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216_수요일_02:00pm
온누리 장애우 챔버 연주
부대행사_2005_0219_토요일_03:00pm (사)한국 정신지체인 애호협회 양천지부 한소리 합창단 공연 책임기획_이데레사
양천문화회관 제1전시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322번지 Tel. 02_2651_6570
참, 아름다워라! ● "우아-에쁘다!" 창밖의 하늘이 빠알갛게 노을로 물든 어느 날, 어릴적 혜신이 입에서 어눌한 발음으로 나온 탄성이다. 줄지어 소풍가는 개미행렬, 파릇파릇 돋아나는 초봄의 꽃눈, 꿈속처럼 내려앉는 한겨울 눈송이에 감탄하고, 차가운 계곡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방개처럼 뱅글뱅글 물놀이를 즐기며 환호성을 지르던 혜신이.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을까. ● "엄마, 저기 있잖아, 그거..." 무언가 말하고 싶어서 애쓰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뭐라고?" "응?"하며 자꾸 되묻는다. 이렇게 두어번 되풀이 되면 혜신이의 상기되었던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지며 "아니야, 됐어."하고는 뒤돌아 갈 때 나는 얼마나 마음이 슬펐는지 모른다. ● '많이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마음껏 그림에 네 마음을 담아내렴.'하는 생각으로 그림을 가까이 하게 해 주었다. ● 그저 의사표현의 한 수단정도로 그림그리기를 권유했는데 하느님은 혜신이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학습장애라는 제약이 있어 지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꾸준히 인내와 사랑으로 혜신이를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 이 전시회를 통해서 특별히 혜신이가 그림의 주제로 삼기를 고집하는 살아있는 생명체, 신비로운 자연에 대해 어떻게 온 마음으로 반응하는지 혜신이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 또한 말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제약을 갖고 있는 많은 발달장애 친구들의 마음들도 조금이나마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허물어져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꿈꾸는 그 나라로 한걸음 더 다가서기를 소망한다. ■ 박혜신의 어머니 김명희
박혜신 『내친구들』展을 기획하며 ● 혜신이의 그림을 정리하다보니 온통 꽃그림이다. 혜신이의 그림을 가득 펼쳐놓은 화실은 그야말로 꽃밭이 되었고 꽃밭 한가운데 서있는 듯 하다. ● 3년전 쯤, 혜신이 어머니께서 학생을 하나 지도해달라고 화실로 찾아 오셨다. 그때, 그 학생이 정신지체 3급 장애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특수교육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주로 그림의 기술적인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지도를 잘 할 수 있을지 자신 없다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정중히 거절했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혜신이를 만나보고 결정해달라시며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시더니 다음날 혜신이를 데리고 찾아오셨다. 혜신이는 그림을 배우러 간다는 말에 너무 들떠 혼자 신발까지 신고 현관에 서서 식사하시는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화실에서 다른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어서 그리고 싶은 마음에 벙글벙글 신이 난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혜신이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은 혜신이의 아름다운 세상그리기를 보게 되는 행운이었다. ● 처음 반년정도는 주로 다른 친구들이 그리는 소재를 이것저것 따라 그리거나 책을 보고 모사를 했다. 어느 날 나는 친구에게 수백 장 가까운 꽃 사진을 빌려와서 보고 있었다. 마침 혜신이가 그 사진들을 보더니 얼굴빛이 환해지며 그걸 그려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꽃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꽃 위를 노니는 나비며 곤충들에게까지 관심이 넓혀졌다. ● 꽃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혜신이가 좋아하는 소재이다. 꽃 그림 이후로 혜신이는 그림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소재를 통해서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항아리을 두고 그려보자고 하면, 혜신이는 꽃이 가득 꽂혀 있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그림을 그려낸다. 