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종영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223_수요일_04:00pm
주최_국립현대미술관, 김종영미술관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展 2005_0224 ▶ 2005_051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1, 2 전시실 Tel. 02_2022_0600
김종영의 정물드로잉展 2005_0224 ▶ 2005_0515 갤러리 원 Tel. 02_514_3439
학술 발표회_'한국현대조각과 김종영' 2005_0326_토요일_02:00~06:00pm 한국 근 현대조각에 있어서의 모더니즘_최태만 김종영의 조각-서구 및 다른 작가들과의 영향관계_김정희 김종영 조각 및 드로잉에 나타난 동양성_김현숙 김종영의 드로잉연구_마순자
김종영미술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Tel. 02_3217_6484
김종영미술관(관장 최종태)은 에서는 『多 · 景 · 多 · 感』 : 조각가 김종영의 풍경 전을 2월 25일부터 5월 15일까지 개최합니다. 형태의 본질을 찾는 예술가 김종영 선생의 풍경 드로잉들에서 천착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연'의 의미를 파악하고 조형미를 구현해나간 과정을 밝혀보고자 마련한 전시입니다. ● 2005년 봄을 맞이하는 의미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 새해를 기다리는 세한도들을 필두로, 겸재 정선의 그림을 방(倣)한 그림, 북한산 풍경, 동네 풍경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선보입니다. 또한 학창시절 졸업여행으로 다녀온 금강산 풍경그림과 김종영만의 붓솜씨가 무르익은 70년대의 금강산 풍경그림들을 대조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였습니다. ● 추상미술을 접하면서 큰 돌파구를 찾은 것 같다고 한 김종영에게 있어 작품의 소재는 주변의 인물이나 식물, 산, 자연들이었습니다. 김종영이 천착한 자연관은 이분법적인 외적 대상으로서 자연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파악하며,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의 자연관, 자연 속에서의 인간, 즉 상호 조화의 관계로 해석되는 동양의 자연관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와 같이 '스스로 그러함'의 상태를 형태적으로 하지만 산마다, 주변의 모습을 실경처럼 그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며, 다만 그 대상-자연 속에서 물리적인 의미의 '자연'을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자연'의 본질적인 실체를 지닌 무언가를 동경한 채 대상을 대한 것이 김종영의 평면의 소재들은 우리가 항상 접하고, 지나치는 평범한 사물들이자 대상 즉, 자연입니다. 그에게는 사실 설악산이니, 북한산이니 산마다의 산세나 형태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주변의 풍경 그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본질을 찾기 위해, 쉼 없는 사색의 흔적을 드로잉으로 남겼습니다. 김종영 특유의 먹과 붓을 주로 이용한 강한 터치들, 밑그림 없이 펜이나 여러 재료로 시원스럽게 그려낸 고유의 기법이 있긴 하지만 산마다, 주변의 모습을 실경처럼 그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며, 다만 그 대상-자연 속에서 물리적인 의미의 '자연'을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자연'의 본질적인 실체를 지닌 무언가를 동경한 채 대상을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 전시와 더불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김종영』전이, 갤러리 원에서는 김종영의 단아한 정물 드로잉들을 선보입니다. 같은 기간에 김종영의 예술세계를 연구하고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대거 마련되어 김종영의 작품세계를 연구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가 되고,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던 그의 추상세계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 김종영 미술관
예술에 미치는 자연의 힘은 오늘에 있어서도 결코 부정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옛날부터 자연은 그대로 미의 이상이고 예술의 모범으로 믿어왔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이천 여 년 전 희랍시대의 포도그림을 새가 쪼으려 했다던가, 실물과 너무도 같았기 때문에 그림인 것을 모르고 커튼을 걷어 올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며 우리나라 신라시대에도 솔거가 황룡사에 노송의 벽화를 그렸더니 가끔 새들이 앉으려고 날아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국 자연에 가까울수록 소위 신화라고 하여 가장 우수한 예술로 추대하는 일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러나 자연이 미의 표준이라 해서 일초일목(一草一木)을 그저 충실히 그리기만하면 좋은 풍경화가 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의 생체를 그대로 석고형을 만들어 