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_2005_0319_토요일_02:00pm
참여작가 / 김진형_안수영_이태성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02_418_1315
상업사진의 사회학적 기호들 ● 순수미술만을 고집하던 미술관에서 상업사진을 다루는 일이 이제 해괴한 일은 아닌 듯하다. 국립현대 미술관을 필두로, 두어 군데의 유명 미술관들이 이미 국내외 유명 상업 사진가들의 초대전을 가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작년부터 순수예술만을 전시하던 '고귀한' 미술관들이 어떤 경제적 실리, 실용적 목적을 위해 생산된 '돈벌이' 사진을 전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국내 상황은 외국의 몇몇 유명 미술관들의 '튀는' 전시를 모방하려는 심리 아니면, 유명 상업 사진가들의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해 관객 동원에 있어서 대박을 터뜨려 보겠다는 의도 아니면, 상업사진도 '예술'이라는 '생뚱 같은' 미학이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여하튼 한국에서도 상업사진 그러니까 패션, 영화포스터 사진은 2004년을 기점으로 시시비비 논쟁에 부딪치지 않은 채 은근 슬쩍 순수예술의 전당인 미술관에 입성했다. 사실 예술사진을 하는 사진가나 상업사진을 하는 사진가나 모두 경제적 실리에 안달이 난 작금의 현실 속에서, 어느 시러베 평론가가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며 상업사진의 미술관 진입을 성토하겠는가? ● 그렇지만 상업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엽에 지겹도록 얘기했던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상기시키는 바 없지 않다. 작가의 정신성과 상상력의 투입을 예술의 전제 조건으로 생각했던 이상주의 미학에 침윤된 사람들은 광학과 화학의 메커니즘에 의해 얻어진 사진 이미지를 도저히 예술로 간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진을 예술이 아닌 기술로 간단히 치부했고, 사진을 예술로 추켜세웠던 사람들은 사진 행위를 정신과 상상력, 그리고 장인적 기예의 산물임을 증명하면서 예술의 성역에 입문시키고자 했다. 이상주의 미학에 대항하면서 사진의 예술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상주의 미학에 빌붙으면서 상업적 기예라는 낙인을 지우려 했다. ● 사진 매체가 기계적 기예 mechanical arts의 오명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사진의 폭넓은 상업적 용도였다. 19세기 내내 거의 모든 사람은 사진하면 값싼 초상사진이나, 실용적 목적에 사용되는 자료사진을 떠올렸고, 사진가하면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진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인쇄매체가 활성화되는 192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선입견에 광고사진, 패션사진, 유명인사 초상사진이 대량 유포되면서,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판단을 일반의 인식 속에 주입시켰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실체적 진리의 추구가 이상주의 미학의 한 축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중 인쇄매체를 채우는 번드레한 상업사진들은 트릭과 환상의 거짓 이미지일 뿐이었다. 사진이 20세기 대부분 동안 예술매체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데는 바로 대중을 상대로 한 상업 사진이 만연한데도 그 한 원인이 있었다. 이러한 사진 역사의 진행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에서 작년에 상업사진의 주요 인물들이 미술관의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미술계나 사진계나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예술의 제도적 측면에서 한번 곱씹어봐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상업사진이 미술관에 입성한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사진 작가로서 명성을 획득한 몇몇은 상업사진에도 그들의 예술적 아우라 aura를 부여한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로 규정된 그들의 이름은 작가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패션사진, 주문자의 요구가 가미된 영화포스터 사진들에도 어떤 예술적 수용의 태도를 요구했다. 작가명과 더불어 관객의 시선은 상업사진 속에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미학적 스타일을 파악하고자 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들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상업사진을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몇몇 상업 사진가들의 낭만주의적 생활 양태를 들 수 있다. 사실 일반 대중들이 품고 있는 전형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는 거의 대개가 19세기를 전후한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유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예술가는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윤리규범에서 일탈한 보헤미안으로, 세속적 가치와 규율에서 벗어난, 혹은 벗어나려는 예외적 존재이다. 