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216_수요일_05:00pm
인사갤러리 지하전시장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나의 작업의 테마는 뿌리와 연관되어 있다. 모두들 그러하듯이 각자 부모가 있고 또한 그 조상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국이라는 특정 지역단위의 공동체험에서 비롯된 역사적 전통을 체득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지역공동의 경험을 유형, 무형으로 매일 경험하는 사람이고 이러한 '우리 것'을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 내가 누구에게서부터 나왔는가,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러운 자기탐구의 과정이다. 전에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해 왔다. 미술사의 유구한 역사에서 발견되는 선례처럼 비교적 손쉬운 대상인 스스로의 모습을 재료로 한 표현능력의 개발을 위해서도 자화상 제작은 좋은 방법이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화상 제작 과정을 통해 주체가 객체가 되면서 나를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될 즈음에는 주체-객체라는 이분법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나의 위치를 바라볼 수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부모님의 그늘에서, 그들의 부모와 그 부모들의 부모, 나아가 우리의 보편적 조상에 이르는 일련의 생태학적 계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뿌리에 관한 나의 생각의 시발점이었다. ● 우리세대는 미술이라는 분야를 서양의 것을 중심으로 교육받아왔다. 박수근이나 김환기 보다는 세잔과 고호, 피카소와 뒤샹이 더 친근하다. 서양의 것과 가장 근사치를 만들어 내면 훌륭하다거나 대단하다고 평가되며 주된 흐름이 되어 간다. 하지만 다른 문화를 수용하려면 내 것이 있는 상태에서 흡수하는 형태가 되어야한다. ●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기에 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나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미술사학자 강우방은 그의 저서[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에서 이렇게 적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고대의 유물에서 현대에서조차 추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 했을 때 그래서 현대적이란 말을 쓰게 됨을 바로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 내가 이러한 작업을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려는 것은 나의 본성을 찾아 회복하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의 가슴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저마다의 이념을 표방하지만 시대에 따라 거기에 입힌 옷 색깔만 다를 뿐 그 뼈대는 같다. 우리가 우리의 사상과 예술의 고전을 익혀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것을 구상하고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형식을 만들어 내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술은 현실의 재현에서 자유로워져서 예술만의 조형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은 이미 우리의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새로이 보려는 노력 없이는 의미가 없다.
타로카드는 많은 이미지들, 상징 또 그에 연관된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도상들은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도 않고 생소하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관심들이 우리의 전통적 이미지들과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진다면 더욱더 의미 있어질 것 이라 생각한다. 타로 카드에 들어가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서양적이지만 우리문화재나 유물 등 많은 것들이 그 이미지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우리의 것으로 바꿀 수 있다. 타로카드는 총 78장의 카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크게 메이저 카드와 마이너 카드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저카드는22가지가 있고 또 마이너 카드는 4가지종류로 구성되어있는데 컵(CUPS), 칼(SWORDS), 나무줄기(WANDS),동전(PENTACLES) 등이다. 진행하고 있는 한국적 메이져 카드 에는 우리나라 전통 인물과 복식(22가지이다)으로 구성하고 있다. ● 그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들, 계속해서 연구해야 될 것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나는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를 연구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우선은 겉모습으로 판단한다. 이는 그 사람의 차림새와 모습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림새, 처음 시작하는 것, 이것이 복식이고 이에 따라 나는 우리나라 전통복식부터 작업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정체성을 찾고 옛 것에서 현대적인 요소를 찾아내어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점점 묻혀 져 가는 우리의 것들을 가지고 조금 더 이 시대에 맞게 표현하고 싶어 졌다. 우리의 것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데 그저 서양의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으니 말이다. 그리스, 로마 건축물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의 그 우수성과 미적인 부분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대정신을 확립하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과거에 이룩한 인류의 업적을 되새김으로써 가능하며 과거의 사상과 예술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 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연과의 융합 추구, 서양의 서양성, 동양의 동양성이 제대로 설 때 다양한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종교의 차이를 떠나서 내가 불교적 이미지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오래된 역사와 함께 그 의미, 그리고 과거의 사상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고 그러한 이미지들은 정중동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진 멋진 작품인 것이다. 또한 불교가 내세우는 세계관과 인생관은 우리나라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어 국민을 계몽했으며, 한자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되었고, 국가성립의 이념을 제공했으며, 그리고 본격적인 조형 활동을 가능케 했다. ● 불교는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일본까지 광범위 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각기 나라마다 그들의 특징이 있고 이를 대표하는 것이 불상과 절 그리고 불화이다. 절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또한 단청이라는 고유한 것으로 그리고 장식한다. 단청은 우리나라 고유의 색으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아직도 전래되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품격을 유지한다. ● 불화 또한 그러하다. 불상은 수인을 달리 하면서 대상의 인격을 나타내고 널리 중생을 구제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이미지로 본다면 굉장히 다양한 형상을 나타낸다.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명확해진다. 예술가는 훈련된 생각으로 작업을 하는 그런 것 들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서 자신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 나가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것을 발견하고 하나씩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 속에서 신선함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동시대에 부합시키는 시도는 빡빡한 일상 속에서 한줄기의 신선한 공기 같을 지도 모른다. ■ 하주영
Vol.20050217a | 하주영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