주조한다고 해서 우수한 조각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그보다도 자연은 인간의 미에 대한 감각을 훈련시키는 의미에서 또는 정신을 길러주는 지표가 되는데서 예술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우수한 예술품이란 자연으로부터 미에 대한 훈련을 받은 예술가의 마음속에 자연의 인상과 인간의 감동이 같은 비중으로 반영되어 무리가 없이 잘 융화되는 대서 이루어 져야할 것입니다. ● 그리하여 자연과 능히 비교할 만한 작품이면 좋을 것이고 오히려 자연보다 더욱 충실한 미술적 힘을 가진 작품이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걸작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인력을 다해서라도 자연을 똑같이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솔거의 황룡사 벽화나 희랍의 포도그림이 지금은 다 없어 졌으니 알 수 없는 일이나 아무리 교묘하게 그려졌을 지라도 오늘날의 사진에야 비교가 되겠습니까. ● 자연은 인간의 힘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섭리 아래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어줍잖은 풀잎이라도 그 녹색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모양은 어떻게 해서 된 것이겠습니까. 현미경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자연계에는 광선이라던가 공기라던가 열에서 생기는 거대한 힘이 있으니 이러한 자연 현상을 지필(紙筆)과 손끝으로 모방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인류는 면면 수천 년을 두고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거기서부터 길러진 미에 대한 감각과 정신의 감동을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들을 종이에다 그리기도 하고 혹은 돌에 새기기도 하여 자연에서보다 더 재미있게 보고 즐겨왔으니 역시 예술에는 자연현상 이외에 인간의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로서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지마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실상 예술은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고 한 사람의 마음 일지라도 때에 따라 심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가지가지 마음에 따라 제각기 자연현상에서 자기의 예술을 위해서 선택하고 또는 표현방법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자연은 언제나 여유 있게 어떠한 예술을 위해서도 그 재료를 제공해주는 것이지마는 인간의 마음에 따라 자연을 선택하고 또는 마음의 표현을 위해서 방법을 고려하는데서 소위 예술의 시대성이라던가 개성이라던가 또는 예술의 상징성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그와 동시에 인간은 시간적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는 지역적으로 어떤 민족이나 개인의 차별을 초월한 공통적인 인간성이란 것이 있습니다. 예술은 이러한 인간의 근본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따라 선택한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라든지 어떤 특정의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만인이 똑같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인간은 하나의 약속아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우리는 흔히 저녁노을이 펼쳐진 높은 하늘에서 영웅적인 장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비옥한 평야는 어딘지 교훈적이고, 햇볕에 반짝거리는 물결은 명랑한 환희에 비할 수 있을 것이고 광란은 분노와 같이 보입니다. 거대한 암석이나 산악은 침묵적인 존엄성과 더불어 우리에게 항상 안도감을 주는 것 입니다. 그 반면에 날카롭고 뾰족한 데서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자연현상을 인간에 비교해서 보기도 하고 직접 어떤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러한 자연과 인간과의 심리적 관계는 색채라든가 물질의 질감이라던가 혹은 운동이라던가 혹은 면적이나 수량, 거리, 공간 같은 데서도 무수히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정서를 가진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욱 다채로운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오관은 자연을 감각하기에 가장 적절하게 되어있어 어떠한 정묘(精妙)로운 기계일지라도 인간의 감각기관이 가진 능력을 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묘한 기능을 가진 우리의 기관을 통해서 인류는 무수한 자연을 보고 느끼는 동안 민족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역적인 습성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전 인류가 공통된 감정에서 생활하기 까지 되었던 것이고 동시에 이 감정의 공통성은 예술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김종영
