멀리 높이 날아오르는 초월 단계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삶 속에서 실현돼야한다는 것을 역설적인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진숙_The Cage_컴퓨터 모션 그래픽
나진숙_The Cage_컴퓨터 모션 그래픽

그리고 이미지에 수반된 사운드는 새를 둘러싼 환경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알의 상태로 어미의 자궁 속에 있는 것처럼 평온한 상태를 말해주는 물소리가 어미의 심장 박동의 리듬으로 들린다. 그러다가 그 소리는 어느새 빗소리로 변화하는데, 그 한가운데 앉아있는 새의 모습은 우리가 세상에서 맞곤 하는 삶의 곤고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국 몸은 땅에 내려놓고 날개가 하나의 몸짓이 되어 무한한 우주로 향하는 이미지는 그의 정신과 영혼에서 활동 중인 초월을 향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실의 구체적 삶을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사는 만큼, 그래서 인생을 깨달아가는 만큼 조금씩 초월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정신을 읽는다. ● 작가의 새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 그리고 공중에 존재하는 것들 모두를 포함한 환경 한가운데에 있다. 작가는 우리의 삶의 여정이 비행경로와 다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새장이 둥지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 박숙영

Vol.20050403b | 나진숙展 / Jean Rah / 羅眞淑 / installation.sculpture.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