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는 침묵의 공간

전수경 회화展   2005_0223 ▶ 2005_0301

전수경_섬Ⅰ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52×69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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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223_수요일_05:00pm

학고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각성하는 침묵의 공간 / 최근 전수경의 "독백" 연작 ● 2002년 봄 첫 개인전에서 전수경이 "여섯째 날"연작(The 6th Day Series)을 발표했을 때 벗은 몸이라는 대상과 수묵이라는 방식의 결합은 몇몇 이웃의 관심어린 눈길을 받았다. 누드는 몸의 아름다움과 그 열망에 관련된 서구적 개념이고 수묵의 전통에서 누드가 그려진 사례가 드물다. 그의 누드는 개별적 인물의 재현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고 명상의 수묵이 여기에 적합한 것처럼 비쳐졌다. 전수경의 누드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곧 그에게 한국미술신예작가상이 주어지게 했고 마카오(Macao)의 민정총서(民政總署) 초청으로 현지에서 개인전을 갖게도 했다. 이후 3년의 짧은 기간에 다섯 차례 넘게 기획된 개인전들에서 몸에 대한 전수경의 회화적 시도는 요란한 표시 없이 잠잠하게 지속되어왔다. 학고재에서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미술가의 지난 3년간의 실험을 회고하고 첫 개인전에서 보인 수묵의 변형 가능성을 가늠할 기회가 될 것이다. ● 이번에 걸리는 전수경의 "독백"연작(Soliloquy Series)은 "여섯째 날"연작에서 다룬 탄생, 고뇌, 고립과 같은 인생의 알레고리에 관한 주제를 발전적으로 전개한 결과물들을 담고 있다. 최근의 연작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병리적 증세를 다룬 "몽유?불면"버전(Sleepwalking?Insomnia Version ), 신에 대한 인간의 조건을 다룬 "세상으로"버전(To the Earth Version) 그리고 독립된 인간의 존재를 다룬 "고독"버전(Solitude Version)으로 구성된다. 이 버전들은 과거의 연작에서 다룬 주제들보다 더 개별화된 듯한 제목을 달고 있다. 과거의 연작이 발묵과 같은 붓의 작용에 의한 칠이 주된 표현인 반면 최근의 "독백"연작은 칠뿐만 아니라 콩테나 목탄을 이용한 소묘를 적용하고 있고 벽화제작에 쓰이는 고전적 방식인 전사기법(transcription)까지 활용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외관을 띠고 있다. 나는 이 변화들 속에서 전수경이 유지해온 일관된 탐구에 주목한다. ● 아우성 최근에 제작된 전수경의 "독백"연작에서 가장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몽유·불면"버전이다. 여기서 인체들은 군상을 이룬 채 떠 있다. 다수의 인물들이 서로 부딪는 소음이 전통적 주제인 최후의 심판을 상기시키고 각각의 인물들은 마치 웅장한 산맥의 봉우리들처럼 화면에서 산재해 있다. 과거 전수경의 화면과 최근의 다른 버전에서 누드는 홀로 있거나 기껏해야 둘을 넘지 않는다. 심지어 "몽유?불면"버전 중에는 색 안료에 의존한 칠이나 소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체마저 등장한다. 이 이질적 이미지는 오려진 종이나 그 여분으로 되어 있다. 이 버전의 화면에서 바탕의 종이에 반응하는 미술가의 손짓이 기록된 몇몇의 칠을 제외한다면 전수경이 지난 3년간 지속해온 동질성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번 연작의 실질적 변화는 바로 "몽유·불면"에서 거의 다 종합되어 있는 셈이다. ●"몽유 II"에서 화면 가운데에 등장하는 두 명의 누드들은 칠과 소묘라는 재료의 측면에서 동질성을 유지하지만 이들 각각은 이웃하는 배경과의 관계에서는 시각의 이질적 특성을 노출시킨다. 왼쪽의 인체가 배경에 대해 어두움의 덩어리로 다루어짐으로써 대상이 구별되는 반면 오른 쪽의 것은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음으로 구별된다. 이처럼 재료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배경과 대상간의 관계를 통해 상반된 성격의 인물이 한 화면에서 충돌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같은 버전 "몽유 III"에서 오른 쪽 상단에 누운 채 떠 있는 누드는 배경을 어두움으로 한 밝은 실루엣으로 독립된 대상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관람자는 순간 혼란스러워 한다. 밝은 실루엣은 실재로는 종이 그 자체이다. 관람자는 그것을 뻥 뚫린 구멍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하나의 형상으로 판독해야 할지 하는 시각적 곤경을 겪게 된다. ● 이러한 충돌과 대립은 전통적 회화공간(pictorial space)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형상(figure)과 배경(ground)간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그리고 동등하게 대비시킨 결과이다. 흰 종이에 떨어진 먹물을 주목하면 흰 종이의 바탕은 밀려가고 그 먹물은 다가온다. 이럴 때 종이는 배경이 되고 먹물은 형상이 된다. 여기서 먹물은 종이 바탕에 비해 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인지된다. 하지만 전수경의 최근 버전에서 제시되는 형상과 배경의 관계는 간간이 이러한 계층적 관계가 파괴되고 오히려 서로 대등하여 관람자는 스스로 판독할 순차적 관계를 찾지 못하고 만다. 시각적으로 상반된 속성의 충돌과 그 대등한 제시는 곧 시각적 연속성을 파괴하고 관람자에게 다른 감각기관의 경험으로 그 충격을 옮겨 가게 한다. 여기서 소음이 발생한다. 전수경의 "몽유·불면"은 이러한 소음의 동기들로 가득 차 있다. 가로로 상당히 긴 포맷의 규모를 하고 있는 이 버전 앞에서 관람자는 소음과 소음이 충돌하며 아우성대는 장대한 공간을 보게 된다.