혜신이는 그림을 '배우러'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러'왔다. ●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는 '잘'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보다는 3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혜신이의 표현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꽃, 나무, 동물 등 모든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혜신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 아름다움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박혜신 그림에 대하여 ● 1. 혜신이의 그림을 통해서 보는 세상은 온통 반짝반짝 빛나는 눈부신 세상이다. 번들거리는 유화도 아니고 맑고 깨끗한 수채화도 아니다. 혜신이는 파스텔이나 색연필처럼 탁한 재료나 불투명 물감을 주로 사용하는데도 그림은 늘 빛난다. ● 나무를 올려보았을 때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던 햇빛, 나뭇가지 이파리 하나하나에 맺혀 반짝이는 물방울. 새싹이 피어나는 경이로움의 빛을, 꽃이 피어나는 순간이나 바람에 잎이 흔들리는 찰나를 포착한다. ● 2. "혜신아 이번엔 이런 것을 한번 그려보자"하면 "네"하고 대답하고는 엉뚱한 것을 그리는 혜신이가 나의 말을 얼마만큼 알아들은 것인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혜신이가 무슨 말인지를 하는데 내가 못 알아들어서 난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을 함께하면서 혜신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혜신이가 좋아하는 꽃, 나무, 곤충, 동물, 풍경 등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면 혜신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빨리 그리고 싶어 하는 흥분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3. 명제표를 만들기 위해 혜신이를 앉혀놓고 '이건 뭐라 이름 지을까?' '이건 뭘 그린 거야?' 를 물어보는데 혜신이의 대답은 뜻밖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장미들이 줄지어 서있는 그림을 피아노라고 한다. 여러가지를 다시 물어본다. '피아노 같아? 피아노처럼 생겼어? 장미가 피아노를 치는 거야? 아니면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혜신이의 대답은 단호하다. "아뇨아뇨, 음...이름, 피아노요!" 혜신이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그 꽃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 4. 풍경_네 살 무렵, 혜신이는 자갈길, 잔디밭 등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온몸이 경직된 채로 울곤 했다. 선생님 등에 업혀 가다가, 내려서 손잡고 가다가, 차츰 손을 떼고 혼자 갈 수 있게 될 때까지 혜신이는 자연과 서서히 친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언어장애가 심했던 혜신이에게는 어렵게 친해진 자연이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 5. 꽃_혜신이는 들꽃을 많이 접하며 자랐다. 들꽃을 따서 머리에 꽂기도 하고, 모아서 작은 병에 담아 놓기도 했었다. 지금도 빛깔 곱고 아름다운 꽃을 대할 때면 들로 산으로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그 시절, 늘 자신을 반겨주었던 그 신비스러운 꽃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 6. 동물_혜신이는 동화 속에 나오는 동물들을 상상 속에서 친구로 만나는 듯싶다. 그래서 동물들을 보면 무서운 동물도 귀엽다고 말하고 친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땐 집에 오는 길에 지나가던 강아지를 마치 친한 것처럼 대하다가 낯선 사람에게 위협을 느꼈을 그 강아지로부터 얼굴을 할퀴어 온 적도 있었다.
혜신이의 성격, 습관_밝고 명랑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집중해서 매우 열심히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이 많이 열려있고 어디서나 자신이 용납 받는다고 생각한다. 말로 자기를 조롱하는 사람에게는 심하게 분노한다. 색종이 접기를 좋아하고 십자수, 스킬자수, 뜨개질 등 손으로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영을 잘하고 잠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예전에는 장난감 기차에서 나는 기적소리, 천둥소리,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너무나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리 많이 무서워하지 않고 지나간다. 밤에 잘 땐 스탠드 불을 꼭 켜고 잔다. 매우 예민해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잠을 깬다. 손톱 열 개를 하도 물어뜯어서 손톱을 깎을 일이 없었는데, 1~2년쯤 전부터 그 버릇도 없어졌다. 낱말을 대충 읽기는 하지만 책읽기는 되지 않는다. 돈 계산도 거의 안 되고, 간단한 말로 의사표현은 되지만 이야기 전개를 하기는 어렵다. 음악을 좋아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꾸준히 성가대 활동도 했다. 종이접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늘 주머니에, 가방에 색종이를 갖고 다닌다. ■ 박혜신의 미술선생님 이데레사
Vol.20050214a | 박혜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