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너라면

이순주 회화展   2005_0223 ▶ 2005_0314

이순주_삼각관계_캔버스에 혼합재료_35×50cm_1997/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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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223_수요일_06:00pm

쌈지길 내 아랫길 갤러리 쌈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Tel. 02_736_0088 www.ssamziegil.co.kr

이순주의 환상 세계 "이 몸이 너라면" ● 이순주는 무의식과 욕망의 기저를 건드리는 환상적 작업으로 우리의 의식을 각성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은 현실계를 초월하고 인간조건으로부터 벗어나는 대리만족적, 대안적 이상향이 아니라 현실계와 인간조건에 대한 성찰과 비판으로 특징지워지는 전복적 비전을 의미한다. 이순주 작업이 제시하듯이, 환상의 본질은 문화적 속박, 부재와 결핍을 보상하려는 욕망으로서, 침묵당하고 은폐되고 소외된 것을 들추어내려는 재현적 시도에서 환상적 예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환상적 재현은 지배적 문화 질서의 전복을 시도하지만 기존 문화 질서의 토대로부터 출발하는 까닭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배적 또는 피지배적 언어를 사용하면서 규범의 어두운 부분들을 은폐시키거나 노출시키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현실적 맥락과 타협하는 동시에 그 한계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환상적 재현의 이중성이다. 완전하고 통합된 현실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보다는 현실과 비현실, 이상과 일상, 질서와 무질서, 의식과 무의식, 사회와 개체, 주체와 객체의 경계에서 욕망의 성취와 상실을 경험하는 이중성으로부터 환상적 재현의 힘이 주어진다. ● 이순주는 바로 그러한 경계에서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양면을 새로운 관계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이 몸이 너라면"이라는 이번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성과 의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새로운 관계가 작가 특유의 환상 세계를 일궈낸다. 욕망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그 환상 세계에서는 사람과 동물,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회의 관계가 더 이상 인간중심적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이며, 변형적이고 괴기하고 위반적이고 섬뜩한 "언캐니"의 영역이 문화적 고정성과 안정성을 대치한다.

이순주_딴 생각_종이에 과슈_50×60cm_2002

언캐니의 영역에서는 형상적 언어가 담론적 언어를 선행하는데, 그것은 응축과 치환이라는 프로이트적 심리학적 수사에 의해서이다. 이순주는 응축과 치환의 수사를 블랙 코미디의 옷을 입혀 희화화 한다. 나이들고 군살붙은 바비인형, 바코드나 브랜드 로고가 명기된 명품 아기들, 샤넬 마크가 새겨진 명품 강아지, 손바닥에 그려진 王자 손금 등이 욕망과 좌절의 이중성, 인간의 "개같은 욕망"을 은유한다. 그녀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바바리 체크무늬와 군사용 위장무늬의 병치 역시 유행과 이데올리기의 획일성과 상호침투성, 그리고 그에 내재된 인간무상의 "바니타스"를 암시한다. 이 작가에게 응축과 치환은 애매모호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배추를 먹고 있는 입인지 입에서 배추모양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도상, 총이 손가락이 되었는지 손가락이 총으로 변했는지, 국수가 혀가 된 것 인지, 혀가 국수로 변한 것이지.... 이러한 애매모호성이 그녀의 작업에 숨통을 터주는 여백이자 자유 독해를 위한 미완성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이순주_명품_캔버스에 유채_2005
이순주_토끼_캔버스에 유채_2005
이순주_한입_종이에 혼합재료_2005

대부분 작은 도로잉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 몸이 너라면'이라는 유화이다. 100호 넘는 크기나 전시와 동일한 제목에서 뿐 아니라 도상적 의미에서 동 전시의 대표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조선조 선비 초상화풍을 차용한 이 그림의 주인공은 수염난 얼굴은 늙었지만 하부 다리는 젊고 건강한 야릇한 이중적 모습의 선비이다. 그는 앞으로도 뒤로도 걸어갈 수 있는(없는) 양방향의 신발을 신고 있다. 결국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 이 고매한 선비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체된 우리 문화의 헛된 위엄을 상징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림 배경은 군사용 위장무늬가 구름처럼 떠도는 꿈같은 환상적 분위기로 꾸며진다. 죽음과 삶, 젊음과 늙음, 과거와 현재, 진보와 퇴행, 현실과 환상의 이중적 질곡으로 짓눌린 인간의 본질적 모습이 그가 들고있는 해골로 암시되는 듯하다. ● 이순주는 응축과 치환의 형상언어, 축약적이고 상징적인 일종의 '픽토그램'으로 인간의 내면적 욕망, 갈등, 폭력, 아이러니를 환상화한다. 사회적, 정치적, 심리학적, 생물학적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포착하여 명시적이라기보다는 은유적으로, 도식적이기보다는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까닭에 그녀의 도상은 퍼즐게임과 같이 난해하고 흥미진진하며 환상적이다. 그러나 그녀의 환상은 초월적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통찰을 통해 이루어진 고삐달린 환상이다. 결국 작가는 환상적 재현을 통해 욕망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현실의 맥락에 재위치시킴으로써 문화적 질서의 통제와 억압에 대해 진술하는 바, 이것이 이순주 환상 세계의 존재론적 특징이자 인식론적 의미이다. ■ 규곡 김홍희

Vol.20050224b | 이순주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