따라서 낭만주의적 예술가는 자신의 특이성, 예외성을 타자들에게 고지하기 위해 일탈적인 복장, 치장을 마다하지 않는다. 19세기가 구체화하고 퍼뜨린 이 예술가 상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면서 상업 사진가는 대중들로부터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일반인들이 호들갑을 떠는 그의 스캔들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예술가의 일탈의지로도 해석되었던 것이다. 미술관은 대중들이 품고 있는 몇몇 상업 사진가의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관객동원과 진보적 미술관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도모하고자 했다. 세 번째는 뛰어난 상업사진은 메시지는 빈약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감각을 독창적으로 창조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예술작품의 범주에 넣어도 큰 무리가 없다고 미술관은 생각했다. 더욱이 현대 미술의 현실 속에서도 심각한 의미 없는 키츠와 카피, 차용, 패러디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고귀한 정신성과 뜻깊은 메시지의 여부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구획 기준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그러나 상업사진과 순수 예술사진은 분명 구별되는 점이 있다. 우선 전자는 경제적 이익과 같은 현실적 목적을 위해 주문자와 사진가가 모종의 타협을 통해 생산한 사진이다. 사진가의 창조적 역량은 그가 아무리 유명작가라 할지라도 주문자의 요구에 통제된다. 사진가는 촬영하는 동안 고객의 취향, 주문자의 목적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게다가 촬영원고가 편집 디자이너에게 넘어가면, 그의 이미지에 대한 통제력은 적지 않게 약화된다. 대중이 접하는 최종 이미지의 선택과 편집 방식은 주문자, 디자이너의 몫이기 때문이다. 반면 예술작업은 어떤 특정인의 요구에 맞추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자유로운 선택, 작가의 감성과 취향을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한다. 물론 창작사진 역시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말해 작가의 작업을 통제, 지시하는 익명의 시선들이 - 큐레이터, 평론가의 비판적 시선, 혹은 관람객의 작가에 대한 기대지평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 배제되지는 않지만, 금전적 계약관계에 따른 '구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 물론 위의 사실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이 또 다시 구분되는 점은 상업사진과 사회와의 관계다. 상업사진은 주문자의 고객들로 여겨지는 사회계층의 정치적 성향, 윤리의식, 취향에 비위를 맞춘다. 사진가의 이념, 감성은 언제나 이미지 소비계층의 가치관, 취미 구조 아래로 유출되어 버린다. 반면 예술 사진에서는 작가의 그것들이 전면으로 부각된다. 관람객이 그것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를 기대한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베네통 광고의 파격적 정치이념, 윤리의식, 진보적 사회관은 결코 사진가 올리비에 토스카니 Olivier Toscani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류회사 베네통이 판매 목표로 삼는 사회계층의 사회이념, 윤리의식이다. 베네통 광고사진은 판매를 겨냥하는 소비계층이 역겨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놀라움이며, 원래 판매 대상에서 배제한 사회계층이 혐오하는 충격이다. 베네통 광고의 쇼크효과는 부조리한 세계 현실에 대한 사진가의 분노, 저항, 비판에서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베네통 의류의 잠재적 소비자들이 어렴풋이 느꼈던 혹은 분명히 실감했던 세계의 부조리함을 유추하여 제작한다. 따라서 토스카니는 자신의 사회 윤리적 관점을 시각화하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이 계약을 맺은 의류회사의 잠재적 소비계층의 욕망과 윤리적 정당성을 자극하고, 베네통 의류를 결코 입지 않는 사회계층에게는 도덕적 불쾌함, 심리적 불편함을 안겨주는 광고인인 것이다. ● 분명 상업사진은 예술사진에 비해 사진가의 자발성, 자율성, 자족성을 약화시키고 제한하는 사진의 거대 영역이다. 사진가라는 개인의 상상력, 지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대의 경제, 사회적 조건, 취향, 도덕의식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상업사진은 소비를 담당하는 특정한 계층의 가치관, 윤리 정서를 거스르거나 초월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을 북돋아 주고, 그것의 정당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변해야만 한다. 예술사진도 이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어찌되었건 이러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상업사진은 사진이 통용된 사회와 시대의 역사적 조건에 맥없이 묶여있다. 시대를 벗어나려는 의지보다는 시대의 제 조건에 안주하려는 속성 때문에, 상업사진은 특정 시대의 사회의식에 상당히 종속된 양상을 보여준다. 기념사진, 초상사진, 혹은 패션사진, 영화사진 모두는 그것을 유통시킨 사회의 제 이념과 취향에 충돌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상업사진을 소비한 사회의 경제적 조건, 사회규범, 유행에 충실한 양상을 보여준다. 