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소리를 듣다

전수민 수묵담채展   2005_0216 ▶ 2005_0222

전수민_울림-옛이야기_한지에 수묵담채_63×98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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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216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소외된 작은 것들과 삶에 대한 단상 ● 작가 전수민의 작업들은 작고 소박한 서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별 볼품없는 작은 화분들과 그 안에 담겨있는 가냘픈 생명의 흔적들이 소재인 것이다. 굳이 눈여겨보지 않으면 크게 눈에 뜨일 것도 없는 일상적인 사물들이 가지런히 모여져 그들만의 작은 소리를 낸다. 특별한 기교나 과장된 수식의 흔적도 없이 질박하고 천진한 필촉으로 이들을 담아내는 작가의 서정 세계는 마치 동시를 읽는 듯 천진하고 소박한 정감이 있는 것이다. 이끼 낀 붉은 화분은 붉은 듯 칙칙하게, 그리고 거기에 담긴 생명의 형상들은 가시가 돋친 것이면 가시가 돋친대로, 여린 싹이 돋아나면 여리디 여린 생명의 숨결들을 그대로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특별히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잘 가꾸어진 모양이 아니라 늘 보아오던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작가의 서정과 해맑은 감성을 굳이 어렵고 복잡한 눈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난해한 해석을 덧붙여 그 바탕을 어지럽히는 것도 옳지 않을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작가의 눈과 높이를 가지런히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작가의 천진하고 소박한 동시적 서정의 세계로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발견하고 느끼는 이의 몫일 것이다. 삶의 이치는 아주 쉽고, 지나치게 쉽기 때문에 난해한 시각으로는 오히려 이해되지 않게 마련이다.

전수민_울림-가족_한지에 수묵담채_64×89cm_2004
전수민_울림-빗소리를 듣다_한지에 수묵담채_70×89cm_2004
전수민_울림-틔움_한지에 수묵담채_72×91cm_2004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존재 자체가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하물며 살아있는 것에 이르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미미하고 별반 돌보지 않는 작은 화분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다듬어 온전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발견해 내는 이의 몫이다. 작가가 굳이 작품의 명제들을 "울림 - 소리를 듣다"라고 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일 것이다. 작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감정의 이입과 이를 통해 얻어지는 내용들을 그 모양을 빌어 드러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이다. 소소하고 미미한 소외된 것들의 '울림'은 언제나 있는 것이지만, 누구나 이를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귀 기울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정서는 여리고 소박하며 천진한 것이다. ●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소외된 것들에 관심이 간다 …. 그들에게는 고유의 울림이 있다 …. 원래는 자연에 있어야 할 것들이 사람에 의해 화분이라는 좁은 공간에 옮겨져 왔지만 그들은 꽃피고 열매 맺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 화분 속의 식물들을 볼 때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해 규격화되어 일정한 틀 속을 맴도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 그들이 얻은 부, 명예, 권력 같은 것은 갑갑한 틀 속에서 얻어낸 자연스럽지 못한 결과물인데 우리는 그것에 집착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맞이한다. 화분 속의 식물들이 그러하듯이 …."

전수민_울림-돋움_한지에 수묵담채_72×101cm_2004
전수민_울림-오름_한지에 수묵담채_36×51cm_2004
전수민_울림-하늘꿈_한지에 수묵담채_66×94cm_2004

즉 작가는 여리고 작은 소소한 사물들을 빌어 나름대로의 삶과 인생에 대한 단상들을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그 작은 사물들에 귀 기울임의 결과로 얻게 된 '울림'의 소리일 것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관찰 방법 중에는 작은 것을 통하여 큰 것을 본다라는 '이소관대(以小觀大)'의 방법이 있다. 분재나 수석과 같이 작은 사물들의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대자연의 웅장하고 기묘한 조화를 익히고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소소하고 미미한 작은 화분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삶에 대한 단상과 감회는 반드시 이러한 방식을 차용한 것이라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용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연계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수민_울림-어울림Ⅱ_한지에 수묵담채_78×98cm_2004
전수민_울림-바라보기Ⅰ_한지에 수묵담채_64×75cm_2004

한 붓에 색과 농담의 변화를 갖추어 점을 찍듯이 단숨에 그려내는 작업 방식은 특별한 조형적 기교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마치 수를 놓듯이 또박또박 모양을 아우르고 색을 더해가는 조심스러움은 화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느리고 둔탁하며 차분한 필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양이다. 작은 점들을 잇대어 찍음으로써 질감을 살리고 전체적인 조화를 도모하는 방식은 작품 전반에 고루 나타나는 일관된 조형 방식이다. 이는 지나치게 빼어나거나 화려한 것을 경계하면서 투박하고 질박한 꾸밈없는 본래 모양을 수용함에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것이다. ● 있는 그대로를 별반 꾸밈없이 드러내고, 이를 통하여 일상의 확인과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단상을 펼쳐 보이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소박한 자연주의적 서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리고 가냘픈 작은 화분들 속에서 채집되어진 의미 있는 짧은 생각들은 그만큼 풋풋하고 건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꽃피고 열매 맺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긴 여운을 주는 대목이다. 만약 우의(寓意)의 전달이나 표출에 관심을 둔다면 '있는 그대로'만으로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보다 치밀하고 적확한 구성과 경영을 통하여 이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상을 넘어 사유를 반영하는 과정인 것이다. 작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 김상철

Vol.20050213a | 전수민 수묵담채展

2025/01/01-03/30