아침마다 출근하는 도로에는 김종영 선생의 「세한도」에서 본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나무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몬드리안(네덜란드, 1987~1944)도 나무에서 수직 수평의 추상 형태로 귀결시켰을 때는 가지의 구조가 드러난 겨울이 아니었을까 상상도 해본다. (실제 몬드리안은 겨울 풍경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이 전시는 김종영 선생의 풍경드로잉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학생시절 졸업여행으로 다녀온 금강산을 그린 오래된 그림을 소개하게 되었으며, 겸재 정선의 그림을 방(倣)한 그림, 북한산 풍경, 동네 풍경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선보인다. ● 예술가마다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대상과 목적은 각각 다르다. 인간생활의 모든 모습이 예술로 표현될 수 있으며, 물리적인 것 혹은 본질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것 그 어떤 것도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술이란 인간세계의 모든 모습의 발현이라고 할 때 플라톤의 미메시스(Mimesis)이론(모방이론)은 '예술'과 상당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모습에 관한한 모든 것을 모방하며,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모방능력이 뛰어나 모방된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본성이 있다고 말한다. 김종영이 탐구한 추상이론은 물질적인 외적 재현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정신적인 인간의 내면 모습을 모방한다는 의미에서 비록 현실적 대상의 모방으로 출발한 미메시스 이론이지만 서로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 '추상미술'은 사전적 의미로 '일반적으로 그 표현이 물적, 객관적인 대상을 떠나, 주관적 순수 구성을 표시하는 미술' 이라고 한다. 20세기 미술에서 추상미술은 내면의 정신적 순간만을 강조하여 초현실주의로도 발전하지만,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가 말하는 거대한 외적 공간에 대항하는 본질을 추구하는 추상충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넘어서 참된 실재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세계, 본질의 세계를 추구하도록 하여 지금의 추상미술로 거듭나게 된다. 본질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김종영의 다양한 탐구과정들은 내적 세계에 대한 '미메시스적 본능'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 추상미술을 접하면서 큰 돌파구를 찾은 것 같다고 한 김종영에게 있어 작품의 소재는 지난 전시에서 밝혔듯이 주변의 인물이나 식물, 산, 자연들이었다. 매우 흔한 주변의 대상으로부터 김종영이 탐구하고자 한 본질적 세계관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 '자연'이란 개념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어 시원스럽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원래의 어원은 그리스어 'physis'에서 나온 것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연'의 개념보다 포괄적인 전 우주적 생성과 소멸을 내포하는 말이었다. 이는 나중에 라틴어 'natura'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부터 본래의 physis 가 지녔던 포괄적인 사물의 본질이란 의미는 제거된 채 인간을 위한 목적론적 의미가 강조되어 물질주의적인 서양의 자연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 김종영이 천착한 자연관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외적 대상으로서 자연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파악하며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의 자연관, 자연 속에서의 인간, 즉 상호 조화의 관계로 해석되는 동양의 자연관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으로서의 자연을 강조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상태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김종영이 자신의 원고에서 밝힌 "창조라는 낱말은 나에게 없다. 다만 자연에 물체가 자연스럽게 있듯이 나의 조형세계는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실재로 노자 사상을 즐겨 접했다는 유가족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김종영의 작품의 천착 대상 즉, 그의 자연관이 드러나게 된다. ● 서양에서도 반드시 이분법적 자연관만 팽배한 것은 아닌데,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디드로는 미메시스의 대상으로서 '자연'에 대해 그것은 '아름다운 자연'도 아니고, 단순히 자연을 가장 완벽하게 모사한 예술 작품으로서도 아닌, 이와 같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대립을 이루는 '진(verite)스러운 본질' 곧, '모방될 만한 자연'을 강조한다. 