게다가 값싼 상업사진과 무능한 상업사진가의 작업은 시대의 통념, 취향을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보인다. ● 이렇게 한 특정 시기의 경제적 조건, 사회적 규범, 유행에 종속된 상업사진은 미학적 관점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특정 시기 동안 한 사회를 지배했던 인식체계, 감성체계를 적나라하게 혹은 과장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 시대의 가치관과 유행의 단면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생활사 연구의 한 중요한 자료이다. '상업사진의 변천사'는 시대적 특징에 긴밀하게 연결된 상업사진의 속성을 활용하여 한국 생활사의 단면을 재구성해 보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형편없는 사회적 지위 속에서 시대의 요구에 철저히 순종해온 한국의 상업사진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다면,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지층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쉽게 검토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대중의 제 요구와 욕망들을 미리 알아서 수용한 한국의 상업사진은 그야말로 객관성을 표방한 어떠한 역사적 자료보다도, 지성과 상상력을 표방한 어떠한 예술보다도 한 시기의 사고체계, 감성구조를 어설프지만 숨김없이 표상한다고 기획자는 믿었다. 왜냐하면 역사적 자료는 특정 권력과의 이해관계, 혹은 집필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변형시킨다. 이 '객관화' 속에서 대중의 속된 사고, 표리부동한 윤리의식, 혹은 변덕스런 취향은 증발된다. 예술의 지성과 상상력 속에서 대중의 혼돈스러운 이데올로기, 상투적 가치관, 고상치 못한 취미는 거세되고 승화된다. 오히려 상업사진은 세속적 대중을 '객관적으로' 변형시키지 않고, 현실의 정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지 않는다. 상업사진은 평균치를 가늠하기 힘든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또한 생산자 역시 그리 큰 지성과 명민한 상상력을 갖지 않은 까닭에, 객관적 담론이나 예술보다 훨씬 단순한 내용을 알기 쉬운 어법으로 전달한다. 그리하여 상업사진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면, 지난 시대의 제 현실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노정된다. 과거의 통념적 가치관과 취향이 적나라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객관적 분석이 간과한 대중의 일상사가, 심오한 상상력이 경멸했을 세속적 개인사가 그 허접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상업사진의 변천사'는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는 안수영이 재해석한 소위 '사진관사진'이며, 둘째는 영화포스터, 스틸사진을 재해석한 김진형의 작업이며, 셋째는 패션사진의 제 양상을 재현한 이태성의 작업이다. 이들이 과제기획전 '상업사진의 변천사'에 초대된 것은 위의 세 분야와 각각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안수영은 약 2년 전부터 디지털 시대와 더불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전통적 사진관의 외양을 담는 도큐먼트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김진형은 영화 스틸작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이태성 역시 패션모델의 포트폴리오 사진 제작을 경제적 방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세 작가 모두는 한국 상업사진에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과제형식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은 그들의 현실적 작업에도 반성과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길지 않은 기획전 준비기간에 누구보다도 빨리 적응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 안수영은 기념사진을 통해 한국인이 대소사(大小事)를 맞이하여 이상적 자아와 행복의 이상을 어떻게 표상하는지를 역사적으로 검토했다. 그가 보기에 사진사의 카메라 앞에 선 인물들의 표정, 포즈, 복장, 배경, 소품 등은 모두 그들이 속해 있는 시대와 계층이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품위와 안녕을 보여주는 사진적 장치들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상징체계, 알레고리로서 그 구성요소들은 한결 같이 이상적 행복과 품격의 자아라는 시니피에 signifi?를 지향한다. 특히 결혼과 돌사진은 안수영이 보기에 한국인의 사랑과 자식의 행복에 대한 통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이미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든 결혼사진, 돌사진이 이상적 행복, 자아행복이라는 동일한 시니피에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사회적 계층에 따라 그 시니피앙 signifiant들은 다양하게 그러나 판박이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 결혼사진을 예로 들면, 현대 이전의 신혼부부 포즈는 거의 언제나 부동의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다. 무표정을 지향하며 신랑과 신부의 육체적 접촉은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서로에 대해 냉담한 신혼부부의 예식복장은 초라한 경제적 조건을 암시한다. 