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323_수요일_06:00pm
갤러리 올 서울 종로구 안국동 1번지 Tel. 02_750_0014
평범한 이미지를 벗어나는 핀의 반짝임 ● 요즘과 같은 이미지 시대에 예술작품을 통해서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는 말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쉽지 않다. 우리 사회만큼 오늘날 미술계 상황은 상당히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주변에서 추상 작품들이 난무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선호하고 이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현이라는 것은 재현하고자 하는 어떤 대상의 실체와 관련된 명확한 사실과 의미를 찾아 내어야하고 그것을 지시하는 재현의 기호가 만들어지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 앞에 가상적인 것이 확산되면서 실체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것을 재현한 것 또한 허구적인 것이 된다. 오늘날같이 사진과 기계적 재현물 범람하고있는 현실 앞에 회화적 재현은 더욱 무력해지고 만다. 사진과 같은 영상적 재현물들은 기계적이기 때문에 쉽게 재현이 이루어지고 쉽게 소비해버리고 또다시 만들고 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자신이 재현의 소비물로 타락하고 있음을 파악하기 쉽지는 않다. 범람하는 사진이미지는 우리의 눈을 현혹하면서 본질과 다른 가상적욕망을 만들게된다. 그것은 인스턴트화된 사물들처럼 그 이미지들은 우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그러나 수공으로 제작된 작품은 다르다. 제작과정을 포함하며 변화되는 시간과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지만 그 만큼 특별한 효과를 지니게된다. 그리고 시작과 완성의 기다림은 사유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노스탤지어와 같이 우리의 과거와 연관되어있다.
이인경의 작품은 그려지는 부분과 그 위에 더해지는 작은 행위들과 연계되어있다. 물론 물감으로 그리는 것 자체가 행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그려진 것이나 어떤 사물에 첨가되는 작은 핀들은 물감보다 더 강하게 시각적 오브제로서 역할과 행위가 암시되어진다. 작가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핀을 꼽는 행위의 긴 시간과 그 이후 발생하게되는 자체적 변화과정을 작품에 포함시킨다.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성과 변화 소멸의 과정을 지니고 있다. 작품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키워 갈 수 있는가? 작품을 감상하고 받아들이는 자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시간의 변화를 담아내고 계속 변화될 것이라는 가정은 생명체처럼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작가는 더욱 생명체가 되어가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인경이 사용하는 작은 핀들은 사무실이나 의상실에서 흔히 사용하는 조그마한 재료이지만 그것이 지닌 반짝거림과 작은 형태는 작가에 의해 다시 의미를 부여받게된다. 작은 핀들의 집합이 만들어 내는 형태와 반짝임은 제작시간과 전개 과정에서 결과의 기다림을 담아내고 있다. 핀을 꽂는 초기부터 손을 멈출 때까지 작가의 의식은 한 곳으로 지향하게된다. 의식의 지향성이란, 의식은 언제나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함을 뜻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식이 사물과 관계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의식이 반영되는 작품에서는 의미로 전환되어 진다. 즉 사물이 지닌 본래의 형태와 새로 조성된 형태, 그것을 만드는 시간의 암시가 그러하다. 작품제작 과정에 암시하게되는 작가의 자아의 의식이라는 좁은 범위에 한정되었던 주관성은 작품이 완성되면서 시간의 진행이라는 빛을 보게된다. 그것은 작품의 내용이 개인적 세계 내 것에서 벗어나 공유할 수 있는 의미로 파악하게 한다.
'핀'과 같이 특별한 오브제로 말하고자하는 방식은 그려진 그림이나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서 더욱 의미를 발현하게된다. 대량 생산되는 사물(object)로서 작은 핀은 실제 생활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길고 뾰족한 기본적인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즉 예리하고 예민하게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꽂힌 그림이나 사물은 본래의 이미지가 왜곡되고 일상적인 현실에 가면이 씌워진다. 그려진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는 현실과 다른 면을 보여주며 또 핀의 이미지와 무관하게 새로운 의미구성을 만든다. 결국 핀은 사물로서 기능의 부재를 감추면서 새로운 기능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일반적으로 사물에 대한 인식은 보편성을 강조하는 과학적 사고와 원칙을 중요시하는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핀'이 본질적으로 인공물이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닌 반짝거림과 함께 물감과 다른 재료로서 암시적 사물이 된다. 어떠한 사물로서 용도의 필요성도 진리도 필요하지 않는 '핀'이다. 대신에 그것은 어떤 구속도 없이 모든 형태에서 근본적인 이미지의 설립과 함께 작품이 된다. 이미지가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시대에서 대량생산되는 작은 핀은 평범한 존재로서 회화 위에 나열되면서 회화적 이미지의 죽음과 동참하며 새로운 창조를 기대하고 있다. 대량생산되는 소비사회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는 인공적인 존재를 선호할 뿐이며 우리의 정신이 메마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 공포도 지니지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핀이라는 작은 오브제를 사용하여 대량으로 복제될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든다. ■ 조광석
Vol.20050329b | 이인경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