물질적인 자연의 형태를 쫒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본질? 실체를 구현하고자 한 디드로와 노자의 무위자연은 김종영이 자연이란 소재를 통해 밝히고자 한 세계관을 뒷받침 한다. ● 김종영의 평면의 소재들은 우리가 항상 접하고, 지나치는 평범한 사물들이자 대상 즉, 자연이다. 그의 발표 되지 않은 많은 드로잉들과 남긴 유고를 보면 그는 특별한 대상을 찾기 위한 여행이나, 연구 소재를 찾고자 고민한 흔적은 없다. 바로 옆에 있는 일상속의 대상, 사물, 자연을 끊임없이 그렸는데 심지어 작가가 제작하였던 작품까지도 다시 드로잉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늘 근원의 형태를 고민하였으며, 자연(physis 의미의 자연)과도 같은 본질 세계를 추구하고자 고심하였으니 그 흔한 주변의 대상인들 새로운 대상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평범한 대상을 한번 그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먹으로 그리고, 펜으로 그리고, 먹과 펜으로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 김종영에게는 설악산이니, 북한산이니 산마다의 산세나 형태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삼선교이니 동숭동이니 중요하지 않다. 창 밖에 보이는 주변의 풍경 그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본질을 찾기 위해 쉼 없는 사색의 흔적을 드로잉으로 남겼으며, 꾸준히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토너와 같이 대상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열망을 묵묵히 드러내고 있다. 김종영 특유의 드로잉의 기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먹과 붓을 주로 이용한 강한 터치들, 밑그림 없이 펜이나 여러 재료로 시원스럽게 그려낸 고유의 기법이 있다. 하지만 산마다, 주변의 모습을 실경처럼 그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며, 다만 그 대상-자연 속에서 물리적인 의미의 자연을(natura 의미의 자연)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자연(physis 의미의 자연)의 본질적인 실체를 지닌 무언가를 동경한 채 대상을 대한 것이다.
김종영의 풍경 드로잉은 그의 조각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추상과 곡선적인, 유기적 추상 형태로 발전한다. 4전시장의 도시 풍경에서는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로 전이하는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지만, 산 풍경에서는 두 가지 형태를 다 볼 수 있다. 김종영의 드로잉들에서 추상 형태를 의식적으로 연구한 흔적이 많은 1958년 드로잉들을 제외하고선 연도와 서명(signature)을 가린다면 50년대 그림인지, 70년대 그린 그림인지 구분이 힘들 때가 있다. 물론 차이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래전에 연구했던 형태들이 연도나 재료, 소재에 구애 받지 않고 다른 시기에 등장하는 것을 볼 땐 어느 시점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연구하였으며, 유기적인 추상을 연구하였는지를 밝히는 것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듯 하다. 서양미술에서 이 둘은 각기 다른 사조로 발전하지만, 김종영의 본질을 탐구하는 큰 관심 안에서는 시각적 형태만 다를 뿐 어떠한 형식 구분 기준도 될 수 없을 듯 하다. ● 미술관에 있으면서 가장 당혹스러울 때는 '추상'이 무어냐고 묻는 관람객들을 대할 때이다. 김종영의 조각을 보고 다짜고짜 "추상"이 무엇이냐 물으며 특정한 대상과 전햐 닮지 않았는데 어떻게 본질을 논하는 것이냐고 묻는 그들에게 어떻게 김종영 선생의 작품 세계를 알려야 할지는 앞으로도 풀어야할 숙제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연구자가 장황하게 설명하기 전에 그의 수많은 드로잉들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실마리를 풀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무엇을 만드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더욱 열중하며 작품이란 미를 창작하는 것이라기보다 미에 근접할 수 있는 형태 연구라고 말하는 작가의 연구 과정이자 결과들이 말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 이 전시와 더불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 김종영』전이 열리고 있다. 또 갤러리 원에서는 김종영의 단아한 정물 드로잉들을 선보인다. 같은 기간에 김종영의 예술세계를 연구하고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대거 마련되어 뜻이 깊다. 김종영을 아는 이에겐, 그의 작품세계를 연구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가 되고, 그를 모르는 이에겐 조금이나마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추상세계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권연진
Vol.20050227a | 조각가 김종영의 풍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