서구귀족들의 파티복을 입고, 미소 지으며 입 맞추는 오늘날의 예식사진과 비교해 보면, 지난 시대의 예식사진은 오히려 '이혼식' 사진이다. 그러나 오해가 없도록 하자. '못살던' 시절의 예식사진 역시 이상적인 결합, 이상적 자아의 재현이다. 신부와 신랑의 경직된 자세는 '자연스러움', '사랑의 분위기'를 희생시키지만, 이미지를 통해 자아를 재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어떤 실수의 위험을 축소하는 것이고, 스스로가 미리 규정한 자아의 이미지를 어색하지 않게 제시하는 방식이다. 더욱이 식민지, 전쟁, 독재, 유교적 위계질서에 짓눌린 한국의 역사적 상황은 타자에 대한 정신적 열등의식과 더불어 신체적 열등감까지 내면화시켜, 자신을 과시하는 이미지의 연출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자세는 한편으로는 타자에게 품위 있고 고상한 이미지를 주려는 심리의 표현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의 존경심과 예의범절을 요구하는 포즈이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애정의 표현을 절제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었던 시대의 표현이다. ● 안수영의 돌사진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이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추적한다. 남아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낸 돌사진 속에서 그는 유교사회의 남근 우월주의를 목도한다. 연예인 혹은 동화 속의 왕자와 공주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오늘날의 '베이비사진'을 통해서 작가는 경제적 부에 대한 환상과 신분 상승의 욕망을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젊은 부모들의 욕망을 본다. 이런 점에서 보면, '베이비사진'은 돈과 실, 연필을 놓고 아이의 부와 장수, 높은 학문을 기원했던 돌잔치상의 현대판 변이형인 셈이다. 자식에 대한 욕망의 시니피에는 변치 않았지만, 미적 취향, 감성의 구조가 서구화되어, 성공과 출세라는 기호의 시니피앙만 바뀌었을 뿐이다. ● 김진형은 두 가지의 주제로 한국 영화사진의 변천사를 재구성한다. 첫 번째 시리즈는 영화 속의 남성들이 폭넓은 의미의 '권력'에 대해 어떤 행태를 보여 왔는가 하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권력에 대해, 유신독재에 대해, 혹은 자신의 적대세력에 대해 남성 캐릭터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그들의 포즈와 태도를 통해 보여준다, 만주의 협객은 권력을 향해 침착하게 총을 겨누고, 명동의 깡패는 적대적 세력에 단호히 맞선다. 병역 신검장의 '병태'는 팬티바람으로 권력에 대해 거수경례를 한다. 개인을 초월한 권력 앞에서 점점 왜소해지는 한국 남성의 진화상을 표상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대한 남성적 태도를 상상하는 시대적 재현일 뿐이다. 왜냐하면 재현 representation에는 재현의 주체, 즉 시대의 전반적 이데올로기가 그럼직하다고 vraisemblable, 이상적이라고 ideal 믿는 허상이 밑그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진형이 지난 영화에 '의거하여' 재현한 만주 협객과 명동 깡패의 권력에 대한 도전, 권력에 향한 집착은 권력에 대한 과거 남성들의 실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에 철저히 복종된 현대 남성의 시대가 회고적으로 미화하는 허구일 뿐이다. 협객 영화, 깡패 영화는 권력에 저항할 수 없고, 저항하지 않는 남성들로 채워진 사회가 일종의 심리적 보상책으로서 꾸며낸 픽션이다. 권력에 옹졸하게 저항하고 편입되는 현대 남성의 상황에 대한 일시적 도피일 뿐이다. 작가는 남성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권력에 대한 심리적 양태의 시니피앙으로 강렬한 손의 포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 김진형의 두 번째 시리즈는 50년대 멜로 영화에서 전성기를 맞은 현재의 영화까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남성에게 자신의 전부를 맡기는 수동적 여성에서 청순가련형의 캐릭터, 그리고 남성의 포옹을 거부하는 현대의 여성까지 특정 시대가 수긍하고 공감했던 남성성과 여성성의 포즈들을 재현한다. 그리하여 각 시대가 상상했던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정의 definition의 변화가 선명히 게재된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성적 역학관계의 변모가 지난 영화사진에 대한 김진형의 해석 속에서 선명히 포착된다. ● 이태성이 다루는 패션사진은 한편으로 대중이 욕망하는 이상적 외모의 환상을 반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상적 외모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창출한다. 패션사진은 한 시대와 사회의 경제적 여건, 성과 육체에 관한 개념, 색과 형태에 대한 취향 그리고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참조하면서 대중의 소비욕망을 자극한다. 따라서 패션사진의 변천사는 필연적으로 시기에 따른 미에 관한 취향, 성 정체성의 관념을 보여주게끔 되어 있다. ● 이태성이 보기에 한국 패션사진은 제작 테크닉과 제 경향에 있어서 두 시기로 구분된다. 한국 패션사진이 태동하는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가 그 한 시기이며, 1990년대 이후가 그 두 번째다. 전자의 사진적 장치는 두 가지 특성을 드러낸다. 첫째는 스튜디오의 단순한 배경에서 마치 모델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 형식을 취한다. 촬영앵글과 조명 테크닉에 있어서도 스튜디오 인상사진의 문법을 존중한다. 옷 그 자체의 스타일만을 보여주려 노력하며, 일반적으로 두 명 이상의 모델이 등장하고 모델의 시선과 손은 화면 바깥쪽을 향한다. 