전수경_독백Ⅰ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65×95cm_2004
전수경_몽유Ⅰ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50×134cm_2004

메아리 ●"세상으로"버전에서 누드는 자칫 전수경의 회화가 훈련기의 습작으로 비쳐질 정도로 대상에 집착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이 버전에서 인체는 광원(source of light)에 대한 뚜렷한 반응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의 과거 제작물에 비해 한 층 더 견고해진 양감이 신체에 적용되어 있고 피부의 미묘한 변화가 표현되어 있다. 양감과 표면은 전통적으로 현실에 실재하는 대상을 이차원 평면에 충실히 재현하기 위한 회화적 환각을 훈련할 때 강조되는 사항이다. 그와 함께 전수경은 거장이 제작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거장의 방식마저 자신의 화면에 과감히 도입한다. 그 누드들 중 일부는 인물의 본(model)을 회 칠된 벽면에 전사하기 위해 옛 거장들이 촘촘히 뚫린 구멍들로 그 윤곽을 복사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시도는 형태에 대한 전수경의 관심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대상이나 인물 그리고 이미 타인에 의해 제작된 이미지마저 자신의 것으로 가공하기 위해 평소 기록한다. 그 기록들을 작업실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에 몇몇 본을 만들게 되고 그것은 항상 새로운 기획을 위한 준비가 된다. 벽화의 전사기법은 전수경에게서는 자신의 삶을 옮기는 손쉽고도 지극히 회화적인 수단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 몸의 피부에 대한 관심과 미술가의 손끝이 직접 스치는 회화의 물리적 표면에 대한 관심이 전수경의 화면에서는 동일하다. 전수경은 그려진 대상과 실재하는 표면간의 통합을 이 버전에서 시도한 것 같다. 이는 미술가가 자신의 회화와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하다. 액체 매체에 의존한 칠이나 건조한 분말 매체가 미술가의 손에 의해 표면을 스치고 마름질되는 과정에서 재현물의 윤곽들 주변에 남게 되고 그 윤곽은 간간이 진동하고 간헐적인 움직임을 암시하게 된다. ● 그와 함께 전수경의 몸짓은 수평과 수직의 반복되는 방향감과 율동으로 자신의 몸짓을 남긴다. 이는 양감을 풍부하게 하고 또한 인체의 표면에 반사되는 광선의 변화를 암시한다. 관람자는 이 버전의 견고한 인체의 표면에 자신의 시선이 닫는 순간 형태를 결정하는 윤곽이 움직임으로 암시되는 스침과 섬세한 격자구조의 반복된 율동을 감지하게 된다. 관람자는 광원에 반응하는 신체의 표면을 그 누드에서 보는 한편 그 신체에 반응하는 자신의 시선을 촉감처럼 의식하게 된다. 스침의 반복적 암시, 광원의 반사, 시선에 대한 촉각과 같은 관람자의 육감적 의식은 미술가의 몸짓과 체온이 기록된 표면에서 뛰어 나오는 기운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이를 관람자는 자신의 인식으로 정리하고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메아리로 진동하는 표면을 보게 된다.

전수경_몽유Ⅱ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50×134cm_2004
전수경_몽유Ⅲ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50×134cm_2004