그리고 고립된 1장의 이미지가 완결된 형태로 제시된다. 이것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패션사진이 인물사진에서 분화된 장르임을 말해준다. 화면 바깥쪽을 지향하는 포즈는 모델을 이상화시키는 상투적인 수법으로, 선전 의상의 고상함, 비세속성을 지시한다. 다시 말해 현실의 프레임을 손과 시선의 포즈로 넘어서게 함으로써, 패션모델에 일종의 초월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상한 정신성, 일상에 찌들지 않은 귀족적 품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의 한국 패션사진은 남성 우월주의를 육화한다. 여성은 남성의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여 남성에 순종적인 포즈를 취한다. 남성의 성적 과대망상증에 부응하기 위해 남자 모델 한 명에 복수의 여자 모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 그러나 1900년대 이후, 여권 신장, 여성의 경제력 증대, 남성적 권위의 쇠퇴, 성 개방 등과 같은 사회 풍조의 급격한 변화는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를 조장하는 패션사진을 유행케 한다. 남성은 여성적인 복장과 포즈를 취하며, 여성은 남성의 복장과 포즈를 차용한다. 이제 여성과 남성은 서로 대등하거나 간혹 여성이 상황을 주도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방된 성윤리 의식은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패션사진의 증대를 가져왔고, 금기시 되었던 동성애에 대한 개방적 논의는 동성끼리의 성행위를 암시하는 패션 사진의 급증을 가져왔다. ● 이러한 오늘날의 패션사진은 인상사진의 형식적인 포즈, 상투적인 제스처를 금기시한다. 연출을 은폐하는 자연스런 포즈, 다시 말해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는 것은 최근 패션사진의 규범이다. 그 결과 야외 로케이션과 데이라이트 싱크로 daylight synchro 촬영을 선호하고, 즉흥적 스냅사진처럼 내보이기 위해 로버트 프랭크 Robert Frank, 개리 위노그랜드 Garry Winogrand, 알렉산더 로드첸코 Alexander Rodtchenko의 아웃 오브 포커스out-of-focus, 기울어진 앵글 등을 선호한다. 또한 작금의 패션 사진은 단일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장의 이미지로 구성되어져 일종의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동화나 신화의 스토리를 변용시키거나, 유명 영화의 스토리 보드를 차용하여 어떤 이야기의 연상을 자극한다. ● 기념사진, 영화사진, 패션사진의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을 재현 대상으로 삼는 '상업사진의 변천사'는 한국 상업사진의 기원과 변화 양상을 추적하고, 그것을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관련하여 비평, 패러디하는 작업이다. 세 작가 모두는 그것들에 담긴 사회학적 기호들을 과장하여 재현한다. 그리하여 한국 현대사의 일상을 특징짓는 가치관의 변모와 그 단층의 특징을 흥미롭게 일별한다. ■ 최봉림
사진의 현주소를 읽는 4인의 기획전 소개 ● 한국의 중견사진가들을 꾸준히 소개해오던 한미사진미술관은 새봄을 맞이하여 한국사진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짚어보는 야심 찬 기획전을 선보인다. ●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4명의 기획자들(최봉림, 신수진, 강태성, 박영숙) 은 사진이론가와 비평가들로 직접 기획에 참여하여 사진의 현주소를 전문가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기존의 기획전 방식에서 벗어나 기획자마다 독립적인 주제를 채택하고 2~4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각 4주씩 릴레이식으로 전시를 구성한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전시방법은 각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과 기획자들의 시각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에게 끊임없는 흥미와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 화려한 색감의 사진, 현대를 대표하는 컴퓨터 이미지, 동영상 등의 사진적 어법이 바탕이 되어 시각적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미지의 차용과 패러디를 통해 사진의 의미와 본질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 2005년 4인의 기획전은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외 젊은 사진가들의 참신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획자들이 바라보는 사진의 현주소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사진의 비중이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각 전시마다 계획된 세미나는 기획자와 작가들이 관람객들과 직접 만나 현대의 한국사진에 대해 토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한미사진미술관
사진의 현주소를 읽는 4인의 기획전 일정 2005_0305 ▶ 2005_0402 / 1부 『상업사진의 변천사』_책임기획 최봉림 2005_0409 ▶ 2005_0507 / 2부 『Passion in Fashion』_책임기획 신수진 2005_0514 ▶ 2005_0611 / 3부 『겉과 것』_책임기획 강태성 2005_0618 ▶ 2005_0716 / 4부 『여성 그리고 신기루』_책임기획 박영숙
Vol.20050305a | 상업사진의 변천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