침묵 ● 전수경의 화면에 등장하는 누드들은 얼굴이 없거나 가려져 있다. 토르소의 전통은 이목구비와 손발이 갖는 노골적인 서술 대신에 몸의 진솔한 시각을 탐구하고자 하는 관습에서 유래한다. 그의 절단된 누드는 이러한 탐구와 연관되어 보일 법하다. 하지만 그의 누드에서 신체의 절단이 인위적이지 않고 배경이나 발묵과 같은 칠에 의해 가려진 것으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그 누드는 몸을 감추거나 애매한 장식으로 수줍음의 감정을 구걸하지도 않는다. 노출의 당당함을 주장하되 요란스런 요염함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표현이 관람자에게 아우성으로 그리고 메아리로 들린 것이다. ●"독백"연작의 또 다른 구성물인 "고독"버전은 최근에 보이는 외관들의 변화에 비해 미술가의 이웃들이 가졌던 처음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들은 다양한 시도와 그에 따른 미술가의 변화들 속에서 면면히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그의 회화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고 또한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축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고독"버전은 전수경 회화의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관련지을 편의적 특성들을 많이 갖고 있다. 이 그림들에 등장하는 누드는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자세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잠들거나 앉은 몸짓을 하고 있다. ● 이 버전 중 하나인 "독백 I"에서 왼쪽에 있는 일군의 형상들은 칠과 소묘로 구성된 오른 쪽의 인물과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한 동작을 보인다. 왼편에 엉켜 있는 인체들은 다른 버전에 적용된 윤곽 일부가 전사되는 것을 토대로 그려졌다. 서로 얽혀 있는 두 형상은 얼핏 봤을 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기능적 동작을 연상시키는 암시들을 품고 있으나 그 행위를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왼쪽의 무리들이 오른쪽의 인물이 취하는 동작을 반복해서 이동하는 동작정도로 보일 뿐이다. 화가의 제작 공정을 고려할 때 왼쪽의 형상들은 오른쪽 누드의 일부를 복제하거나 아니면 동일한 본에서 변형한 상이한 형태들 중 하나이다. 고안된 본이 한번 적용된 형태는 다른 화면, 다른 버전에서 반복되거나 변형된 모습으로 재 가공되어 적용된다. 여기에서 전수경의 누드는 모든 버전과 연작에 걸쳐 화면의 물리적 구속을 능가하는 연관을 갖는 것이 확인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본의 개발이 전수경의 회화적 전략으로 생각된다. ● 전사하는 과정에 종이 표면에 떨어진 색 가루와 붓에 의한 윤곽의 소묘는 중력에 반응하고 있다. 붓질 과정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액체 안료의 속도와 방향이 간헐적으로 화면에 남아 있다. 콩테나 목탄을 문지를 때나 형태의 본을 전사하면서 윤곽을 구성하는 분말 가루가 떨어질 때 미술가의 손은 수평으로 반응한다. 이 반응을 통해 전수경은 윤곽에 남은 색 가루나 아직 굳지 않은 먹이 형태의 양감이 되게도 하고 배경이 되게도 한다. 이 과정에서 누드의 표면은 구축적 특성을 갖게 되고 배경은 형상을 돌출시킨다. 서로 작용하며 견고하게 결합하는 이들 방식은 인접한 물리적 속성의 종이 바탕마저 미술가의 몸짓에 반응한 것으로 보이게까지 한다. ● "고독"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머리가 보이지 않거나 혹은 발이 보이지 않는 거리는 지나치게 속삭일 필요가 없고 또 지나치게 고함칠 필요도 없는, 안정된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의 간격을 암시한다. 이 거리는 앉아서 머리를 쳐드는 적극적 수고 없이 그냥 대상을 가만히 볼 때 목격되는 시야를 제공한다. 이 버전에서 쉽사리 관찰되는 전수경의 누드는 편안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듬성듬성 노출되는 담담한 태도로, 그리고 독립된 개별성보다 관계 속에 묻어 있는 형태로 땅을 디뎌 선 현실의 물리적 세계에 있다. 거기는 막연한 허상이 꿈으로 둔갑하지 않고 분명한 실체가 감지되고 확인되는 곳이다. 그 곳의 풍경은 추구나 열망의 끝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관람자는 여기서 스스로 자신의 환각과 환청을 걷고 요란한 소란이 정지된 적막에 귀 기울이게 된다.

전수경_섬Ⅱ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100×70cm_2004
전수경_자위Ⅱ_한지에 가루안료, 콘테, 먹, 콩즙_150×87cm_2004

2005년 이른 봄에 발표되는 전수경의 최근 "독백"연작이 3년 전 그의 누드와 비교되는 외관상의 변화를 살폈을 때 분말 재료에 의한 소묘의 적극적 채용과 구축적이고 견고한 형태의 추구가 두드러져 보인다. 이 변화는 충돌과 대립과 같은 시각적 원리를 화면에 실험함으로써 형태의 원리를 의식한 결과로 파악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가의 몸짓과 촉각과 같은 물리적 체험을 그려진 대상과 동일시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해석과 재현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된다. ● 형태의 추구는 회화에 대한 전수경의 이해이자 주장이고 아우성의 관람자를 생산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가하면 해석과 재현은 대상이나 세계에 대한 전수경의 아이디어다. 이것들은 메아리의 관람자를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관람자는 미술작품 앞에 진지하게 서서 바라보며 새로운 시각적 사건을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과 충돌시키는 인격이다. 그 관람자가 전수경의 누드가 유지하는 태도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자각할 때 적막한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미술가가 자신의 삶과 매체를 충돌시키던 경험과 동일하다. 이 번에 전시되는 최근의 버전들과 함께 전수경의 실험에는 실재하는 공간을 화면에 과감히 채용하거나 화면의 내부에 있어야 할 개별 요소가 관람자가 서성이는 실재하는 화랑공간으로 돌출되게 하는 기획도 진행된 것으로 안다. 나는 그 시도가 앞으로 3년 후 전수경의 매체를 특징지을 중요한 암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역시 아우성대는 소음의 공간과 메아리로 진동하는 표면을 통해 스스로 각성하는 관람자의 창출을 향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이희영

Vol.20050223b | 전수경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